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향 사모아

[여행]by 한국일보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모아나 목소리를 연기한 아울리이 크러발리오가 사모아를 방문해 찍은 ‘인증샷’. 사모아관광청제공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포스터에 삽입된 장면

‘모아나(Moana)’는 2016년 11월 개봉한 디즈니의 56번째 애니메이션 영화다. 한국에서는 작년 1월 개봉했다. 개봉 한달 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하긴 했지만 이전의 ‘겨울왕국’과 비교하면 부진한 성적이었다.


왕자님과의 로맨스가 없어서다, 피부색이 검은 주인공이라 그렇다 등의 분석도 있지만, 이야기의 배경이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남태평양 섬 나라인 점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름조차 낯선 폴리네시아 문화권 이야기라 아무래도 몰입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주인공 모아나는 남태평양의 섬 나라 '모투누이'의 대추장인 투이의 딸로, 장차 추장의 자리를 물려받을 공주님이다. 모아나는 폴리네시아 지역 언어로 '바다(Ocean)'를 뜻한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 바다의 전설을 들은 모아나는 언젠가 먼 바다로 모험을 떠날 꿈을 꾼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모투누이 섬이 저주에 걸리자 바다가 선택한 소녀 모아나는 섬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의 반대도 무릅쓰고 머나먼 항해를 떠난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오직 신이 선택한 전설의 영웅 ‘마우이’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아나는 마우이를 설득해 함께 운명적 모험을 떠나 결국 저주를 풀어낸다.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훌라’는 폴리네시아인들의 역사가 표현한 춤. 사모아관광청 제공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사모아 소녀. 모아나를 꼭 닮았다. 사모아관광청 제공

모아나의 배경이 된 모투누이는 어디일까? 남태평양의 17개 섬나라들이 서로 모누투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정확한 배경은 사모아다. 추장의 딸이 통치권을 계승하는 전통이나, 차기 추장으로 임명을 받을 때 썼던 왕관, 마을의 모습과 주민들의 옷, 음식을 담는 그릇 등은 모두 지금도 사모아에서 볼 있는 풍습과 풍경이다. 남성중심사회인 피지에서는 여자가 추장이 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통가에서는 추장의 딸이 가족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지만, 모아나에 등장하는 의식주는 통가의 것과 닮은 부분이 거의 없다. 영화 전반부의 춤이 '훌라(Hula)'이기 때문에 하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훌라는 하와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훌라는 문자 이전 폴리네시아인들의 역사를 기록한 수화 같은 춤이다. 남태평양의 춤은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사모아의 전통 춤인 시바(Siva)는 영화 속에서처럼 손끝을 미세하게 움직여 의미를 전달한다. 하와이나 타히티의 춤보다는 다소 정적이고, 피지의 메케(Meke)보다는 우아하고 여성스럽다.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아울리이의 실제 모습도 모아나와 닮았다. 사모아관광청제공ㆍ영화 ‘모아나’페이스북

영화의 주인공인 모아나와 마우이의 목소리도 사모아에서 맡았다. 모아나 역의 아울리이 크러발리오(Auli'i Cravalho)는 사모아 출신 미국 배우 겸 가수다. 마우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존 드웨인이다. 아울리이는 영화 홍보를 위해 직접 사모아를 찾아 모아나에 등장하는 장소를 방문해 '인증'하기도 했다. 존 드웨인은 ABC뉴스에 출연해 사모아 전통복장을 입고 자신의 몸을 쳐서 소리를 내는 사모아 전통 춤인 파아타우파티(Fa'ataupati)를 춰 폭소를 자아냈다.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 감독은 실제로 태평양 섬들을 직접 둘러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토리를 만들고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피지와 사모아, 남태평양의 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필자로서는 영화 속 장면들이 그저 상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실제 남태평양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관찰하고 어른들에게 물어서 만들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품까지도 신경 써서 만든 감독의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선사시대부터 기원전 1200년까지 나침반이나 지도도 없이 판자를 이어 만든 카누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넌 놀라운 사람들이다. 아시아 본토에서 출발해 인도네시아를 거치고 호주를 지나 뉴기니, 이스터섬까지 다다른 항해의 대가였다.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한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는 약 7시간, 호주까지는 11시간이나 걸리는 엄청난 거리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항해를 멈췄고,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모아나의 아버지 투이 추장은 한 때 대군을 이끌고 바다를 누비던 항해의 달인이었지만, 카누를 깊이 숨겨두고 항해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그 누구도 섬을 감싼 라군 안의 잔잔하고 얕은 바다 이상을 넘어선 안 된다고 불호령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초록심장을 빼앗긴 바다여신의 저주에 걸린 모투누이와 주변 섬들은 점점 병들기 시작한다. 물고기가 더 이상 잡히지 않고 '생명의 나무'라 불리는 코코넛은 썩어갔다. 영화에서는 그 저주를 풀어내기 위해 모아나가 항해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실제로 왜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항해를 중단했다가 다시 나섰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 카누의 품질이 향상되어서인지, 지도나 나침반을 개발하게 된 것인지, 해류가 갑자기 변했기 때문인지, 해수면의 침하로 징검다리 삼을 만한 섬들이 수면 위로 나타났기 때문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모아나는 이 휴식기 이후 다시 항해를 하게 된 이유를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사모아인들의 모습. 사모아관광청 제공

영화의 모티브가 사모아라고 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사모아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뚱뚱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은 지구면적의 30%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다다. 이 곳을 나무 카누로 건넜던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폴리네시아 사람들, 이 용감하고 지혜로운 조상들은 후손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뿐 아니라 '비만'도 선물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네틱스(Nature Genetics)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5,000명이 넘는 사모아인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25% 가량이 비만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비만 유전자를 가진 사모아인은 정상인보다 비만이 될 확률이 30~40% 더 높다. 이 유전자는 유럽과 아프리카 인종에겐 거의 없으며 아시아 인종에서도 흔치 않다. 사모아 사람들만이 가진 이 비만 유전자 덕분에 대 항해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더 많은 지방을 축적하고, 에너지를 덜 쓰도록 만드는 이 유전자가 과거 사모아인들이 남태평양 제도를 정복한 역사에도 크게 기여 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3,500년 전 폴리네시아 군도 24개 주요 섬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힘든 항해를 할 때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 유전자 덕분에 계속 굶거나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무게가 줄지 않았다. 혹독한 기아가 닥칠 것을 몸이 대비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라이언 민스터 박사는 “사모아인이 남태평양을 정복할 때 섬 사이 항해와 새로운 섬에서의 정착 과정을 견뎌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영화를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 틀림없다.

사모아 여행 정보

사모아로 가려면 대한항공 직항을 이용해 피지까지 가서 한 번만 갈아타면 된다. 인천에서 피지까지는 9시간40분, 피지에서 사모아까지는 1,140㎞로 약 1시간20분이 걸린다. 사모아의 화폐단위는 탈라(Tala)다. 1탈라는 약 456원.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관광목적으로 6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사모아 해변 풍경. 사모아관광청 제공

비만 유전자의 축복, ‘모아나’의 고

밝은 표정의 사모인들. 사모아관광청 제공

사모아는 적도와 가까워 연중 날씨가 따뜻하고 나무와 꽃이 울창하다. 우기와 건기만 있고, 여름과 겨울은 없다. 연평균 기온은 27℃ 정도, 우기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지만 보통 1~2월에만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다. 따라서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3~12월까지다. 습도가 높은 편이지만 찝찝하거나 후덥지근하지는 않다. 사모아로 ‘시간여행’을 떠나기 좋은 시기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을 수 있는 12월말, 사모아 전역이 축제로 들썩이는 9~10월이다. 사모아관광청에서 사모아 문화마을(Samoa Cultural Village)을 무료로 운영한다. 아바 세리모니(환영의식), 시바(사모아의 전통 춤), 우무(전통조리방법), 문신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약 1시간30분 동안 전문가가 인솔하는 투어에 참여할 수도 있다. 참가비가 없고 예약할 필요도 없다. 드림아일랜드 여행사에서 남태평양 섬 여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박재아 여행큐레이터ㆍ사진=사모아관광청, 영화 ‘모아나’ 페이스북

2018.09.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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