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도 ‘뚝딱뚝딱’…“내 집 짓는 과정 자체가 행복”

[라이프]by 한겨레

코로나19로 달라진 집의 위상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는 탓

최근 ‘집 버라이어티’가 대세

직접 집 짓는 이들 하나둘 생겨

한겨레

고익봉씨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에 직접 목조주택을 짓고 4년째 살고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4개월 동안 이 집을 손수 지었다고 했다. 사진 고익봉 제공

한겨레

여전히, 아니 앞으로도 계속 ‘집’은 실체다. 소유하고 있거나, 혹은 아니거나. 숙명 같은 가난을 마주하고, 작가들은 그래도 썼다. 고 박영한 소설가가 중편 <지상의 방 한 칸>을 펴낸 게 1984년께다. 생활고에도 읽고 쓸 공간, 식구들을 건사할 ‘집’을 찾아다니는 자전적 이야기다.


김사인 시인은 박 작가의 소설 제목을 차용해 몇 해 뒤 발표한 시에서 이렇게 썼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2020년의 현실은 집을 둘러싼 논점을 ‘있거나 혹은 없거나’의 세계에서 ‘어떤 집이냐’의 세계로까지 확장했다. 이제 ‘집은 재테크의 수단이거나 다음날 밥벌이를 위해 잠시 고단한 몸을 누이는 공간을 뛰어 넘어섰다. 그저 단순한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는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8월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291만1000원) 중에서 식료품과 비주류음료 지출이 45만4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7% 늘었다. 반면 학원비, 밖에서 쓰는 오락비와 문화생활 지출은 줄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탓이다. 지난 7월의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2조962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무려 15.8%가 증가했다고 한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최대치란다.


방과 부엌, 거실, 화장실이 똑같은 형태로 ‘찍혀 나오는’ 아파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집은 놀이터이자 학교다. 어른들은 육아와 가사, 노동과 휴식을 모두 집 안에서 해결한다. 건축가들이 나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전국의 집들을 소개하는 <교육방송>(EBS)의 <건축탐구-집>의 꾸준한 인기는 ‘사는 공간’의 성격과 질에 대한 사람들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한다.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아예 시청자의 필요에 따라 매물을 골라주거나(<구해줘! 홈즈>), 연예인 출연자의 집 정리를 대신해 주거나(<신박한 정리>), 트레일러 형태의 집을 끌고 다니는(<바퀴달린 집>) 등의 ‘집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두 손으로, 땀 흘려 가며 집을 지어보겠다고 팔 걷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건축가도,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공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무로 된 집을 뚝딱뚝딱 짓는다. 신기하게도, 근사한 집이 된다. “집을 짓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ESC가 들어 봤다.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ESC] 예순 넘어 도전! 4개월 만에 지은 나무 집


은퇴 후 직접 살 집 짓는 이들

괴산에 집 지은 목사 고익봉씨

공무원이었던 이재만씨도

땀 밴 집 구석구석 애착…“최고 만족”

한겨레

고익봉씨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에 지은 집. 사진 고익봉 제공

자신과 가족이 살 집을 직접 짓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히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했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수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설계부터 시공까지, 직접 해냈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고익봉(63)씨는 목사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고, 목회 활동을 했다. 문득 그는 삭막한 도시의 풍경에 답답함을 느꼈다. “도시의 삶이라는 게 우선 숨 막히기도 했고요, 원래 시골에서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기는 했어요.” 2016년 10월께 고씨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 위치한 ‘한겨레 작은집건축학교’의 집짓기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7박8일 동안 교육생들이 함께 숙식하며 공동으로 약 18㎡(5평)짜리 ‘경량 목구조’ 집을 짓는다. 일종의 ‘샘플 하우스’다.


‘경량 목구조 주택’은 일정하게 규격화된 각재(원목 통을 네모지게 쪼개 놓은 재목)를 기둥, 보, 서까래 등의 구조재로 사용하는 공법이다. 상대적으로 큰 구조용 목재를 사용하는 ‘중량 목구조’나, 벽체를 통나무로 쌓아가는 ‘통나무 구조’와는 달리 설계 및 시공이 용이하고 간결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한겨레

고익봉씨가 자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고익봉 제공

교육생들은 모두 목수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초보자들이다. 목재를 잘라 골조를 짜고, 패널을 붙여 바닥과 벽체를 만든다. 지붕을 올리고, 단열재를 넣고, 상하수도를 연결하고, 전기 배전까지 설치한다. 비록 샘플이지만, 직접 집 한 채를 지어보는 것이다.


교육을 마친 뒤 고씨는 “이 정도면 실제로 집을 지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한다. 이듬해인 2017년 그는 오랜 친구의 고향인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적석리에 있는 330㎡(100여평)의 땅을 구입했다. 전부터 친구의 고향 집을 오가며, 함께 머물기도 했던 동네여서 그에겐 친근한 곳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52㎡(16평)짜리 목조주택을 직접 지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그의 손과 눈길이 미치지 않은 과정이 없다고 했다. 우선 부부가 필요한 형태와 크기의 집을, 대략적인 스케치 형태로 그렸다. 스케치를 다듬는 과정은 ‘한겨레 작은집건축학교’에서 도와주고,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설계도면은 소정의 비용을 치르고 별도의 설계사무소에서 제작했다. 필요에 따라 다양한 구조 변경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도 목조주택만의 장점이다.

한겨레

집을 스스로 지어 본 경험으로 고씨는 땔감을 보관하는 창고나 식탁과 같은 부엌살림, 마당의 그네 벤치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고익봉 제공

설계도에 따라 벽체와 지붕, 패널 등 집의 각 부분을 작은집건축학교에서 제작하고, 현장으로 옮겨와 조립한다. 집의 각 부분을 제작하는 과정에선 학교의 스태프와 교육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기초공사는 물론 전문 업체에 의뢰해야 한다. 지붕을 올리는 과정에 크레인이 필요한데, 이때도 업체의 도움을 받았다. ‘조각난 형태’로 집의 부분들을 제작하는 데에는 4박5일, 공사 기간은 2017년 3월부터 7월까지 4개월 정도가 걸렸고, 집을 짓는 비용은 모두 5000만원가량이 들었다. 공사비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게 인건비인데, 부부가 직접 땀 흘려 지은 집인 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한겨레

고익봉씨가 직접 만든 주방 가구. 사진 고익봉 제공

구석구석 신경을 안 쓴 곳이 없었다. 벽의 내장에는 도배 대신 규조토를 발랐다. 아토피에도 좋은 친환경 소재라고 한다. “특히 단열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생각해보니 온돌을 꼭 시공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한겨울에도 집 안의 난로에 불만 넣어두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요. 땔감이야 주변에 널려있으니 난방비는 아예 안 드는 셈이죠.”


다만 4개월 동안의 공사 기간은 ‘체력적인 한계’를 넘나드는 도전이었다. 동갑내기 아내도 매일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고 했다. “낮은 곳은 그래도 괜찮은데, 높은 곳에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집 한 채를 통째로 지을 만큼 경험을 쌓았으니, 부대시설이나 가구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부엌 장과 아일랜드 테이블도, 마당의 ‘그네 벤치’도 고씨는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 특히 거주하는 집과는 별도로 16㎡(5평) 규모의 게스트하우스와 땔감을 저장할 외부 창고도 직접 지었다.

한겨레

고익봉씨가 만들어 마당 한 켠에 둔 그네 벤치. 사진 고익봉 제공

4년째 ‘직접 지은 나무 집’에 사는 고씨는 “최고의 만족을 주는 집”이라고 자평했다. 삭막한 도시가 아닌 푸른 자연에 안겨 있는 시골에서의 삶만이 줄 수 있는 평온함이다. “아직 구체화한 건 아닌데, 일종의 은퇴 없는 목회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고민이 있거나, 영적으로 흔들리는 분들이 찾아오면 쉬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집으로요.”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에서 사는 고씨의 딸은 원래 지난 5월 이 집에 와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취소하고 말았다. ‘그날’이 올 때까지 고씨는 부지런히 집 안팎을 가꾸고, 다듬는 중이다. “딸과 사위가 오면 마당에서 바비큐도 해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정말 아쉽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한겨레

계단부터 주방까지, 집 구석구석 직접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사진 고익봉 제공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서 목조주택을 짓고 있는 이재만(62)씨에게도 ‘직접 짓는 시골집’은 오랜 로망이었다. 그는 서울의 한 구청에서 오래 일했다. 집은 경기도 하남의 아파트였다. 30년 넘는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올해 6월 퇴직한 이씨는 퇴직을 앞둔 지난 3월에 ‘한겨레 작은집건축학교’에서 집짓기 교육을 이수했다. 은퇴 후 부부가 기거할 집을 직접 지어보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한겨레

이재만씨가 건축 중인 집은 건축 기간 2달 정도로, 오는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사진 이재만 제공

이씨는 ‘자신만의 꿈’을 아내와 함께 그려나가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새집에 들어간다면 어떤 구조였으면 좋겠는지, 필요한 시설은 무엇인지 아내에게 묻고 또 물었다. 결국 부엌의 구조도, 다락의 형태도, 창문의 개수와 크기까지 모두 아내의 뜻에 따라 정하게 됐다. 반신반의하던 아내도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495㎡(150평) 크기의 대지를 구입하고, 이씨가 집짓기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등 부부가 함께 살 집의 청사진이 구체화는 과정에서 가장 ‘든든한 우군이자 조력자’가 되어 줬다.

한겨레

이재만씨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짓고 있는 목조주택의 외부. 사진 이재만 제공

지난 6월에 토목공사를 마쳤고, 건축 기간은 8월부터 2달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그는 원래 더 작은 집을 지으려고 했지만, 장성해 독립한 자식들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방 2개와 다락, 화장실 1개를 갖춘 82㎡(25평)짜리 단층 주택을 짓기로 했다. 다락을 ‘손님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자는 것도 아내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토지 구입과 조경 비용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집을 짓는 비용은 1억2000만원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다.


“집 구석구석마다 우리 부부가 흘린 땀이 배어 있다는 게 특별한 애착을 갖게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스스로 원하는 구조와 필요한 형태로 선택하고, 직접 지을 수 있잖아요. 남이 지은 집에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죠.”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2020.11.1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