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에 살고 오름에 지고… 제주 산담의 비밀

[여행]by 한국일보

강정효의 이미지 제주(43)-재력에 따라 달라지는 무덤의 모습

오름에 살고 오름에 지고… 제주 산담

구좌읍 평대리 밭 한가운데 자리잡은 산담(무덤)

추석을 앞두고 제주에서는 보름가량 소분(掃墳) 행렬이 이어진다. 예전 농업이 주를 이르던 시기에는 음력 팔월 초하루에 벌초를 하는 것을 원칙처럼 여겼으나, 요즘은 초하루 전후 주말을 이용해 벌초에 나선다.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을 베어내며 음덕을 기리는 풍습이다.


제주사람들은 무덤을 묘라 부르기보다 그냥 ‘산’이라 표현한다. 또한 묘 주변에 돌담을 쌓아 울타리를 만드는데, 이를 ‘산담’이라 부른다. 그래서 조상의 묘소에 찾아가는 것 또한 ‘산에 간다’라고 표현한다. 오름 사면에 오름의 형태와 비슷한 산과 산담은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자원이라 할 수 있다.


산담의 형태를 보면 주로 겹담 양식으로 직사각형(장방형)을 이루는데, 간혹 홑담의 타원형인 경우도 있다. 또한 산담이 없는 경우도 많다. 산담을 보면 그 집안의 가세를 가늠할 수 있는데, 제대로 사는 집안인 경우 장방형을 원칙으로 하고, 여의치 못하면 홑담, 그도 아닌 경우는 산담이 없다. 예컨대 오름 꼭대기에 묘가 위치한 경우 주변에는 돌이 흔치 않기에 오름 아래의 돌을 가져다 산담을 쌓았다. 이때 마을 청년들이 일꾼으로 나서는데, 돌 한 덩어리 기준으로 금전을 지급했기에 가난한 집안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쩌면 부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름에 살고 오름에 지고… 제주 산담

애월읍 봉성리의 산담.

오름에 살고 오름에 지고… 제주 산담

새별오름의 산담

오름에 살고 오름에 지고… 제주 산담

동거미오름의 무덤군

오름에 살고 오름에 지고… 제주 산담

이달오름의 산담.

오름에 살고 오름에 지고… 제주 산담

당오름의 산담군(群)

한편 장방형의 경우 폭 60cm 내외로 가장자리에 굵은 돌로 쌓고 그 사이를 잡석으로 채우는 형태인데 그 높이는 1m에 미치지 않는다. 이때 산담 한편에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출입문을 만드는데,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 하여 시문(神門)이라 한다. 남자의 경우 묘의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문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시문이 없는 무덤도 많다. 시문이 없는 경우에는 평평한 돌로 계단모양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 계단을 통해 신이 드나든다는 의미다.


산담의 상당수는 중산간 일대 목장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방목중인 소와 말이 무덤을 훼손하는 것을 막고, 매년 봄 목초지를 태우는 ‘방애불’이 무덤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더 중요하게는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묘를 집처럼 여겨 울타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밤에 들판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산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면 묘 주인이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이라 하여 보살펴 준다는 이야기가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중산간 일대 오름 사면에 수많은 무덤이 몰려 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데, 마을공동묘지인 경우가 많다. 같은 마을 사람들이 살아생전 이웃으로 생활하다 죽어서도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다. 특히 오름에 무덤이 많은 이유는 한라산 자락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생사관과 무관하지 않다. 간혹 금장지(禁葬地)라 하여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오름도 없지는 않다.


물론 오름에만 무덤을 쓰는 것은 아니다. 마을 주변 농경지에 묘를 쓴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정시 또는 지관(地官)이라 불리는 풍수사가 묘 자리를 잡아준 경우인데, 자신의 밭보다는 남의 밭인 경우가 더 많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보리쌀 몇 말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묘지로 내주는 경우가 흔했다. 효(孝) 사상의 영향으로 자신의 부모가 소중한 만큼 남의 부모도 존중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제주의 장례 풍습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은 매장이 금지되면서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 2007년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본인 사망 시 매장보다 화장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상의 묘를 이장하여 한곳에 모시는 가족묘지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자식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육지부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배려하려는 부모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다. 조상숭배 사상과 부모의 자식사랑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2018.09.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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