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이 건물·도로 놓아 ‘임대 섬’…분양이 임대를 구별짓는 방법

[비즈]by 한겨레

[기획] 소셜믹스 아파트엔 차별이 산다


① 구별- 섞이지 않는 이웃

소셜믹스 속 외딴섬 임대동의 설움



한겨레

서울 마포구 ㅍ아파트 3개 임대동(왼쪽)이 조합원·일반분양동(오른쪽)과 따로 떨어져 지어지고 있다.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에는 사회복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사실상 다른 단지처럼 보인다. 옥기원 기자

한겨레

13년이 지난 지금, 소셜믹스가 추구했던 거주지 사회통합은 얼마나 이뤄졌을까? <한겨레>는 서울지역 주요 소셜믹스 단지 30여곳을 취재하고, 임대와 분양세대 거주자들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관리사무소를 방문하고 전문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세차례에 걸쳐 소셜믹스 단지의 현실을 살펴보고, 화합을 위한 방법을 찾아본다.


3년 전 완공된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만리2구역 재개발로 들어선 이 아파트 13개 분양동과 1개 임대동 사이에는 중·고등학교와 교회가 있다. 방문자들은 서로 다른 단지로 느낀다. 입주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임대동인 114동에 사는 한 주민은 “출입구도 다르고 마주칠 일도 없어서 사실상 같은 단지가 아니”라고 말했다. 2013년 12월 준공한 서울 성북구의 ㅇ아파트도 비슷하다. 분양동인 101~106동(361가구)은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임대동(201동, 79가구)은 초등학교와 어린이공원 건너편에 따로 배치돼 있다. 처음 방문한 이들은 임대동을 찾아 헤매기 십상이다. 분양동은 1단지, 임대동은 2단지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년 3월 완공 예정인 서울 마포구 ㅍ아파트의 3개 임대동(295가구)도 사회복지시설을 사이에 둔 채 조합원·일반분양동과 떨어져 따로 지어지고 있다.


한 단지 안에 분양아파트와 공공임대아파트를 섞어놓자는 게 소셜믹스의 취지인데, 실제로는 믹스(혼합)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분양세대와 임대세대가 구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집값에 영향을 미친다”며 끊임없이 분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해 별도로 지은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들이 슬럼화해 ‘도시 속 섬’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셜믹스 정책이 도입됐는데, 규모만 작아졌을 뿐 ‘배제된 섬’이 도시 곳곳에 들어서게 된 셈이다.

한겨레
한겨레

소셜믹스 정책은 저소득층 전용 공공임대아파트 단지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서울의 경우 1980년대 중후반 한강 정비사업으로 새로 생긴 서울 강서구 폐천 부지에 도시개발아파트 사업이 진행되면서 들어선 가양 4, 5단지가 대표적이다. 이후 인근에 가양 우성, 가양 대림경동 등 일반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지역 사이 격차가 벌어졌다. 현재 가양지구 4, 5단지 슬럼화는 심각한 지역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들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점들을 고려해 2000년대 들어 소셜믹스 정책이 본격화했다. 서울시는 2003년 공공임대주택 10만호 공급 계획을 발표하며 ‘혼합단지 확대’를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2005년에는 재건축 아파트에 임대주택 공급을 의무화하는 관련 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 결과 2007년께부터 서울 장지·발산·은평지구 등에 대규모 소셜믹스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겨레

이후 소셜믹스 단지는 계속 늘어나 올해 9월 말 기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스에이치)가 관리하는 339개 소셜믹스 단지에 총 25만7295가구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18만8357가구가 분양이고 6만8938가구는 임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33개 단지) 등도 소셜믹스 단지를 관리하지만 서울에 비해 규모가 작고 집값·소득 격차가 크지 않아 분양과 임대단지 사이 갈등이 적은 편이다.


소셜믹스 정책은 2010년 이후 같은 동 안에 통로를 구분해 임대와 분양 세대를 섞는 형태로 진화했다. 에스에이치가 운영하는 소셜믹스 3440개 동 가운데 임대와 분양이 같은 동 안에 있는 경우는 712개 동으로 전체의 21%를 차지한다. 동과 통로로 분양과 임대를 구분해 차별이 생기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에스에이치는 같은 통로 안에서도 분양과 임대 세대를 섞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는 2028년까지 공공재개발·재건축과 신규 부지 발굴을 통해 주택 11만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혀, 다양한 형태의 소셜믹스 단지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재건축·재개발조합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서 정한 15% 임대주택 의무비율만 지키면 된다’며 분양과 임대 단지를 분리해 지으려 한다. 부자 동네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ㄷ단지는 분양동과 임대동의 높이와 색깔 등 외관에서 차이가 난다. 21개 분양동은 최고 33층 고층으로 지어졌지만, 2개 임대동(301, 323동)은 후문 쪽에 7층 높이로 지어졌다. 임대동은 분양동과 달리 흑갈색으로 도색해 인근 주민들은 상가 건물로 착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서울 지역 주요 재건축 조합들은 임대세대가 섞일 시에 분양세대와의 갈등과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공공재건축을 통한 소셜믹스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겨레

서울 강남구 ㄷ아파트 단지. 높은 층수의 분양동(303동) 옆에 낮은 층수의 임대동(301동)이 보인다. 임대동 겉모습이 분양동과 차이가 커서 상가 건물로 착각하는 주민들도 있다. 옥기원 기자

재개발·재건축조합은 평수 차이 때문에 분양동과 임대동 분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분양세대 대부분은 전용면적 59~135㎡로 중형 평수 이상이지만, 임대세대는 30~50㎡짜리 소형 평수여서 설계상 같은 동에 배치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가구수 의무비율만 충족하면 돼 한 동에 40㎡ 이하 소형 평수를 몰아 기부채납하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임대동을 자연스럽게 분양동에서 떨어뜨려 짓게 된다.


에스에이치 건축설계부 관계자는 “공사가 공급하는 단지는 임대동 분리 같은 차별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재건축단지의 경우 조합은 법에 정해진 임대주택 공급분만 임대동으로 따로 지으려고 해 동 분리 같은 차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정석 서울주택도시공사 수석연구원은 “소셜믹스는 함께 잘 살기 위한 시대적 요구다. 임대세대를 분리하고 차별하는 게 아니라 함께 포용해 더불어 살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며 “조합들이 소형 평수뿐만 아니라 중형 평수를 (임대세대로) 공급하도록 유도하는 정책과 함께 1개 동에 중대형 평수와 소형 평수를 섞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기원 송경화 기자 ok@hani.co.kr

2020.12.02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