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사이 보일듯말듯… 서울이 숨겨놓은 ‘비밀의 숲’

[여행]by 한겨레

커버스토리┃서울, 비밀의 숲 3

서울 도심 주변 덜 알려진 깊은 숲 찾아

샛강 숲, 매봉산·금호산, 고구동산·서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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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샛강 다리’에서 바라본 샛강 숲.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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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듯 흐릿한 길 따라 숲을 헤맸다. 길이라기보단 지나간 흔적에 가깝다. 내 맘대로 그 길에 ‘샛길’이라 이름 붙였다. 해 질 녘 희미한 빛이 숲속에 스몄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단 알전구 마냥 해가 반짝인다. 어둑한 숲 터널엔 키 큰 뽕나무가 많다. 그 길은 ‘뽕나무 터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너울거리는 은빛 억새 물결 앞에선 왠지 일렁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실개울에서 목욕하는 직박구리를 보니 내 맘도 시원해진다. 머리칼 휘날리는 버드나무 숲에선 새들이 들뜬 소리로 지저귄다. 초등학교 앞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를 닮았다. 그런데 한쪽에서 언뜻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들린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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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 샛강 생태공원’ ‘해오라기 숲’ 둘레길에 있는 억새·달뿌리풀 군락지. 김선식 기자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샛강 숲(영등포구 여의도동)으로 들어갔다. 한강 지류인 샛강은 여의도 남쪽을 에워싸며 흐른다. 샛강 따라 ‘여의 샛강 생태공원’이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 ‘비밀의 숲’이다. 1997년 국내 첫 생태공원으로 지정된 ‘여의 샛강 생태공원’은 주 산책로(직선 관찰로) 말고는 한동안 속살이 가려져 있었다. 샛강 숲을 생태계 교란 식물인 환삼덩굴과 가시박이 뒤덮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부터 사회적 협동조합 ‘한강’은 샛강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그 작업을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약간 돕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한강’은 시민들과 함께 가시박, 환삼덩굴을 일부 제거하고, 올림픽대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음과 먼지, 쓰레기를 막으려고 사철나무 2500그루를 심었다. 그 과정에서 베일에 가려졌던 샛강 오솔길도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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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용산구·중구·성동구 경계에 있는 매봉산 팔각정 근처 옥수동으로 내려가는 길. 김선식 기자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숲은 안식처이자 여행지다. ‘코로나 19’ 이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근거리 야외 여행지’를 대표하는 곳이 가까운 숲이다. 이름난 산들은 주말이면 북적이는 인파로 줄 서서 오르듯 해야 한다. 좀 더 쉽고도 깊게 숲을 즐길 순 없을까. 서울 도심과 가깝고도 덜 알려진 숲을 찾아다녔다. 서울 한복판에서 뜻밖에 만난 그윽한 숲에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모두 지하철로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다. 서울 중심부에서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다. 서울 여의도 샛강 숲(샛강역~국회의사당역)과 중구·용산구·성동구에 걸쳐 있는 금호산·매봉산(신금호역~버티고개역), 서울 동작구 상도동·흑석동 일대 고구동산~서달산(노들역~동작역)이다. 샛강 숲은 현장답사와 위치정보 등을 활용해 인터넷 지도와 안내판에도 없는 오솔길 지도를 그렸다. 누군가 서울에 놀러 올 때 남산, 명동, 고궁, 놀이공원, 수족관, 멀티플렉스 등에 선택지 3개를 추가해도 좋겠다. 샛강 숲, 매봉산·금호산, 고구동산·서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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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한강을 찾아서! 샛강 사용 설명서

지하철 9호선 샛강역~국회의사당역 약 2.5㎞

샛강 우거진 숲 따라 구불구불 돌아가는 방법

도심 한복판 강 숲에서 느낀 희열과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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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여의 샛강 생태공원’(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뽕나무 터널’. 김선식 기자

두개의 강이 서울 여의도 둘레를 따라 흐른다. 북쪽 한강과 남쪽 샛강이다. 한강 지류인 샛강은 장마철에 범람한다. 샛강 따라 이어진 숲(여의 샛강 생태공원)도 깊이 잠긴다. 지난여름 샛강 숲은 최대 10m가량 잠겼다고 한다. 숲은 스스로 일어났다. 지난 19일, 여의도 윤중로와 지하철 5호선 신길역을 잇는 ‘샛강 다리’(문화 다리)에서 샛강 숲을 한참 내려다봤다. 도심 한복판, 사자 갈기처럼 우거진 저 숲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샛강 숲을 구석구석 걸었다. ‘야생 한강’을 천천히 음미했다. 여의 샛강 생태공원 운영·관리 위탁사업자인 사회적 협동조합 ‘한강’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지도와 안내판에도 나오지 않는 샛강 오솔길 지도를 그렸다. ‘샛강 사용 설명서’를 지도와 함께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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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여행은 서울 지하철 9호선 샛강역에서 출발한다. 두 정류장 떨어진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마친다. 국내 첫 생태공원인 ‘여의 샛강 생태공원’(1997년 지정)은 총 규모가 여의도 남쪽 63스퀘어(63빌딩)에서 국회 부근까지 길이 약 4.6㎞, 너비 약 130m에 이른다. 그중 샛강역~국회의사당역 구간(편도 직선거리 약 2.5㎞)을 샛강 여행 코스로 짰다. 이 구간은 기점과 종점 모두 지하철역, 주차장과 가까운 데다 아기자기한 숲속 오솔길이 곳곳에 포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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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숲을 뒤덮었던 환경부 지정 생태계 교란 식물 가시박 열매. 김선식 기자

샛강 여행의 백미는 오솔길이다.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윤중제(강 섬 둘레에 쌓은 제방·여의도 윤중제는 1968년 축조함) 옆 주 산책로 말고는 걸을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교란 식물(지난 6월1일 고시 기준 식물 16종) 가시박과 환삼덩굴이 뛰어난 번식력으로 수목과 오솔길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부터 최근까지 사회적 협동조합 ‘한강’(이하 ‘한강)이 두 식물을 일부 걷어내면서 오솔길들은 길다운 꼴을 갖췄다. 여행 출발점인 샛강역 3번 출구를 나오면, 뒤돌아서 한강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왼쪽에 샛강으로 내려가는 인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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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변광장’ 오솔길. 김선식 기자

처음 만나는 샛강 숲은 ‘수변 광장’이다. 낡은 나무 데크 길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올림픽대로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 소리와 시끌벅적하게 지저귀는 새 소리가 뒤섞였다. 오솔길 양쪽으로 샛강과 실개울(샛강의 지류)이 천천히 흘렀다. 버드나무 무성한 숲은 모든 걸 감쌌다. 선물 포장지처럼 반짝이는 숲이었다. 속으로만 여러 차례 감탄사를 내질렀다. 도시의 소음은 거슬리기는커녕 홀로 도심 숲에 숨어든 묘한 쾌감을 부추겼다. 도심 한복판 강 숲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수변광장을 에워싼 숲은 거의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이다. 염형철 ‘한강’ 대표는 “이곳은 경쟁에서 도태되어 죽어가는 나무들을 그대로 뒀다”며 “작은 새들이 그 나무 사이에 숨기 좋아서인지 묘하게 새들이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수변광장 오솔길을 빙 돌아 나오면 여의교 아래 주 산책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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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연못’ 주변 길가에서 자란 쑥부쟁이(연보라색)와 둥근잎유홍초(빨간색). 김선식 기자

곧 ‘생태연못’이다. 세 갈래로 뻗은 나무 데크에서 연못을 관찰할 수 있다. 세 갈래 데크 중 가운데 데크를 따라가면 샛강을 가까이 볼 수 있다. 물빛은 탁한데 악취는 없다. 염 대표는 “탁도와 오염도는 별개”라며 “물에 점토질이 쓸려 탁할 뿐 한강 따라 빠졌다가 밀려 들어오길 반복해 수질은 한강과 거의 같다”고 말했다. 샛강은 ‘조수 간만의 차’ 영향을 받는다. 감조하천(강 하류 밀물·썰물 영향 받는 하천)이다. 인천 앞바다 수위에 따라 샛강 수위는 최대 1m가량 오르내린다고 한다. 데크를 되돌아 나와 주 산책로를 걸었다. 단단한 흙길이다. 샛강은 곳곳이 생태 학습장이다. 길가 연보라색 쑥부쟁이와 빨간 둥근잎유홍초가 작은 꽃동산을 이룬다. 여의도 윤중제 콘크리트에서도 식물들은 억척스럽게 잘도 자란다. 콘크리트 뚫고 팔뚝보다 굵은 뿌리를 박은 팽나무가 경이롭다. 주 산책로 따라가다가 윤중제 옆 높이 솟은 ‘여의도 자이 아파트’를 지나면 곧 왼쪽에 오솔길 진입로가 나온다. ‘해오라기 숲’ 둘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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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라기 숲’ 둘레길에서 여의못으로 가는 오솔길.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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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라기 숲’ 둘레길에서 여의못으로 가는 오솔길. 김선식 기자

오른쪽 오솔길로 가면 바로 ‘뽕나무 터널’이다. 수령 50년 이상 뽕나무 군락이 아치형 터널을 이룬다. 그 어둑한 터널 안에서 심호흡하며 도심 속 ‘비밀의 숲’을 발견한 기분을 만끽했다. 터널 밖엔 너울거리는 풍경이 기다린다. 금빛 억새와 달뿌리풀 군락지다. 은은한 가을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오라기 둘레길에서 ‘여의못’으로도 오솔길이 이어진다. 그 길가 실개울에서 목욕하는 직박구리를 구경했다. 샛강엔 직박구리, 백로, 딱새, 뱁새, 박새, 흰뺨검둥오리 등이 날아든다고 한다. 지난 7월 즈음엔 천연기념물 원앙(제327호), 황조롱이(제323호), 수리부엉이(제324-2호) 등도 나타났다고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밝힌 바 있다. 일개 한강 지류에서 보기 드문 건강한 생태계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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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실개울에서 목욕한 직박구리.

여의못은 물이 넉넉했다. 연못을 노니는 잉어떼가 보였다. 데크는 두 갈래로 나 있다. 그중 연못을 가로지르는 데크를 따라갔다. 데크 끝 즈음에서 오른쪽 오솔길로 빠졌다. 빙 돌다가 ‘샛강 다리’ 아래 ‘샛길’로 샜다. 샛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샛강 다리 아래 중간 지점 풀밭에 사람 한명 간신히 지나갈 만큼 좁은 길이다. 실개울(샛강 지류) 따라 이어진 샛길엔 사람이 없었다. 옆으로 가지를 길게 뻗은 우람한 팽나무, 누군가 찢어 버린 복권이 괴기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옅은 길 찾아 홀로 숲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서울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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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다리’ 아래로 가는 ‘샛길’ 입구. 김선식 기자

서울교부턴 주 산책로가 흙 콘크리트 바닥이다. 들머리에선 길이 여러 갈래로 보이지만, 결국 만난다. 샛강과 가장 가까운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넓은 일직선 길인데도 아기자기하다. 버드나무, 플라타너스, 억새가 어울린다. 이곳 또한 샛강 숲이다. 앞서 지나온 주 산책로보다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다. 여의2교를 지나 나무다리로 샛강을 건너면 자전거 도로가 나온다. 줄지어 선 키 큰 포플러 나무가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나눈다. 샛강 여행 종착지 국회의사당 역으로 가려면 다시 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나무다리에서 한참 샛강 숲을 바라봤다. 도심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야생의 품격을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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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에서 여의2교로 가는 샛강 주 산책로.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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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옆 자전거 도로.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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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방향으로 가기 전 나무다리에서 바라 본 샛강.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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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다리’에서 본 샛강 풍경. 김선식 기자

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2020.11.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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