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소문이 모락모락, 그럴 ‘만두’ 하지

[푸드]by 한겨레

아현시장 ‘레닌 순댓국’ ‘표고버섯 만두’


코로나19 때문에 시장 걱정돼


위로와 격려 보내고파 “부디 안녕하시길”


전국 택배 가능한 만둣집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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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바글 끓는 뚝배기에 차가운 숟가락을 담가 거품을 가라앉혔다. 뜨끈한 국물로 배 속 온도를 높이니, 달달 떠느라 바싹 목에 올라붙었던 어깨가 스르르 내려갔다. 그제야 주위를 살필 여유가 생겼다. 벽에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이 붙어있다. 다른 벽엔 체 게바라 사진이 붙어있다. 차림표 아래 써 붙인 글귀도 마음에 들었다. ‘코(가래침)는 밖에서 풀어주세요. 술 취한 분께는 순댓국을 팔지 않습니다.’ 지난해 겨울, 우연히 방문했던 시장통 국밥집의 ‘혁명’이 마음에 들었다. 나 혼자 ‘레닌 순댓국’이라 별명을 지어 붙이고 이따금 그 국밥을 먹었다. 진짜 이름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시장에 있는 ‘은성 순대국’의 메뉴 ‘순대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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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실내 흡연을 규제하는 법이 시행된 게 2015년인데, 우리는 훨씬 전부터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했어요. 당시 손님 30%가 떨어져 나갔죠.” 늘 국밥만 후루룩 먹고 가다가 가게의 원칙이 좋아서 단골이 되었다고 주인에게 말을 붙였다. 하지만 그런 원칙을 불편하게 여기고 발을 끊는 이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한신(58)씨는 ‘은성 순대국’의 주인장이자 러시아 여행 전문가이자 작가다. 매년 여름 두 달간 가게 문을 닫고 아내 심재순(62)씨와 여행을 떠난다. 가게에 전시한 자신의 책은 판매용이다. 매년 인세 전액을 모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타슈켄트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전공하는 학생을 지원한다. “올해는 네명에게 전액 장학금을 전달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저랑 친해지지 않으려고 해요. 가까워지면 책을 사라 권하니까.” 그가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를 술술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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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시장 안쪽 골목으로 내려가면 만둣집 ‘건강한 찐빵’을 만난다. 중국 가정식도 판다. 고기와 김치, 기본적인 만두 외에도 표고버섯 만두, 셀러리 물만두 등이 별미다. 입에 맞는 만두 찾기가 어려웠다가 이 집 만두에 반했다. 결국 여기로 정착했다. ‘나만의 비밀 맛집’으로 꼭꼭 숨겨놓은 곳인데, 벌써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멀리서 택배 주문도 온다고 한다. 중국 하얼빈에서 식당을 했던 박금자(71) 사장은 4년 전 아현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시장이 버텨주기를 간절히 빌었고, 안녕치 못할 즈음에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미안함을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멋진 국밥집과 맛있는 만두가 있는 나의 단골 시장을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시장에 넘쳐나던 따스한 정이 한없이 그리운 시대다. 여러분의 단골 시장은 어디인지. 지금 그 시장이 우울하다. 찾는 이 없는 적막한 시장이 그저 걱정된다. 한 번쯤 각자의 소중한 단골집과 눈인사를 주고받는 가게 주인의 얼굴을 떠올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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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ESC는 당장 시장 나들이를 하기 어려운 요즘, 전화로 택배 주문을 할 수 있는 충주 시장 만둣집을 모았다. 테이블 몇 개를 놓고 장사하는 시장의 작은 국밥집에 반해 대구의 수많은 돼지국밥집을 찾아다닌 애호가도 만났다.


지난해 여름에 들렀던 포항 죽도시장의 아침을 기억한다. 오전 9시. 흥겨운 트로트 가락에 맞춰 형광색 옷을 입은 에어로빅 지도자가 경쾌한 동작을 선보이자, 시장 상인들 하나둘 따라 하기 시작했다. 호떡집 할머니, 내복 가게 아주머니, 멸치 파는 할아버지 등이 매일 반복해 몸에 익은 동작을 하는데, 태극권 고수인가 싶을 정도로 우아했다. 각자의 속도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던 그들의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부디 안녕하시기를. 토닥토닥 그리운 시장이여, 잘 버티길.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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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자 타고 날아온 만두! 추위 날리네!


충주 재래시장에 있는 만둣집들


추운 날 더없이 맛난 음식


전국 택배 가능한 시장 만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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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사람들의 솔푸드. 매콤한 시장표 김치만두가 궁금하지 않으신지? 충주시 무학시장 다리 위에 자리 잡은 ‘순대·만두 골목’을 중심으로 택배로 받을 수 있는 충주 시장의 만둣집 10곳을 소개한다.


‘우~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충주 무학시장 라디오 스피커에서 동물원의 ‘잊혀지는 것’이 흘러나왔다. 애틋한 기분에 사로잡혀 걸음을 멈췄는데 ‘우루루후 이히~ 쿵짝쿵짝’ 하는 디스코 메들리 가락이 겹친다. 자유시장 근처 노점에서 트로트 노래 모음집을 파는 소리였다. 두 음악이 한꺼번에 들리니 내면의 애수와 한국인의 흥이 서로 다툰다. 나도 모르게 몸이 건들건들 리듬을 탄다. 흥이 이겼다. 이게 시장의 맛이지 하고 섰는데 어디서 호루라기를 길게 불고 뒤이어 ‘펑!’ 하는 굉음이 울린다. 차가운 대기에 퍼지는 구수한 내음. 장터의 핫 플레이스는 역시 뻥튀기 기계 앞이다. 어르신 십여분이 저마다 자루를 안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달 30일은 마침 충주시 풍물시장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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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대체 충주의 어느 시장을 갔다는 건지 갸웃할지도 모른다. 저 소리 모두 한 자리에서 들었다. 충주는 무학시장, 자유시장, 공설시장, 풍물시장이 무학천을 가운데 두고 모여 있고 큰 마을처럼 연결되어 있다. 시장에 온 목적은 만두.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올해 일흔다섯 되셨다는 기사님께 여쭸다. “충주 분들은 명절에도 만두를 집에서 빚지 않고 시장에서 사다 먹는다던데요?” “우리 식구가 종종 만두를 사 와서 그거를 먹지요. 만두 사러 오셨어요? 가서 잘 보시면 손이 바쁜 가게가 있어요. 거기가 잘하는 집이지요.” 시장에 도착해 잠시 노랫가락에 넋이 빠졌다가 본격적으로 만둣집을 기웃거렸다. ‘기사님, 다들 손이 바빠 보이는데 어쩌면 좋지요.’


먹어봐야 맛을 아니까. 충주의 명물로 꼽히는 순대·만두 골목부터 시작했다. 공설시장과 무학시장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인 때는 1982년. 순대 노점이 생기면서 순대 다리로 불리다가 2008년께 시장 지붕을 올려서 지금은 골목 형태가 되었다. 입구의 비닐 커튼 안으로 들어가면 간이식당이 열두곳 정도가 모여 있다. 골목 중간 순댓집 의자에 자리를 잡고 옆집, 건넛집, 맞은편 집에서 야금야금 만두를 사다 날랐다. 이 골목의 순댓국은 시래기된장국에 돼지 부속물을 썰어 넣는다. 순댓집에서 만두를 사다 먹어도 괜찮은 시스템인데, 하도 왔다 갔다 하니 ‘청풍순대’ 사장님이 야단을 쳤다. “아이고. 그 노무 만두 사러 다니느라 밥은 다 식어 빠지겠네.” 국밥 그릇에 뜨끈한 국물 한 국자를 더 부어주며 하는 말이다. 매운 만두를 먹다 입안이 얼얼해지면 된장 국물로 정리하니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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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바깥 공설시장 중간에도 양옆으로 만둣집들이 늘어서 있다. 값은 저렴하고 재료는 신선하며 매일 빚는 만두. 시장 만두에 기대하는 바를 모두 갖췄다. 만두를 쪄서 한 김 식으면 기름을 발라두기 때문에 냉동실에 보관해도 만두끼리 들러붙지 않는다. 포장해 먹으면 김치만두 1인분 8개에 2000원. 조금 크게 빚어 파는 곳은 12개에 3000원이다. 택배는 만원 단위로 김치만두는 50개, 고기만두는 40개. 택배요금 4000원 별도. 전화로 주문하면 된다. 가게를 돌며 챙긴 스티커 명함이 마치 만두 트레이딩 카드(스포츠 선수나 유명인의 모습이 인쇄된 수집·교환용 카드)를 모은 것 마냥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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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만두 충주 시장 김치만두는 고기를 넣지 않는다. 다들 매콤하고 칼칼한데 ‘장모님 만두’는 먹고 3초 후가 알싸하다. 매운맛을 어떻게 내는지 물었다. “생고추를 갈아 넣는 게 비법이지요. 고기만두도 배추 듬뿍 다져 넣고 바로 앞 정육점에서 그때그때 고기를 사다 써요.” 주인 함춘자씨가 어머니의 가게를 이어 올해 38년째 영업 중이다.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만둣집이다.(010-3443-9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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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순대 오공주 만두 ‘장모님 만두’와 더불어 추천하는 이가 많은 곳이다. 간이 제법 세고 만두 표면에 바른 들기름 향이 진해서 만둣국용보다 간식, 그것도 스트레스 많이 받은 날 화끈한 간식 삼으면 좋겠다. 맥주 안주로도 오케이.(010-4878-2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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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척만두 아삭아삭한 배추 씹는 맛이 충주 시장 만두 중 가장 도드라진다. 시판 냉동만두가 따라오지 못할 식감. 두부의 양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올해 배춧값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물으니 직접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주문시 ‘맵게’, ‘덜 맵게’ 요청하면 그에 맞춰 준다고 한다.(010-6274-3305)


대구만두 피가 시장 만두 중 가장 얇고 탄력이 있다. 두부 입자와 당면이 매운맛을 고소하게 누그러뜨린다. 다른 만두에 견줘 강한 인상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모든 만두를 먹고 다시 맛보니 얇은 피와 속의 균형이 적당하고 뒷맛이 말끔해서 여러 번 집어먹게 된다.(010-5743-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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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분식 시장 안 만둣집 대부분 감자만두를 취급한다. 감자전분을 반죽한 쫀득하고 도톰한 피에 썩 잘 어울리는 만두소를 만드는 집은 대우분식이다. 2000년대 초반, 감자만두를 이 시장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수분을 쪽 빼서 아삭아삭 씹히는 큼지막한 배추가 만두피의 찰기에 밀리지 않는다. 강점영 할머니가 1988년부터 33년째 한 자리를 지킨다.(010-2336-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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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현분식 둥근 만두를 한 입 베어 무니 옛날 대나무 도시락통에 담았던 분식집 찐만두가 떠올랐다. 발효한 반죽의 구수한 단맛에 매콤한 김치 속이 잘 어우러진다. 만두피가 맛있어서 넉넉하게 잡은 주름도 좋다. 만두피를 하루 숙성해 다음 날 쓴다고 알려준 지명순 할머니는 “하다 보니 (업종을) 바꾸기도 그렇고 이렇게 몇 년 더 하다가 마는 거지”라고 말하며 웃는다. (010-2391-2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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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분식 충주 택시기사가 사다 먹는다고 한 만둣집. 시장 김치만두 중에 제일 순하다. 덜 짜고 적당히 매콤하다. 곱게 으깬 두부는 물기를 다 빼지 않아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남긴다. 포장해서 다른 만두와 시차를 두고 먹었는데 뱃속이 가장 편안했다.(010-5147-8702)


대성야채만두 고기만두가 무척 좋아서 김치만두가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일 정도였다. 분류는 고기만두지만 가게 이름처럼 채소가 풍성하다. 포장해 집에서 식은 만두를 먹었는데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만두를 갈라 속을 확인하니 부추, 양파, 당근, 배추가 큼지막하다. 1인분만 산 것을 후회했으나, 택배로 주문하면 된다.(010-5330-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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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만두 충주 김치만두는 양념한 배추를 하루 숙성해 만두소로 쓰는 게 보통인데, 형제만두는 그보다 좀 더 숙성한 김치 맛이다. 볶은 김치 마냥 진한 맛인데도 개운하다. 삼각으로 빚은 모양새가 시장 만두 중에 제일 날렵하고 깔끔하다. 본래 노부부가 하던 가게를 지인이 이어받았다. 친정 부모가 농사짓는 배추와 고춧가루를 받아서 쓴다고 한다.(010-5486-6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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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김치만두 찐만두만 연달아 먹다 ‘명동김치만두’에서 만둣국으로 마무리했다. 만두를 숟가락으로 가르고 푹 익힌 다진 마늘의 단맛이 도는 사골국물에 흥건하게 적셔 먹으니 매운맛도 누그러지고 언 몸이 훈훈해진다. 만두피가 도톰해서 푹 끓여도 터지지 않는다. 아들 부부가 어머니를 도와 가업을 잇는 집이다.(010-4025-3360)


충주/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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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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