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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로봇 바텐더?!

by한겨레

로봇 바텐더?!

사람 바텐더가 직접 깎은 ‘인간적인’ 아이스볼. 데렉 제공

‘바’라는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각기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술을 파는 가게, 어떤 사람에겐 가끔 들러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누군가에겐 삶에 지쳤을 때 잠깐 들러 쉬어 갈 수 있는 작은 새의 나뭇가지 같은 공간일 수도 있다.

 

얼마 전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로봇이 바 안에서 아이스볼(칵테일이나 위스키에 쓰는 둥근 얼음)을 깎아 만드는 동영상을 보았다. 바텐더가 하던 일 중 하나가 로봇의 몫이 된 셈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컴퓨터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로 바둑과 번역을 꼽았다. 하지만 2017년 현재 인공지능이 가장 각광받는 분야가 바둑과 번역이 되었듯, 바에 서있는 저 로봇도 지금이야 그냥 얼음 깎는 기계일 뿐이지만 언젠가 충분히 칵테일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이 칵테일을 만든다면 아마도 정해진 베이스 몇 개에 규격화된 얼음, 규격화된 셰이킹(흔드는 것)과 스터(젓기), 빌드(잔에 재료를 직접 따르는 것)에 스로잉(높은 곳에서 재료를 따르는 것), 거기에 규격화된 잔을 사용해 같은 칵테일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산업용 로봇이 그렇듯, 굳이 외모가 사람 같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바텐더의 역할은 단순히 칵테일을 만들고 서브하는 것만이 아니다. 맛만 생각해도 그렇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르기 때문에 바텐더의 주요 소양 중 하나가 손님과 그 손님의 입맛을 기억하는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바텐더는 손님의 입맛을 파악하고 같은 칵테일을 만들어도 각각 손님의 입맛에 따라 술의 비율이나 제법을 미묘하게 달리한다. 손님 취향에 맞는 칵테일을 추천하기도 한다. 로봇에게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뭐 자판기처럼 ‘덜 달게’ 버튼이라도 누르면 되려나?

 

게다가 바라는 공간은 결코 술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손님이 좋아하는 맛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칵테일을 만드는 것, 바의 분위기를 항상 즐거우면서도 아늑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적당한 선에서 손님과 대화하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모두 바텐더의 역할이다.

 

여기에 바를 이루는 모든 인테리어, 바 너머 손님을 아끼고 환대하며 조금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바텐더들의 노력 모두가 호스피탤리티(접객)고 이것은 로봇에게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바라는 공간은 바텐더와 동의어다. 아무리 칵테일을 입맛에 맞게 만드는 바텐더가 있더라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 바에는 결국 안 가게 된다. 반대로 칵테일이 취향과 약간 안 맞아도 편안함을 느낀다면 단골손님이 된다. 이런 바텐더를 로봇이 대체한다고?

 

물론 능률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생산성이 좋아지는 건 대부분의 경우 장점이다. 그러나 오래된 아파트지만 상대적으로 넓은 놀이터와 공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행복하듯 인간은 능률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 능률이니 효율이니 결과물이니 하는 것들에 가뜩이나 치여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이 쉴 수 있는 바까지 생산성에 인건비 절감이라는 괴물이 밀고 들어오는 걸 보고 싶진 않다.

 

오해가 있을까봐 이야기하지만 예로 든 로봇이 있는 바를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 로봇은 바텐더가 쓰는 아이스볼 메이커에 불과할 뿐이고 손님들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할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건 결국 그 바 ‘바텐더’의 의지니까 더 그렇다.

 

그래도 난 뭐랄까, 내가 구식 인간이라 그런지 적어도 바에 로봇이 서 있는 걸 보고 싶진 않다. 얼음이 좀 울퉁불퉁해도 괜찮고 심지어 좀 맛이 떨어져도 괜찮을 것이다. 뭐 어떤가, 나도 실수투성이 인간인 것을. 약점 가득한 인간끼리 서로 기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데렉 아저씨 애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