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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기억하라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애도의 기술’

by한국일보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애도

애도는 고통스런 노동이다. 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기억하고 회상하려는 치열한 노동을 통해 우리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남편과 사별한 젊은 엄마 A씨는 ‘철의 여인’ 같았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앞에 허둥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악착 같이 일만 했다.


이제 초등 저학년인 두 자녀를 생각하면 슬픔도 사치였다. 저 거친 바다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건너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아득하고 두려워서, 남편의 죽음은 잊으려고만 했다.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남편이 요즘 자꾸 생각난다. 병실 천장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 나지막이 혼잣말하던 남편의 모습이 불쑥불쑥 떠올라 버스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남몰래 오열하는 일이 잦아졌다.

 

연애경험이 제법 많은 싱글 여성 B씨는 연애패턴이 매번 동일하다. 만나서 좋아하고 사랑하다가 돌연 연락을 끊어버린다. 이렇다 할 이별의 의식도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차인 연인들은 설명을 요구하지만, ‘너한테 버림받게 되는 걸 참을 수 없어서’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B씨는 7년이나 사귀었던 첫 번째 연인에게 배신당했던 트라우마를 자신이 극복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다. 최초의 이별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업보를 두고두고 치르고 있는 중이다.

슬퍼하라, 충분히 슬퍼하라

상실이 일상이 된 시대다. 테러가 나고, 사고가 나고, 병마가 덮친다. 존재를 압도하는 거대한 상실의 경험이 ‘세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의 사명을 방해한다. 비단 ‘위험사회’가 아니어도 상실은 불가피한 인간의 운명이다. 누구나 어느 시점에선 부모를 잃고, 형제 자매를 잃으며, 친구들을 잃는다. 사별만 상실이 아니다. 헤어짐, 실직, 이혼, 절교, 질환, 이사 등 상실의 형태는 다양하다. 한국 사회가 간과하고 있지만, 애도는 필수불가결한 생존의 기술이다. 억압된 감정은 반드시 귀환한다.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 이별의 의식은 훗날의 삶을 왜곡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애도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슬픈 감정이다. 즉, 상실의 자연스런 결과다. 우울(멜랑꼴리)과는 다르다. 애도가 세계에 대한 관심을 잃고 슬픔으로 자아가 위축된 ‘자아의 억제’라면, 멜랑꼴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아가 스스로를 비난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망상으로 귀착한다.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 앞에서 그 대상에 투자되었던 모든 리비도(성충동ㆍ욕망)를 철회하려는 고통스런 노동이다. 하지만 비난과 처벌이라는 형태로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멜랑꼴리에서는 이 애도의 노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랑뿐 아니라 증오, 죄책감 등의 다양한 감정도 애도의 과정을 통해 제대로 면책되지 않으면 멜랑꼴리에 빠질 수 있다.

 

올 초 ‘멜랑꼴리의 검은 마술’(책담 발행)이라는 책을 펴낸 정신분석클리닉 혜윰의 맹정현 박사는 “어떻게 제대로 잃어버릴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때의 경험을 되살아나게 하는 사건을 만날 때 삶의 지지대가 붕괴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와 B씨 모두 상실을 은폐한다든가 회피함으로써 제대로 잃어버리는 경험을 못했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훼손하는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애도란 장례를 치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떤 죽음에 대해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감정적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에 대한 죄의식, 증오 등이 표현되지 않는 방식으로 나한테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애도의 작업을 회피한다면 10년이 지난 후 그 상실의 경험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는 겁니다. 과거의 상실이 어느 순간 증상을 만들어내면서 삶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반드시 되돌아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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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부재하는 삶에 그의 자리를 만드는 것도 애도의 좋은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기억하려는 노동을 통해 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게 흔한 위로의 말이지만, 틀렸다. 상실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애도라는 힘든 노동, 즉 애도작업을 통해서 그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때 잊혀지는 것이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상실은 자아가 사랑하는 대상에 투자한 리비도가 대상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부재하는 대상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맹 박사는 “애도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상실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떼어내는 것”이라며 “이것은 죽은 대상을 다시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리비도의 철회는 역설적이게도 기억을 통해 이뤄진다. “잊으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잊혀지지 않죠. 대상이 리비도를 움켜쥐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그 대상을 기억하고 회상하세요. 언어를 통한 기억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언어의 차원에서 함께 표출돼야 합니다. 계속 이야기하세요. 써도 좋습니다. 그렇게 기억하면서 리비도를 고갈시키는 겁니다.”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애착으로 문학사에 독보적인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가 죽은 다음날부터 애도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애도일기(Mourning Diary)’라는 책으로 출판된 이 작품은 바르트가 첫 돌이던 23세부터 84세로 별세하기까지 평생 과부였던 어머니를 추모한 2년간의 메모를 모은 책이다. 책 속에 오로지 ‘엄마의 아들(mama’s boy)’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이 지적 거인이 그렇다고 은둔의 삶을 산 것은 아니다. 여행을 가고, 쇼핑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지극히 자연스런 일상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분노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남들 앞에서 과장하고 극화한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어서 누구에게도 슬픔을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눈이 더 내림. 라디오에서 나오는 독일 가곡. 아파서 학교에 안 갔던 날의 아침들이 떠오른다. 온 종일 엄마와 함께 있어서 신났던 날들.”

 

언어와 기록을 통한 애도작업은 문학 쪽에선 흔하다. 사랑하는 아내를 뇌종양 진단 37일 만에 잃은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4년간의 사회적 침묵 끝에 2012년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썼고, 48년간의 결혼생활 중 따로 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해로했던 남편을 2008년 잃은 조이스 캐롤 오츠는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6개월 간 회고록 ‘과부 이야기’를 썼다. 줄리언 반스는 아내의 죽음과 상관없이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분노, 내세란 없으므로 아내를 다시 만날 일은 없다는 무신론자로서의 절망을 거쳐 잊지 않으려는 기억을 통해 아내의 부재하는 실재를 삶 속에 품으려는 치유의 단계에 도달한다. 일상의 대부분을 남편에 의존하며 살아온 조이스 캐롤 오츠 역시 전 존재가 휘청거렸던 6개월간의 고통스런 애도의 작업을 거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오츠는 남편과 사별 1년 만에 재혼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라

애도에는 단계가 있다는 통설이 널리 유통되고 있지만, 저마다의 삶이 있는 것처럼 그 삶에 맞는 각자의 애도의 방식이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처럼 6개월 만에 집약적으로 치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애도의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6개월간의 애도와 6개월 후의 재혼보다 평생의 애도가 더 진실하고 윤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 맹 박사는 “애도의 주체가 살아온 삶의 전체 역사를 조망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시야”라며 “상실의 대상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았던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르시시스트적인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는 집착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두 살아온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애도의 방법과 기간을 표준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애도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슬픔을 실천하는 노동이다. “슬픔이 하나의 정서라면, 통곡은 하나의 노동, 슬픔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는 노동”이라고 맹 박사는 말한다. “애도는 그 노동이 너무나 느리게 이뤄지기 때문에 노동이 끝날 때쯤이면 에너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며 “애도를 통해 대상과의 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그런 점에서 애도는 인간이 성숙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통곡은 애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지금은 울 수 없는 사람들도 있으며,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애도의 노동으로는 애도일기를 쓰는 것 외에도 스크랩북을 만들거나 포토앨범을 꾸미는 것도 좋다. 그가 즐기던 음악이나 봉사활동을 물려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안에 사진 액자로 ‘그의 자리’를 마련해두는 것도 좋다. 슬픔을 환기시킬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속해야 하는 삶 속에 그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지지대가 돼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랑했던 이의 상실을 삶 속에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세 자녀를 둔 영국의 30대 젊은 엄마 젬마 호그가 2010년 유방암으로 죽기 전 몰두했던 작업이 있다. 아이들 각자가 엄마와 껴안고 찍은 사진이 프린트된 쿠션을 직접 만든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 옆에는 “엄마가 꼭 껴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걸 껴안아.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라고 프린트돼 있었다. 영국 열도를 울린 이 이야기는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