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 너마저 재활용 불가…나는 왜 열심히 씻은 거니?

[라이프]by 한겨레

재활용 표시 붙었지만 재활용 안 되는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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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그릇을 열심히 씻고 있을 당신께 드리는 기사.


한국인은 배달의 민족이자 재활용의 민족이다. 배달음식을 담았던 일회용품을 정성껏 씻어 말려 차곡차곡 쌓아 분리수거함에 내놓는다. 뿌듯하다. 당신의 노력은 숫자로 확인된다. 환경부가 5년마다 조사하는 ‘전국폐기물 통계조사’(2018년 3월 발표)에선 종이·플라스틱 등 재활용 가능한 자원의 분리배출률이 69.1%에 달했다. 단독·연립·다세대주택보다 분리 배출이 편한 아파트에서 분리배출률이 높게 나왔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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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자료

재활용률(recycling rate) 세계 랭킹은 유럽 여러 나라를 가볍게 제치며 단연 톱 수준이다. 영국 환경 컨설팅 업체(EUNOMIA)가 2017년 12월 발표한 자료를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나라 중에서 한국(59%, 2014년 기준)은 독일(66.1%, 2015년 기준)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박수.


안타깝게도 이 숫자가 실제 재활용률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분리수거함을 거쳐 재활용 쓰레기 선별 업체에 전달된 비율일 뿐, 선별 업체에서 재활용 불가 판정을 받고 버려지는 어마어마한 양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실질’ 재활용률은 우리보다 더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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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햇반 그릇을 씻은거니.

‘그래도 이건 재활용 되겠지.’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씻고 말리고 내놓는다. 쓰레기도 예의를 갖춰 버려야 한다. 돌고도는 ‘리사이클 화살표’를 믿기 때문이다.


환경부 분리배출표시지침은 플라스틱·비닐의 재질 구분을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폴리스티렌(PS) △기타(OTHER) 등 6가지로 한다.


몇 년 사이 ‘플라스틱 OTHER’가 찍힌 제품은 재활용 안 된다는 도시전설이 있었다. 기사도 여러 번 나왔다. 인문교양 잡지 <월간 유레카> 12월호도 ‘재활용,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우리는 왜 그토록 열심히 씻고 말리고 분리배출한 것일까.

햇반 그릇, 재활용 안 된다. 정말이다

1996년 12월 출시된 ‘햇반’은 즉석밥의 대명사가 됐다. 2017년 한해에만 3억개가 팔렸다. 지난해까지 팔린 양은 30억개를 넘었다.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10바퀴 돌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햇반같은 즉석밥 그릇은 ‘플라스틱 OTHER’로 분류된다. 햇반을 뒤집어보면 바닥에 그렇게 찍혀 있다. 여러 종류 플라스틱이 섞인 복합 재질이라는 의미다. 이 경우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물질 재활용’은 불가능하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대표는 “똑같은 즉석밥 그릇만 따로 수거하지 않는 이상 복합 재질 플라스틱은 물질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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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제품으로 재활용은 못해도 햇반 그릇을 태워 열을 회수하는 ‘에너지 재활용’도 방법이다. 그런데 햇반, 오뚜기밥은 여기서도 예외다.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따라 재활용 책임을 부과받은 생산자(CJ제일제당, 오뚜기 등)는 포장재 재활용사업 공제조합에 의무량만큼의 돈을 내고 재활용 역할을 위임한다. 그런데 즉석밥 그릇 대신 소각하기 쉬운 비닐을 태워도 생산자에 할당된 의무량은 채워진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비닐 소재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그것만 소각해도 EPR 기준이 충족돼 굳이 그릇까지 선별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활용 쓰레기 선별업체 쪽은 어차피 골라내서 버리는 즉석밥 그릇은 그냥 일반 쓰레기 봉투에 버리는 것이 일하기도 편하고 경제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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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되는 줄 알았으나 재활용 안 되는 3종 세트를 샀다.

업계 고민도 적지 않다. 전자레인지에서 밥을 데워야 하는 특성상 플라스틱에 산소차단 물질이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얇게 만들면서 계속 감량을 시켜왔지만, 더 감량하면 품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재활용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라면봉지, 재활용 된다. 태워서

<한겨레>는 26년 전인 1994년 부대찌개 등에 라면만 넣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스프가 하루 20만개에 달한다는 기사를 썼다. 6개월 뒤 삼양식품은 스프는 없고 라면만 들어 있는 ‘사리면’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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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라면이든 사리면이든 가루를 탈탈 털어 분리배출하는 라면봉지에도 ‘플라스틱 OTHER’가 찍혀 있다. 과자봉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많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복합 재질 플라스틱은 다른 플라스틱 제품으로의 ‘물질 재활용’이 어렵다. 그러나 라면이나 과자 포장재로 사용된 비닐을 한 데 모아 소각해 난방 등 필요한 곳에 활용하는 방식의 ‘에너지 재활용’은 가능하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 집계를 보면, 2019년 기준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은 한국(74.6개)로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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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슨코리아가 조사한 라면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농심이 만든 2020 전국 라면 인기지도. 농심 제공

맥주 페트병, 재활용 어렵다. 캔으로 마시자

갈색이나 초록색인 맥주 페트병은 재활용할 수 있지만 까다롭다. 이미 색깔이 들어가 있고, 나일론을 겹쳐 만들기 때문에 쓰임새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김미화 대표는 “투명한 플라스틱은 여러 색을 입혀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갈색이나 초록색 플라스틱은 활용 방안이 많지 않다. 게다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재질을 감싸서 분리하기도 어렵다. 재활용에 방해가 돼서 폐기되는 게 많은 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유색 페트병 등의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됐지만, 페트병 맥주는 5년의 유예기간을 받았다. 투명한 페트병으로 바꾸면 햇빛에 맥주가 산화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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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최근 만원에 여러 캔을 묶어서 파는 등 맥주의 가성비가 많이 좋아져서 페트병 맥주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유예기간 동안 방법을 찾아보고 결론이 어떻게 나든 정책을 따르려 한다”고 말했다.

편의점용 커피컵, 재활용 어렵다. 뚜껑이라도 분리하자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컵이나 요구르트컵도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 중 하나다. 알루미늄 같은 금속 성질의 뚜껑이 붙어 있는데, 뚜껑을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분리해도 접합 부분에 알루미늄이 남을 수 있다.


홍수열 소장은 “요구르트 병과 알루미늄 뚜껑 모두 무거운 편이라 물에 가라앉는다. 재활용 플라스틱은 녹여서 원료로 만드는데, 녹일 때 알루미늄 조각들이 플라스틱에 섞여 들어갈 수 있다. 금속 성분이 섞이면 재활용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고 했다. “모든 소비자들이 뚜껑을 분리해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경우 재활용 비용이 많이 들어 재활용 업체에서 선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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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플라스틱 용기는 재활용되지 않고 그냥 버려진다. 몰랐다.

분리배출을 해도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들이 있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은 허탈해한다.


대학생 권민재(23)씨의 말이다. “재활용 마크가 붙어있어도 재활용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삼각형 화살표 표시를 보고 다 재활용이 된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는데 실제로 재활용되는 확률은 적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분리수거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었다. 이제 그냥 플라스틱 자체를 덜 쓰자는 생각으로 밥도 소분해 먹고 생수도 웬만하면 안 사먹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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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었다. 생각해보니 물이 더 아깝다.

전문가들은 재활용이 어렵다고 낙담하기 보다는 재활용이 수월해질 수 있도록 플라스틱 소재를 단순화하고 분리배출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미화 대표는 “기업에서도 꼭 복합 재질의 플라스틱을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한가지 재료를 활용해 재활용이 쉬운 재질로 용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열 소장은 “같은 기타 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비닐과 용기 각각 따로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게 만들어야 한다. 생산자들이 단일 재질로 제품 용기를 전환시킬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2020.11.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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