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거실을 미용실로! 나는 우리 집 미용사

[라이프]by 한겨레

과거 인터넷 떠돈 미용실 유머 생각하면


웃음이 멈추지 않아…이젠 그리운 정경


영상으로 손님 만나는 헤어디자이너들


그들 도움 받아 집에서 이발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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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던 미용사가 “무릉도원이세요?”라고 묻자 손님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네 무릉도원이네요”라고 답했다. 그 말에 조금 놀란 미용사는 이렇게 말했단다. “아니요. 물 온도 어떠시냐고요?” 대략 5~6년 전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퍼진 우스갯소리다. 이 이야기를 접한 많은 이가 미용실에 갈 때마다 ‘물 온도’를 ‘무릉도원’으로 잘못 알아들은 대목이 떠올라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는 후기도 전한다. 나도 그중 한명이다. 미용실 일화에는 두 가지 공감 포인트가 있다. 첫 번째 미용실 두피 마사지는 극락을 떠올릴 정도로 개운하다는 점. 집에서 미용사의 손놀림을 따라 해도 영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내 머리의 무게를 타인의 손에 온전히 맡겨야 느끼는 감각이다. 또 한 가지는 미용실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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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 안경을 벗으면 눈이 침침해서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평소 주관이 뚜렷하고 의사 표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미용실 커트보만 두르면 어쩐지 주눅이 들고 “그냥 적당히 어울리게 잘 해주세요”라고 흐릿하게 말하게 된다. “길이는 놔두고 살짝만 다듬어주세요”라고 하면 나의 ‘살짝’과 미용사의 그것이 현저하게 달라서 머리카락이 훅 잘려나가는 일도 겪는다. 미용사가 건네는 스몰토크(일상대화)에 전력을 다해 진지하게 대답하다가 진이 빠지기도 하고, 제때 대답하지 못해 어긋난 타이밍에 딴소리할 때도 있다. 요즘 미용실은 사진이 있는 메뉴판 형식의 안내판을 제시해 원하는 스타일을 고를 수 있게 하지만, 그것은 라면 포장지의 ‘조리예’ 같은 것일 뿐이다. 결과물을 장담 못 한다. 이발이 끝나고 건물 화장실로 달려가 머리에 물 칠을 하며 ‘망한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진 적도 있었다.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긴급한 사정이 아니면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때다. 미용실을 가지 못해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자라 덥수룩해지는 요즘은 망하건 흥하건 간에 새 스타일로 새사람이 되는 경험이 간절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미용사들의 콘텐츠로 대리만족하다가 서울 청담동 유명 헤어디자이너 이성규의 채널 ‘기우쌤’에서 ‘세상 제일 망한 머리 대회’를 만났다. 누구나 한 번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망친 경험을 공감대로 ‘망한 머리’의 사연과 사진을 받고, 영상 출연을 허락하는 이들의 헤어스타일을 무료로 수습해주는 기획이다. 롤 빗으로 머리 손질을 하다가 실타래처럼 엉킨 고객의 머리를 8시간 동안 풀거나, 최신 유행 스타일로 층이 많이 지는 ‘허쉬 컷’을 했는데 뒷모습이 영락없는 해파리가 된 고객의 머리를 근사하게 복구해주는 마법 같은 솜씨 외에도 손님과 미용사가 나누는 가벼운 대화들이 미용실에 가지 못한 갈증을 풀어준다. 남의 대화를 듣다 보니 다시 미용실에 가면 나도 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유명 미용실에서 수십만원짜리 커트와 파마를 한 이들도 ‘망한 머리’가 되는 경우가 있으니, 한편으론 묘한 낙관이 생겼다. ‘혼자 파마를 하면 좀 망쳐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요즘은 가계지출을 줄이기 위해, 또 가족 중에 어린이나 노인, 환자가 있어서 파마나 커트를 집에서 하려는 이가 부쩍 늘었다. 조금 엉성하고 솜씨가 부족해도 가족과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는 보람이 있다. 미용사들도 그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제작해 코로나 시대와 보조를 맞춘다. 집에서 하다가 망하면 미용실을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지금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로 삼아보기로 했다. 이번 주 ESC는 ‘셀프 파마’와 함께 집에서 커트할 때 필요한 도구들을 소개한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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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집 파마 도전! 꼬불꼬불 풍성한 내 머리, 성공!


거리두기 2.5단계, 집콕 파마해볼까


탱탱하고 풍성한 컬, 기분도 좋아져


약품 공부, 실습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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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나들이는 자꾸 뒤로 미뤄졌고, 길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아대다가 결심했다. “집에서 파마를 해보자.” 긴 머리카락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말 수 있을까? 청사진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면 어떡하지? 파마는 고난도의 기술 아닌가. 여러 각도로 ‘셀프 파마’의 타당성을 검토한 결론은 이렇다. “재밌으면 장땡. 수틀리면 짧게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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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풍성하게 머리카락이 부푸는 파마다. 드라마에서 결혼 생각 없는 장녀나 자유분방한 막내딸 캐릭터들이 자주 하던 스타일이다. 컬이 잘고 균일한 머리카락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만, 중간 정도 굵기의 파마는 흉내 낼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해당 스타일을 ‘히피 펌’이라 부른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는 ‘망한 히피 펌’ 후기가 많다. 미용실에서 한 파마도 그러하니 감당이 될까 불안했다. 시작 전에 실패를 염두에 두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떤 분야에 대해 뭘 모르는지도 모를 때, 우선 해당 분야의 자격증 시험문제를 체크하는 게 좋다. 전문용어나 키워드를 찾는 방법이다. 미용(일반) 자격증 필기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니 60문항 중, 35개를 맞혔다. 36~37개가 최저 합격선이란다. 탈락이다. 그래도 문제를 풀면서 ‘환원제’라는 키워드를 얻었다. 파마 약제(펌제)는 보통 환원 반응을 만드는 1제와 산화 반응용 2제가 세트다. 1제에 포함된 환원제는 모발의 단백질 구조물 결합을 끊어서 웨이브를 만들거나 굽은 모발을 펴는 역할을 한다. 2제인 산화제로 형태를 고정하는 것이 파마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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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미용재료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파마 약(펌제·파마제)의 제품명만 백여가지가 넘는다. 발효 곡물, 해초, 효소, 황토, 채소, 우유, 심지어 홍삼까지 파마 약제 이름에 오르지만, 주원료인 환원제는 치오글리콜산, 시스테인, 시스테아민 세 가지다. 약제의 성분표를 확인하면 대략의 특성을 파악하기 좋다. 1제 성분표에 암모늄치오글리콜레이트가 맨 앞에 오는 펌제는 줄여서 ‘치오 펌제’라고 부른다. 헤어제품 전문기업 아모스프로페셔널의 설명에 따르면 치오 펌제는 ‘확실한 컬력을 부여하며 자극취가 강하다’고 한다. 암모니아 냄새를 말하는 건데 휘발성이라 모발에 남지 않는다. 다만 펌제를 모발에 오래 방치하면 머리카락이 손상될 수 있다. 시스테인에이치씨엘(HCL), 아세틸시스테인 등이 성분표 앞자리를 차지하는 시스테인 펌제는 ‘모발 손상 방어 효과’가 있고 ‘컬은 치오보다 약하다.’ 시스테아민 펌제는 ‘모발 내 침투성이 높고, 좋은 컬력을 얻을 수 있고, 특유의 향취가 강하다.’ 모발과 피부에 잔류할 확률이 높아 세척을 꼼꼼히 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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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한 컬과 쿰쿰한 냄새가 남지 않는 약을 원했다. 온풍 드라이를 자주 해서 머리색이 바래지고 모발 끝이 부슬거리지만, 모발이 두꺼운 편이라 약간의 손상을 고려하고 치오 펌제를 택했다. 시스테아민 펌제는 파마 약 냄새가 오래갈 것 같아 선택하지 않았다. 염색이나 파마 후에 남는 냄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시스테아민이나 에탄올아민이 성분표에 없거나 성분표 뒷부분에 적힌 제품을 골라서 냄새가 남지 않는지 확인할 참이다.


그 전에 로드 마는 법을 익혀야 한다. 와인딩기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교육 영상들은 하나같이 ‘텐션’을 강조했다.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가 내 머리를 당기던 힘과 그에 딸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힘. 그 긴장이 떠올렸다. 느슨하게 말면 컬이 나오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반으로 갈라 파마 약을 바르지 않고 양쪽을 다른 방식으로 말아보았다. 크로키놀와인딩은 내 머리카락 길이가 고르지 않아서 자꾸 빠지는 바람에 혼자 하기 쉽지 않았다. 반대편은 트위스트와인딩으로 말았다. 모발을 새끼줄 꼬듯이 만 후, 그걸 로드에 나선형으로 감는 방식이다. 감을 때 시작점이 모근 쪽이냐, 머리끝이냐에 따라 컬 모양에 차이가 생긴다. 모근 쪽부터 감기 시작해 모발 끝에서 마무리하면 두상 쪽이 풍성하고 모발 끝의 컬은 약하게 나오고, 반대로 머리끝부터 팽팽하게 당겨서 올라간 머리는 끝부분의 컬이 강하게 나온다. 혼자 긴 머리카락을 말 때는 머리끝부터 감아 올라가는 편이 조금 수월했다. 세발낙지를 막대기에 빙빙 감아 굽는 ‘낙지호롱구이’ 모양을 떠올리며 열심히 말고 또 말았다.




물만 뿌려서 로드로 말았는데, 풀어보니 깜짝 놀랐다. 연습이라서 엉망진창이긴 해도 컬이 탄탄하게 나왔다. 갈퀴손을 해서 컬을 풀었더니 제법 그럴싸하게 부풀어 오른다. 다시 물을 적시면 직모로 돌아가니 기분전환 삼아 일회용 파마하기 적당하다. 혹시나 하고 ‘물 파마’로 검색을 해봤더니 장모종 강아지의 털을 수수깡으로 돌돌 말아서 우아한 컬을 만든 사진을 발견했다. 히피 펌이 궁금한데 유지하자니 부담스러운 분들은 일회용 물 파마 한 번 시도해 보시길. 파마 약도 바르지 않고 열도 가하지 않아서 머릿결이 상할 염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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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의 본뜻은 ‘퍼머넌트 웨이브’, 오랫동안 유지되는 물결모양을 말한다. 그런 컬을 위해 파마 약을 바를 차례. 머리카락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촉촉하게 적시고 꼬리빗으로 두상을 8등분으로 나눴다. 로드로 감은 부분과 남은 머리카락이 뒤섞여 난장판이 되었다. 양쪽이 대칭되고 일정하게 말기 위해서는 구역을 잘 나눠서 핀으로 고정해 둬야 한다. 로드 말기는 목덜미 머리카락부터 시작했다. 파마 약을 바를 때는 손에 라텍스나 나이트릴 장갑을 끼고 1제가 두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두피 자극을 피하고 모근이 꺾이거나 눕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헐렁하게 말면 컬이 나오지 않으니 텐션을 잊지 말고 적당하게 머리카락을 당겨가며 만다.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말 때는 잡은 머리를 두피와 직각이 되도록 세워서 말아야 볼륨이 죽지 않는다.


로드 6호 굵기로 40개쯤 말자 어려운 과정은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 헤어 캡을 쓰고 탁상용 미니 히터 앞에 앉았다. 미용실에선 머리 위로 열처리 기구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집에선 사람이 돌아야 한다. 10분 정도 빙글빙글 돌며 머리를 데우고 식힌 다음, 샤워기로 1제를 가볍게 씻어내고 수건으로 꾹꾹 눌러 물기를 닦고 2제인 산화제를 로드에 꼼꼼히 뿌렸다. 로드에 걸었던 고무줄을 빼고 머리를 살살 푸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됐다! 정말로 컬이 나왔다.” 내 손으로 만든 파마머리라서 기분이 남달랐다. 파마 약 냄새도 코를 가까이 대고 맡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은 탈색 모발에 셀프 파마는 절대 금물. 손상 모발은 미용실을 찾아가는 걸 추천한다. .




셀프 파마 준비물


6호 로드 5세트(낱개 50개·4000원), 파마 약 2세트(2000원), 파마종이 100장(300원), 고무줄(1900원), 중화 받침대(3800원), 집게핀(2500원), 꼬리빗(300원), 헤어밴드(1700원), 비닐 헤어 캡(160원). 총 1만6660원.


참고/ 유튜브 미용교육 전문 채널 ‘미용을알려주는남자’ 09 트위스트와인딩 편


집 파마를 위한 이발 용어 정리


로드 일반적으로 롯드로 불림. 파마 하거나 컬 만들 때 머리카락을 마는 막대. 1~12호까지 있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로드가 굵음.


크로키놀와인딩 미용에서 머리털 끝에서 모근 쪽으로 로드를 말아 가는 기술.


와인딩기법 미용에서 머리카락을 구불구불하게 굴곡이 생기게 하기 위해 로드로 마는 기술.


트위스트와인딩 미용에서 머릿단을 꼬면서 로드로 말아 올리는 기술.


꼬리빗 빗살이 촘촘하며 손잡이 끝이 뾰족하고 긴 모양의 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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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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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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