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에서 RM을 추켜세우고 호들갑 떨기보다는…

[컬처]by 한겨레

방탄 알엠의 미술 애호에 대해

화랑업자·언론·전문가까지

팬덤 확산 확성기 구실

알엠이 던지는 선한 영향력의

이면에 숨은 우리 미술판의

이슈제기 역량 성찰해야

한겨레

권대섭 작가의 집을 찾아가 그가 만든 달항아리를 안고 포즈를 취한 알엠. 인스타그램에 나온 사진이다.

100평도 안 되는 전시장에 하루에 800명 이상이 몰린다.


요즘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는 몰려드는 관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화랑의 3관 케이3에서 지난 8월부터 열리고 있는 디자인 그룹 에이스트릭트의 미디어아트 기획전 ‘별이 빛나는 해변’(27일까지)의 인기 덕분이다. 사방의 벽면과 바닥에서 푸른빛의 파도 영상이 실감 나게 펼쳐지는 이 전시를 보려고 하루 800명 이상의 관객이 찾아온다. 한번 입장하는 관객을 10명으로 줄이고, 보는 시간을 5분으로 제한해도 인파는 끊임이 없다. 감염을 우려한 화랑 쪽은 24일부터 하루 입장객 수를 600명으로 줄였다.


이런 해프닝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알엠(RM)이 생일인 지난 12일 이 전시장을 찾아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남긴 뒤 빚어졌다. 작품 컬렉터로 입소문이 난 알엠은 지난해부터 김종학과 이우환의 전시를 비롯해 국내외 곳곳의 미술관과 화랑에 출몰하면서 인증샷을 올려왔다. 아미를 비롯한 그의 팬이 ‘알엠 투어’ 혹은 ‘성지순례’라고 부르며 그를 뒤따라 찾아가 감상하는 것이 새 문화가 됐다. 1960~70년대 모더니즘 작업에 심취한 듯했던 그는 최근 소장 작가나 80년대 요절한 리얼리즘 화가 손상기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이달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에 1억원을 기부해 아름다운 미술책 세트를 청소년에게 보급하는 사업도 돕는 등 ‘통 큰 후원자’의 면모도 보여준다. 그와 접촉한 화상들은 그의 미술 안목과 공부하는 열정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언론은 관련 보도를 쏟아낸다. 심지어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도 “최근 미술관 전시 개막식에 찾아와 자신의 과거 활동 이력까지 이야기하는 알엠의 미술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내용의 칼럼을 한 일간지에 기고했다.


알엠의 미술 사랑은 반가운 일이다. 아마추어 컬렉터지만 그는 막대한 대중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절판된 책이나 문헌을 꼼꼼히 독해하고 안목을 기르며, 젊은 관객들이 미술과 친근해지도록 가교 구실을 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감상하고 체험한 것을 거리낌 없이 올리는 행보는 폐쇄적이던 국내 유한층 컬렉터와는 달리 당당하게 자기 취향을 발산하며 대중의 기호를 선도하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참신하다. 하지만 대중스타의 컬렉터 활동이 화제를 낳은 적은 있어도 알엠처럼 그의 전시장 출몰 자체가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요사이 그의 미술 애호에 대해 화랑업자와 언론은 물론 전문가들까지 팬덤을 확산하는 일방적인 확성기 구실을 하고 있다.


획일적인 상찬의 이면을 살펴보면, 국내 미술계나 미술시장이 대중스타의 호의나 취향에 기대지 않고서는 사회적인 이슈를 제기하기 어려울 만큼 자체적인 콘텐츠 역량이 빈약하며 그만큼 대중문화자본의 마케팅 수단에 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미술계에선 아마추어 속물 작가로 비하되어온 가수 조영남의 대작 사기 논란이나 천경자·이우환 같은 대가의 진위작 시비 정도 말고는 작품 자체의 개념이나 내력이 폭넓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지금 미술판에선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대안공간 큐레이터를 영입했다거나, 거액을 투자해 미술관을 건립하고 전시기획 사업을 벌일 것이란 이야기가 파다하다. 배우 전지현의 소속사 문화창고는 일본 미디어작가 그룹 팀랩의 전시를 기획해 동대문 디디피에서 23일 개막하기도 했다. ‘알엠 현상’은 그 선한 영향력과는 별개로 미술판에 본격화할 아트엔터테인먼트의 흐름을 알리는 서막처럼 느껴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020.09.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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