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아나운서’ 임현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

[라이프]by 한겨레

[토요판] 은유의 연결


첫 에세이집 낸 MBC 임현주 아나운서

금기 깬 ‘안경 아나운서’로 눈길

외모가 우선순위 아니라면서도

몸치장 중시해온 관행과 작별

‘덜 꾸밀 용기’ 대표적 인물로

한겨레

임현주 아나운서가 12월9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아나운서로서 자신이 시도한 변화와 그를 통해 스스로를 곧추세울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임현주(35) 아나운서.


2018년 4월12일, 당시 <문화방송>(MBC) ‘뉴스투데이’ 진행자 임현주 아나운서는 국내 매체는 물론 외신에까지 이름이 났다. 여성 앵커의 ‘안경’은 10년차 아나운서의 자기 발언이자 방송계 성차별 구조를 드러내는 ‘언어’로 발신됐다. 어떻게 안경을 쓰게 됐냐는 세상의 물음은 외려 그를 각성시켰다. ‘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아홉살부터 키워온 아나운서의 꿈이었다. 단 한번도 아나운서의 경쟁력 1위가 외모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면서도 몸치장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모순된 생활과 그는 비로소 작별했다. 딱 붙는 원피스 대신 편한 재킷을 입었다. 덜 꾸밀 용기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름다움에 대해 사유하게 됐다. 그렇게 하나씩,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며 생각의 기둥을 쌓아갔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거점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하면 안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최근엔 에세이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를 펴냈다. 선택받길 기다리는 직업에서 선택해나가는 작업으로, 존재의 방향을 튼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았다. <문화방송> ‘생방송 오늘 아침’ 진행을 마친 임현주 아나운서를 12월9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만났다. 아침 방송을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나 새벽 출근을 하는 그이지만 특유의 활기를 뿌리며 저자로서 첫 인터뷰의 설렘을 드러냈다.


큰 좌절에서 낸 용기 ‘다 필요 없고 나답게

―아나운서는 하루 여덟시간 노동이 어떻게 지켜지는 거예요?


“굉장히 자율적이에요. 출퇴근도 자기 방송시간 기준으로. 저 같은 경우에는 아침 일찍 출근하니까 일찍 퇴근해요. 나머지 시간은 저를 채우는 시간으로 써요. 퇴근하고 나서 3시쯤 낮잠을 좀 자고 저녁에 다시 제2의 하루가 시작돼요.”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겠네요. 언제 출간 제안을 받았나요?


“안경이 이슈가 됐을 때 제안이 몇군데 왔었어요. 아직까지는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지가 않고 안경 이슈에만 너무 집중이 되니까 거절했죠. 작년에 근속 5년 휴가를 받아서 한달간 여행을 했어요. 밤마다 글을 조금씩 썼는데 재밌더라고요. 올해 3월에 제안이 왔을 때 한다고 했어요.”


책 발간하면서 주체적 삶 강조

독자에게 편견 안 주려 사진도 빼

‘외모 일상평가, 여성 힘 무력화’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 인상적


―인터넷에 ‘임현주’를 검색하면 아직도 안경 사건이 대부분 언급돼요. 어떠세요?


“기사 타이틀에 ‘안경 아나운서’라고 하면 항상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이게 뭐라고, 계속 우려먹는다고 느낄 것 같은 거예요. 그게 나지만 나의 모든 것처럼 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또 그게 저를 설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떼려야 뗄 수 없겠죠.”


―그게 방송의 오랜 암묵적 합의를 깬 거니까 쉬운 일은 아니죠. 용기와 힘의 원천이 무엇이었을까요?


“아주 깊은 좌절에서 온 거 같아요. 전엔 누가 나를 칭찬하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 했어요. 남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내가 이 직업을 통해서 얻고 싶었던 게 뭘까 돌이켜보니, ‘신뢰 있는 앵커’라고 말했지만 그 안의 가장 큰 뿌리에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뭔가를 해볼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네네 하고 알아서 눈치껏 따랐죠. 그랬다가 어느 시기에는 뉴스를 그만두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너무 불행한 거예요. 난 끝났나? 준비한 시간이 이렇게 길었는데, 내가 방송한 시간이 그에 비해 너무 짧고 허망한 거예요. 그때부터 오히려 진짜 끝이 아니라 정말 시작으로, 다 필요 없고 재미있게 나답게 해보자, 해서 능동적으로 많이 변했던 것 같아요.”


―아나운서는 맡은 방송이 없으면 출근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음, 아나운서는 정말 직장인이에요. 출퇴근하면서 방송에 보이는 것 외의 일들을 하죠. 매시 정각에 라디오 뉴스도 하고, 또 우리말 연구회도 있고 팀별로 하는 일이 있어요. 평소에 자기를 채우는 자기계발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요.”


―그 기간이 어느 정도 됐어요?


“한 1년 반쯤. 근데 간간이 방송을 해도 주체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계속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요. 아나운서의 메인 꿈은 방송을 하는 거잖아요. 자기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즐거움이 너무나 큰 사람인데 아무것도 못 하니까 깊은 패배감과 자괴감 같은 걸 느껴요. 오히려 제 아래 후배들에게 기회가 가고, 2년간 뉴스를 진행했지만 그게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진짜 자존감이 너무 낮아졌어요.”


―아나운서를 준비할 땐 기다림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정보가 없었나요?


“몰랐어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누구나 이 직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존감이 있고, 나는 입사하면 당연히 내가 (롤모델이 있었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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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아나운서가 인터뷰 중 웃어 보이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임현주는 2010년 부산·경남 지역 민영방송 <케이엔엔>(KNN)에서 아나운서를 시작했다. KBC 광주방송, <제이티비시>(JTBC)를 거쳐 2013년 <문화방송>에 입사했다. 여러 프로그램을 맡고 방송 경력이 쌓여갈수록 여성 아나운서는 ‘방송의 꽃’이라는 말이 단지 수사가 아님을 실감했다. 매스컴에서는 ‘여신 아나운서’, ‘베이글 아나운서’로 불리며 소비됐다. “그동안 드넓은 초원에서 여자 남자 구분 없이 똑같이 경쟁하고 협력하며 뛰다가 갑자기 관상용 화초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방송을 하고 있어도 언제 이 프로그램을 그만둘지 몰랐다. 시청률이 안 나와서 분위기를 바꿔보자 그러면 먼저 진행자를 교체했다. ‘꽃’은 다른 ‘꽃’으로 쉽게 대체됐다. 불안정한 근무 조건은 불안감으로 번졌다.


―중후한 남성과 젊고 예쁜 여성이 뉴스의 공식처럼 된 상황에서, 여성 아나운서에게 일찍 뉴스 진행의 기회가 오는 게 안 좋네요?


“맞아요. 구조적인 문제인데, 여자 앵커는 보통 20대에 기회가 오니까 성숙도가 쌓일 수 없는 거예요. 내가 뉴스 멘트를 바꿀 수 있을까 자신이 없고, 뉴스는 정확해야 하는데 틀리면 어떡하나 위축되죠. 그런 구조가 너무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왔어요. 이걸로 고민을 안 해본 여자 아나운서가 없을 거예요. 되게 아이러니해요. 외적 조건을 쌓지 않으면 나에게 방송 기회가 안 오고, 방송을 못 하면 내공도 안 생기는 거죠.”


2017년 12월26일 <문화방송> ‘뉴스투데이’ 진행을 맡게 됐다. 이전에 제대로 못 해보고 그만두었던 아픈 프로그램이었다.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이제는 정말 자유롭게 해보자,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언제 그만두더라도 후회 없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는 방송에 임했다. 그즈음 평창겨울올림픽 때 컬링 국가대표팀 김은정 선수가 ‘안경 선배’로 불리며 화제가 됐다. 업종 불문하고 일하는 젊은 여성에게 안경은 금기라는 비판의 말들이 하필 그의 귀에 착 붙었다. 그러고 보니 뉴스 진행자도 안경 쓴 여성 선배가 없었다. 그는 아침 6시 뉴스를 진행하기 위해 새벽 2시40분에 일어나서 메이크업을 하고 준비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고 눈이 늘 피곤했다. 그렇다면 ‘나부터 안경을 써볼까’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날 이후 삶에서 제일 달라진 게 뭐예요?


“2년 반쯤 흘렀네요. 그날의 작은 시도가 이제 저를 자유롭게 만들었어요. 몸도 생각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저의 모든 행동에 따라붙어요.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없는 것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고정관념을 스스로 많이 안 가지려고 노력을 해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어요?


“이 나이 때는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가 있어야 하고, 이 연차면 이런 역할을 더 해야 하고. 제가 관심을 갖다 보니까 그런 사람이 많이 보여요. 그게 너무 큰 변화예요. 신기할 만큼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물론, 나를 잘 아는 줄 알았는데 나를 잘 모르나 해서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요.”


―어떤 말이 상처가 되었나요?


“진짜 별거 아닌데요. ‘너 페미니즘이야? 페미 하니?’(웃음) 유튜브 할 때 제가 분홍가발 썼더니 ‘튀고 싶어 한다’, ‘이상한 거 아니냐’는 시선들도 있고요.”


―너 페미니스트야, 라고 물으면 뭐라고 해요?


“처음에는 어? 이 질문의 의도가 뭐야? 기분이 묘하게 나쁘면서 저도 어버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뭐라고 하실 것 같아요?


“왜 물어봤어? 페미니즘은 누구나 알면 좋은 건데, 많은 오해가 있어요. 무조건 꼬투리 잡는다, 무조건 남자를 싫어한다, 쟤는 대화하기 힘들 거야. 근데 아니잖아요.”


―페미니즘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뭐가 좋아졌어요?


“어떤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진 거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각자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죠. 넌 여자니까, 난 남자니까 이런 게 아니라 난 이런 성향이니까, 넌 이런 사람이니까 이렇게 살자, 이런 대화가 가능한 거죠.”


―얼굴이 공개된 여성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살아가는 불편함 같은 것이 있는데, 어떻게 견디세요?


“진짜 견디는 거예요.(웃음)”


―어떻게 견뎌요?


“대개는 응원과 악플이 같이 오는데 응원의 목소리가 줄어들 때가 있고 그러면 악플이 더 눈에 띄는 때가 있어요.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죠. 그럴 때 외롭더라고요. 근데 결국 내가 뭔가 하는 건 날 위해서다, 그게 맞더라고요. 세상에 뭔가를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날 위해서 하는 거죠.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니까요. 그걸로 저를 지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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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아나운서가 문화방송 사옥 복도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임현주는 2020년 2월13일 <문화방송> 시사교양물 ‘시리즈엠(M)’에서 ‘노 브래지어 챌린지’에 참여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관종이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튀어 보이기보단 용기를 주고 싶었다며, 누군가 변화를 찾는 계기가 됐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원하는 것들을 하고, 원하지 않는 것들을 하지 않으면서 그는 지금의 나에 충실하게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에서 지금부터 행복하자며 주체적인 삶을 강조했어요. ‘외모에 대한 일상의 평가들이 여성이 가진 진짜 힘을 무력화시킨다’는 메시지를 임현주 아나운서의 삶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감동이었어요. 그런데 ‘두드리면 길은 열린다’, ‘세상에,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개인의 브랜드가 중요해진 시대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능력주의 담론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글의 톤을 많이 고민했어요. 내가 뭐라고 인생은 이런 것이다, 이런 말 못 해요. 나도 그렇게 못 사는 사람이고. 결국에 제가 찾은 길은 진짜 솔직하게 쓰자, 느낀 감정, 있었던 일들. 결국 개인이 바뀌어야 하지만 그게 또 다는 아니에요. 지향은 당연히 구조의 변화고. 근데 이 구조가 변하기 위해서 개인이 문제의식을 가져야죠. 구조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도 저는 좀 수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활 속의 불편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이 사회가 바뀌잖아요.”


“고정관념 많이 안 가지려 노력”

‘노브라 챌린지’는 용기 전파 시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세상에,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임현주 아나운서는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학벌과 외모 자원이 있고, 지상파 방송국 정규직이세요. 이런 조건이 객관적으로는 유리한 출발선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으세요?


“안 믿을 수도 있지만 저는 진짜 제 학교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살아서 그게 나의 걸림돌이라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아요.”


―걸림돌이 아니라 자원이 될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저는 걸림돌이라고도 생각해요. 자원이라고 느낄 새가 없죠. 방송국에서 제가 그 학벌을 가졌다고 좋은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학자로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사람도 아니고, 외모로 뜨고 싶은 사람도 아니고. 제가 하고 싶은 건 글을 쓰는 건데 저는 완전히 햇병아리라서 오히려 작가님들이 부러워요. 유튜브도 크리에이터들은 어떻게 저렇게 톡톡 튀게 하는지 부럽고…. 제겐 밝은 에너지가 장점인데 이것도 저는 조금 더 분위기 있고 싶어요. 누군가 저를 볼 때 그래도 이 사람은 많은 걸 가졌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제가 항상 제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편견이었네요.


“오히려 아나운서가 책을 쓴다고 했을 때에도 편견이 있잖아요. 아나운서가 쓴 글은 뻔하겠지. 재미없을 거야. 인생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했겠어. 이런 것들도 제가 없애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책에도 표지에 아나운서 사진을 안 넣었어요. 저는 너무 싫어서 무조건 빼달라고. 그것부터 편견을 주는 거니까.”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 행동을 촉발하는 마법의 화두 같아요. 요즘 이런 질문 하는 거 있으세요?


“비혼출산.(웃음)”


―아, 사유리씨 경우처럼요?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게 점점 퍼져나가서 우리가 목소리를 같이 내는 거죠. 동시에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고 갈등도 심해지는데, 그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 항상 안타까워요.”


―서로에게 용기가 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죠. ‘나는 대체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나운서 직업에만 해당되는 것 같진 않아요. 그런 불안을 느끼는 다른 동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네요. 대체되지 않으려면 나만의 특별함이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늘 내가 안전한 길을 갔구나, 그런데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두루뭉술하게 유명해지고 싶고,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다, 화려한 이미지만 생각했지, 그걸 통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뭘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을 안 해봤다는 걸 나중에 느꼈어요. 살면서 어떤 의문이 든다면 안전한 길에서 조금 벗어나도 괜찮다, 안전하고 뭐고를 다 떠나서 일단 저질러봐, 너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근데 그게 모든 직업에 통용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프리랜서 하실 거예요?


“(웃음) 저는 꿈꾸고 있죠. 지금도 반은 프리랜서라는 마음으로 살아요.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지만 기대가 돼요.”


1915년 샬럿 퍼킨스 길먼은 <여성의 옷>에서 “옷은 사회적 휘장이고, 일종의 사회적 피부다”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의복에서 남녀 구분을 없애가면서 일터나 카페 같은 남성의 공간으로 진출해 들어갔다. 2018년 한국의 지상파 뉴스에서 ‘여성 앵커의 안경’이 화제가 된 것은 변화의 물줄기가 일상으로 스며든 것이다. 방송에서 관상용 화초로 고정되길 거부하고 폭넓은 활동성을 확보한 그는 56만 팔로어를 둔 인스타그램에 얼마 전에도 이런 멘션을 남겼다. ‘하고 싶은 것 진짜진짜 많음.’ 녹취 홍혜원


임현주를 만든 시간들

한겨레

2015년


혼자 여행을 시작하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방송국 안에서 한계를 느끼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혼자 여행을 시작했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며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겨레

2018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의문을 갖고 뉴스에서 안경을 끼게 되었다. 이후 방송에서 역할과 외적인 모습에 대해 더욱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한겨레

2018년


크리에이터가 되다. 브랜드 확장의 시작. 답답하게 느껴졌던 틀을 깨고자 유튜브를 개설하고 다소 파격적인 분홍머리로 첫 영상 공개. 원하면 가볍게 시작해보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겨레

2020년


여성, 약자의 이슈에 눈을 뜨다. 생애 첫 악플도 경험. 젠더, 약자, 동물권 등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멋진 동료들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 사진은 ‘노브라 챌린지’를 하던 날 찍은 것.

한겨레

2020년


글을 쓰다. 첫 책 출간. 듣는 사람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쓰는 사람으로의 확장.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무너지지 않을 힘을 갖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 은유: 글 쓰는 사람. 글쓰기 수업도 한다. <글쓰기의 최전선> <다가오는 말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펴냈다. 2005년부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인터뷰를 해왔다. 성폭력 피해 여성, 국가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산재 노동자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기록했다. 사람을 살게 하는 말을 모으고 나누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은유의 연결’은 4주에 한번 연재.

2021.01.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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