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뱃놀이, 바닷바람이 내게 왔다

[여행]by 한겨레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시대

주목받는 해양 레포츠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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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을 출발한 50피트급 요트 슬라이드쇼호가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고 있다. 전곡항 마리나는 레저용 요트 투어가 활발한 ‘수도권 요트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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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사랑한 문학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뱃사람이었다. 그가 사랑한, 그래서 정착한 쿠바도 배를 몰고 왔다. 청새치 낚시를 즐기던 헤밍웨이는 아예 쿠바에서 청새치 낚시대회를 만들었고, 지금도 이 대회는 ‘쿠바 헤밍웨이 국제 낚시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이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코히마르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작가가 실제 만나 교류했던 늙은 어부를 모델로 한 소설이다.


바다에 속했던, 그래서 바다와 하나이고자 했던 작가가 몰았던 40피트(12m)급 요트는 엘 필라르(El Pilar)호. 필라르는 그의 두 번째 아내의 이름이자, 스페인어로는 ‘이정표’라는 뜻도 담고 있다. 지금도 헤밍웨이 박물관에는 이 배가 전시되어 있다. 수십년 시간이 흘러, 지금 쿠바의 관광 수익을 책임지고 있는 주인공이 미국인 헤밍웨이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라는 건 아이러니다.


배를 몬다는 것은, 나아가 자신만의 배를 갖는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기자가 3년 전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를 취득한 것도 그래서다. 며칠 동안의 이론 교육, 실제로 배를 운용한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더 길었던 연수 기간을 거쳐 시험을 봤고, 상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1급 조종면허’를 땄다. 엔진으로 항해하는 소형 레저용 선박을 자유롭게 몰 수 있는 면허다. 물론 배가 없으므로, 면허증은 장롱에 곱게 모셔져 있다. 무한한 시간과 돈이 허락된다면, 제일 먼저 아담한 배 한 척을 짓겠다. 유한한 여가와 초라한 잔고에 허덕이는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아마 당분간은(어쩌면 끝내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꿈은 꿀 수는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을 법한 해양 레포츠, 요트 세일링이 새롭게 각광을 받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 <요트 원정대:더 비기닝>은 항해 경험이 없는 연예인들이 배와 바다를 체험하고, 이를 즐기는 다양한 모습을 그려 화제를 낳고 있다.


우리 모두 지금 당장 항해를,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적은 시간과 비용만 들여도, 얼마든지 배를 타고 놀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섞이게 되는 다른 레포츠나 여행보다, 가족 단위 등 소수의 인원이 배 한 척을 빌려 ‘우리끼리’만 놀 수 있는 뱃놀이가 세계적 감염병 사태 속에서 더 주목을 받는다.


무엇을 상상하든, 이뤄질 수 있다. 커다란 돛에 경쾌한 가을바람을 잔뜩 머금고 미끄러지듯 수면을 가르는 요트를 타고 연안을 둘러보거나 가까운 섬 주변을 찾아 웅장한 기암절벽을 두 눈에 담는 섬 투어에 나서보면 어떨까. 해상에서 바비큐를 하든, 직접 잡아 올린 물고기로 즉석에서 뜬 회 한 접시를 맛보든 당신의 자유다. 원한다면 좀 더 거친 파도와 바람을 즐기며 자연이 선사하는 속도감을 맛보거나, 잔잔한 수면에 배를 띄워놓고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길 수도 있다. 여기, 우리가 모두 그리던 ‘바다의 꿈’ 한 자락이 펼쳐진다.


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ESC] 처음 느낀 항해의 짜릿한 맛

최근 느는 요트 투어 인구

몇 만원으로 약 1시간 바닷바람 타고 여행

전국 수십군데 운영 중…전곡항은 그중 성지

우연히 장애인들과 동행

‘바다의 자유’ 만끽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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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 앞바다를 항해하는 크루즈 요트. 전국 34곳의 마리나에서는 이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요트 투어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전곡항에서 요트 체험에 나섰다. 원래 작은 어항이었던 전곡항은 2009년 수도권 최초로 마리나(레저용 요트나 보트 정박에 특화된 항구)로 개발돼 세계 3대 요트 대회인 ‘월드매치레이싱투어’를 비롯해 ‘경기국제보트쇼’, ‘전국해양스포츠제전’ 등 굵직한 대회와 행사를 개최한 바 있는 ‘수도권 요트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내년에는 전곡항 지척에 위치한 제부도에도 마리나가 들어설 예정이다. 제부도는 썰물 때면 길이 드러나 차량과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일명 ‘모세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유명 관광지다. 전곡항에서 1.3㎞ 거리에는 누에고치처럼 생긴 누에섬이 있다. 전곡의 뱃사람들은 이곳이 조만간 경기도권 ‘해양 레포츠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과연 잘 정비된 정박 시설에 수십대의 요트와 보트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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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요트코리아’의 50피트급 요트 슬라이드쇼호에 탑승한 관광객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전곡항에서 요트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드림요트코리아’ 강동효(49) 대표는 15년 전부터 요트를 즐겨온 마니아다. 처음에는 취미로만 배를 몰다가, 2015년부터는 아예 요트 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강씨는 “최근 몇 년 사이,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다른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요트를 즐기는 수요가 확실히 늘었다”고 했다. 요트 여행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계절은 9월부터 11월까지, 가을철이라고 한다. 매서운 한겨울 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가 성수기인 셈이다. 주말마다 전곡항은 요트 투어를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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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 투어에서는 낚시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사람이 가장 힐링하게 되는 레저 활동이 바로 요트 세일링이라고 생각해요.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바람의 힘으로만 바다를 항해할 때 느끼는 해방감은 굉장하죠.” 통상 30피트(9.1m)에서 크게는 50피트(15.2m) 크기인 ‘크루저’ 요트는 바람을 주동력으로 삼고, 항구에서 접안과 이안을 하는 등 필요에 따라 엔진을 보조 동력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승선 인원도 10명 이상인 배가 대부분으로 선실과 주방 등의 거주 시설, 배수 설비, 오락 설비 등을 갖추고 있어 먼바다까지 장거리 운항이 가능하다. 반면, 엔진과 선실 없이 바람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1~3인용의 소형 요트를 ‘딩기’라고 부른다. 드림요트코리아는 50피트급 ‘슬라이드쇼’호와 37피트급 ‘플레이요트’호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연안 요트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꼭 면허를 따거나, 배를 사지 않아도 누구나 소정의 비용으로 요트를 이용한 항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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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항 마리나와 앞바다 전경.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날 슬라이드쇼호에는 기자와 선장 강씨를 포함해 ‘성남시 한가람보호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 인솔자 등 10명이 탑승했다. 한가람보호작업장은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간단한 수공업을 통한 제품을 생산하는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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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는 ‘어떤 부탁이든 잘 들어주는 친구’같은 존재라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남녀노소가 다 즐길 수 있는 게 요트죠. 편안하고 안전하게 바다를 즐기고 싶으면 연안에서 부드럽게 세일링을 즐길 수 있고요, 다소 거칠고 강하게 파도와 바람에 몸을 맡기는 속도감을 원하면 그렇게 진행할 수도 있어요.”


이날 슬라이드쇼호에 탑승한 장애인 대부분은 배를 처음 타본다고 했다. 선장의 안내에 따라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하고,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과정에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항구를 빠져나온 배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안정적인 속도로 전곡항 앞바다로 나아가자, 이내 갑판과 선실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처음으로 느껴본 ‘항해의 맛’에 흠뻑 젖어든 모습이었다. 강씨가 내어놓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최신곡 ‘다이나마이트’가 흘러나왔다.


일행은 바다와 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미끼를 끼운 낚싯대를 드리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다의 자유’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김경진(26)씨는 선장 강씨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바퀴 형태의 조타장치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잠시나마 배를 모는 기분을 느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누군가 선실에 설치된 노래방에서 구성지게 트로트를 불렀다.


역시 바다가 처음이라는 이확신(27)씨도 지적장애인이다. 기분을 묻자 “좋아요”라고 짧게 답한 이씨는 연신 뱃전으로 날아드는 갈매기 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작업장 식구들과 매년 캠핑도 가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녔지만,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나들이를 갈 수 없었단다. 한가람보호작업장의 앙병춘(63) 원장은 결국 시 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뱃놀이’를 가보자는 큰 결심을 했다. “친구들이 정말 답답해했어요. 실내 운동도 한계가 있죠. 그런데 우리끼리 드넓은 바다에 나가 배를 타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죠. 계획에 대한 논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우선 3개 조로 나눠 3일 동안 따로 움직이고, 식당도 통째로 빌려 접촉을 최소화하기로요. 식기까지 자체적으로 준비할 정도죠. 직접 타보니 요트가 정말 안전하고, 친구들도 편하게 즐기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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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쇼호에 탑승한 관광객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약 1시간30분 정도 이어진 이날 항해에서는 아쉽게도 온전한 ‘바람의 힘’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바람이 아예 불지 않는 잔잔한 날씨였기 때문이다.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지브’(jib)라고 부르는, 배 앞쪽에 매달은 삼각돛을 펼쳐봤지만 끝내 엔진을 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다의 일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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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전곡항 마리나에 정박중인 요트와 보트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통상 전국 연안의 마리나에서 이뤄지는 요트 투어는 프로그램과 일정에 따라 가격대가 달라진다. 경기도와 충청·호남권으로 이어지는 서해안과 통영과 부산권의 남해안, 속초부터 포항까지 이어진 동해안을 따라 수십곳의 마리나가 운영되고 있다. 제주의 김녕과 중문, 대포와 위미 마리나를 포함하면 전국에서 운영 중인 마리나는 모두 34곳에 달한다. 전곡항에는 ‘드림요트코리아’ 외에도 일상적인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업체가 많다. 전국 마리나를 통틀어 요트 투어 업체는 수백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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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항 마리나와 앞바다 전경.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누구나, 손쉽게,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는 게 요트 세일링의 강점이다. 능숙한 선장이 대신 몰아주는 요트를, 직장 동료나 가족·친지 등 가까운 일행들끼리 배를 타고 나가서 그냥 바다를 즐기면 된다.


아예 독배를 장기간 빌려 장거리 투어를 떠나볼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일정과 비용을 미리 업체 쪽과 협의해야 한다. 1~2시간 정도 간단하게 이뤄지는 체험 프로그램의 비용은 1인당 3만원 정도다. 식사 포함, 낚시 체험 등 추가되는 프로그램에 따라 가격은 조금씩 달라진다.


화성(경기)/송호균 객원기자 gothrough@naver.com

2020.11.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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