‘기안84’ 지키려는 쉰내 나는 가치 무엇인가

[컬처]by 한겨레

여혐에, 비하까지 웹툰 <복학왕> 반복되는 논란에도

기안84 ‘나 혼자 산다’ 다시 복귀

제작진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찾아올 거”라고?

한겨레

“기안84가 오늘 스튜디오 녹화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찾아뵐 예정이니 앞으로 지켜봐주세요!”


하차 청원이 빗발치는 기안84를 4주 만에 방송에 복귀시키며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 제작진이 내놓은 의견문이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더욱 성숙’이라니? 본래 기안84는 미성숙한 남성 주체의 정형화한 캐릭터로 그 자리에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더욱 성숙’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으며, 행여나 그가 성숙해진다면 그는 더 이상 기안84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공연한 말장난이 아니다. 기안84가 패션쇼장 런웨이를 향해 “성훈이 형”이라 외쳐 비난받았을 때, 담당 피디는 “기안84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봐주신다면 다양성으로 이해하실 수 있는 인물이다. 삶에서 먹고 자는 것 외의 것들에 대해 욕심이 없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보시기에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다양성이라는 틀에서 봐주신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제작진이 기안84를 어떤 콘텐츠로 활용하는지 잘 알려주는 인터뷰다.


혹자는 말한다. 그가 방송에서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낸 것도 아니고, 단지 그가 작가로 그린 웹툰의 내용을 문제 삼아 방송 하차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37살 김희민이라는 자연인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외모나 입담 등 방송인으로서 재능이 뛰어나서 간판 예능 프로그램에 정규 출연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현업 웹툰작가 기안84로 방송에 출연하고 있으며, 기안84가 어떤 생각을 가진 작가이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 작가인지는 그의 작품을 통해 보증된다. 즉 ‘방송인 기안84’ ‘웹툰작가 기안84’ ‘그의 웹툰’은 전혀 별개가 아니며, 하나의 의미를 서로 보충하며 만들어내는 관계다.


사람들이 분개하고 항의하는 대상도 자연인 김희민이 아니라, 기안84가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 의미이다. <나 혼자 산다> 제작진, 나아가 <문화방송>이 비난을 무릅쓰고 안고 가려는 것도 자연인 김희민이 아니라 기안84가 대표하는 어떤 의미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시치미는 그만 떼고, 기안84가 대표하는 그 의미가 무엇이며 왜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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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도 쓸 줄 모르는 여성 인턴이 상사와 관계를 한 뒤 정규직을 꿰차는 듯한 설정으로 ‘여혐 논란’에 휩싸였던 <복학왕> 의 한 장면.

일찍이 그는 기안84란 필명이 ‘논두렁이 아름답고 여자들이 실종되는 도시 화성시 기안동에 살던 84년생’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 여성들의 참혹한 죽음이 아름다운 논두렁과 나란히 놓이니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이 아무렇지 않음, 무지하고 무례하고 무심하게 행동할 수 있는 심드렁한 태도가 그의 본질이다. 악의가 없으며 단지 미숙한 자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니 오히려 순박하다고 옹호하는 이도 있다. 사회화가 덜 된 것일 뿐이니, 철없는 소년을 대하듯 관대하게 받아들여달라고 말한다. 하기야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임을 강조하고(<무한도전>), ‘남자는 쉰살이 넘어도 아이’라며 어머니들의 시선으로 ‘부등부등’ 해주는(<미운 우리 새끼>) 분위기에서 낯설지 않은 반응이다. 하지만 말은 똑바로 하자. 사회화가 덜 된 것이 아니라, ‘그래도 되는 ×남’으로 사회화가 된 것이다.


기안84는 대략 게으르고 둔감하며 배려와 눈치 없이 살아가고픈 남성들이 동일시하는 대상이다. 그처럼 아무렇게나 해도 남들이 관대하게 받아주고, 그럭저럭 잘살며 재능을 인정받고, 운 좋으면 성공하여 심지어 46억원대의 건물주가 되는 삶에 자아를 투영하고픈 것이다. ‘윤리’와 ‘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는 상대에게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이 ‘별생각 없이’ 해오던 혐오와 차별을 계속하겠다는 욕망을 대리하는 존재가 기안84다.


장애인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로 여러번 지적당했던 기안84의 웹툰이 이번에는 여성 혐오로 비판받았다. 웹툰 <회춘>에서 화사와 전현무의 이름을 딴 캐릭터를 유흥업소 접대여성과 손님으로 그리는가 하면, 웹툰 <복학왕>에서는 무능한 여자가 성상납으로 취업에 성공하는 내용을 저질스러운 암시에 담아 묘사했다. 여론이 들끓자, 기안84는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으로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세상에나, 사회 ‘풍자’와 약자 ‘혐오’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니!


이런 ‘오만한 무지’ 상태는 기안84가 대표적으로 보여주지만, 기안84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론장에서 작품의 혐오 표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이라며 열을 올리거나(주호민의 ‘시민독재’론),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행위가 ‘강박적인 피시(PC)주의’가 되어 세상을 망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허지웅의 디즈니 비판)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2016년도에 정의당은 중식이 밴드와 총선 협약을 맺었다가 내홍을 겪었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 여성이 아닌, 지질한 남성의 자기 연민을 옹호해선 안 된다는 올바른 비판이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세상은 아주 느리게 변할 뿐이다. 안희정 사건을 겪고도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계속되고 있으며, 기안84의 여성 혐오에 대해 무지로 일관해온 <문화방송>은 면접시험 문제를 통해 역대급 2차 가해를 저질렀다. 기안84보다 기안84를 ‘못 잃는’ 제작진과 <문화방송>에 진심으로 울화가 치민다. 그를 옹위하여 지키고자 하는 쉰내 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에 더욱 모욕감이 느껴진다.


대중문화평론가

2020.09.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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