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서 산업스파이까지… 뒤를 밟는 ‘은밀한 눈’

[이슈]by 한국일보

[흥신소ㆍ민간조사원 동행취재]


흥신소 “일주일 사례비 300만원, 불법수단 동원 땐 추가비용”

민간조사기업 “지재권 등 특화 업무… 불법 없이 신상정보 취득”

불륜서 산업스파이까지… 뒤를 밟는 ‘

민간조사원들이 17일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가에서 지식재산권 위반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잠복하고 있다. 박주희 기자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노상. 약속된 시간(11일 오후 7시)이 되자 주변에 주차돼 있던 검은색 승용차에서 두 남성이 내려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건장한 체격의 이들은 흥신소 A업체 직원들이다. 수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인근 식당 창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선 차에 타세요.” 식당 손님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전형적인 가정사 의뢰입니다. 중년여성이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일주일 전 뒤를 캐 달라고 부탁해왔어요.”


심부름센터 직원, 혹은 사설탐정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지금 편법과 불법 사이의 지대에 우두커니 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도입을 약속했던 공인 탐정제도가 여전히 오리무중이어서 수사기관이 하듯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누군가의 뒤를 밟는 흥신소와 민간조사기업의 업무는 명백히 합법적이지 않다. 하지만 변호사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됨에도 불구하고 연인의 성매매 이력을 밝히는 ‘유흥탐정’이 온라인 공간에서 인기를 끄는가 하면, 산업스파이에 대한 기업들의 자구책은 활발하게 이뤄진다. 법제화와 관계없이 현실에서 무수히 뿌리내리고 있는 이른바 ‘탐정’이라 불리는 이들의 일상을 쫓았다.

“휴대폰 통화, 신용카드 사용내역도 조사”

“가정사(불륜)나 채권ㆍ채무 관련 의뢰가 가장 많이 들어와요. 모두 사람을 찾고 그들의 행적을 밟는 게 전부이죠.” 식당 내 중년 남녀가 저녁을 즐기는 동안 A업체 직원들은 흥신소 업무 전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들 업무의 출발점. 타깃(의뢰 대상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이 가장 궁금했다. 대상자가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을 문제 삼아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아파트 주민명부를 뒤지는 등 비교적 간단하게 추가정보를 알아낼 수 있어요. 문제는 사전정보가 부족한 경우인데, 이땐 우리도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업체에 일을 의뢰해요. 여러 단계의 브로커를 거쳐 돌아온 정보는 최종적으로 보통 수십만원에 거래되는데 휴대폰 통화내역, 신용카드 사용정보 등을 전부 알아낼 수 있어요.”


뒤를 밟던 남녀가 식당 문을 나서 여성의 차에 함께 오르자 흥신소 직원들도 재빨리 시동을 걸었다. 그대로 여성의 차량을 앞지른 이들은 10여 분을 달려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 출입구 앞에 섰다. 경비원이 방문 목적을 묻자 태연하게 “000동 000호 입주자 친구”라고 말했고,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한 이들은 구석에 차를 세웠다. 운전대를 잡은 직원은 “이 아파트는 아까 식당에서 봤던 여성의 거주지”라며 “이미 몇 차례 미행해 여성이 어디에 사는지, 주로 어느 곳에 주차하는지를 파악해뒀다”고 말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여성의 차량이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차에서 내린 남녀는 손을 잡은 채 아파트 공동현관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은 흥신소 직원들의 휴대폰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두 직원은 “오늘 일은 끝”이라며 웃었다. 그들은 “만약 의뢰인이 법정싸움까지 염두에 둔다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원할 것”이라며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증거 수집뿐 아니라 배우자의 은닉재산을 추적해달라는 의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보통 일주일 기준 사례비로 300여만원을 받는데, 소송이 시작될 경우 평범한 방법으로 알아내기 힘든 증거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수익만 올릴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불법수단도 동원하겠다는 뉘앙스였다.

민간조사원 “우리는 흥신소와 다르다”

다음날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다른 남성 두 명을 만났다. 그 중 한 명은 “흥신소 취재를 원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흥신소가 아닌 민간조사기업 B업체에 소속된 민간조사원”이라고 소개했다. 경찰청이 정의 내린 이 두 업종의 차이는 한국특수지능교육재단의 민간자격증 발급 여부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자격증을 발급받지 않은 민간조사원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어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간조사기업과 흥신소의 차이를 물어보려는 순간, 운전석에 앉은 남성이 시동을 걸었다. “오늘 쫓아야 할 타깃”이라며 아파트 공동현관을 지나는 중년남성을 가리켰다. 남성은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B업체 직원들은 50~60m의 거리를 유지한 채 차량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3주 전쯤 한 중소기업 사장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어요.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수차례 정부와 기업 홈페이지들에 자사 관련 악성 민원을 올리고 있다면서요. 민원내용에 회사 임직원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알아달라는 거죠.” B업체 직원들은 산업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을 쫓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기업 기밀유출 관련 의뢰가 잦아요. 이런 건은 수천만 원을 수수료로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성의 차량은 아파트 인근 도로를 지나 한 대형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가 마트 안으로 들어가자 B업체 직원들이 따라나섰다. 그들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장을 보는 남성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30여분 장보기를 마친 남성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조수석에 앉은 직원은 “의뢰인은 저 남성이 누구를 만나는지 알고 싶어 하는데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니 정보 가치가 없다”라며 “다시 아파트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차장에서 약 8시간에 걸친 지난한 잠복이 시작됐다.


이들은 의뢰 대상자의 거주지 등 관련 정보를 어떻게 구했을까. 이들은 이름과 휴대폰 번호만 있으면 어떤 불법도 저지르지 않고 얼마든지 타깃의 신상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고 밝혔다. ㈜위드맨을 운영했던 강지형 민간조사업협회장에 따르면 타깃을 상대로 사기죄 등으로 고소를 진행하는데, 이때 고소장에 아무 주소나 기재한다. 이후 법원은 주소가 잘못됐다며 주소보정 명령을 내리고, 이 서류를 들고 주민센터에 가면 타깃의 주소를 알려준다고 한다. 그는 이 외에도 번거롭게 기관을 통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고 밝혔다. “택배회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인이 평소 사용해온 배송지를 알 수 있고, 유명 자동차 홈페이지에 차량번호를 넣어도 신상정보를 쉽게 얻어낼 수 있어요.” 강 대표는 “우리 업무 방식은 굳이 따지자면 불법보다 편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며 “이 점이 흥신소와 민간조사기업의 차이”라고 강조했다. 이날은 자정이 넘도록 타깃이 자택을 나서지 않아 B업체 직원들은 성과를 얻지 못하고 철수했다.

불륜서 산업스파이까지… 뒤를 밟는 ‘

민간조사기업 직원들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아파트 주차장을 나선 타깃(의뢰 대상자)의 아우디 승용차를 자신들의 차량으로 쫓고 있다. 민간조사기업 제공

“필요한 정보 외에는 취하지 않는다”

이틀 뒤인 14일 오전 타깃의 아파트 주차장에 잠복하던 B업체 직원들은 한 시간 뒤 그가 아파트를 나서자 다시 뒤를 밟았다. 이번에는 차에 타지 않고 도보로 아파트 출입문 쪽으로 향한 타깃은 한 남성을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B업체 직원들은 급히 휴대폰에 이 모습을 담았다. 인근 커피숍으로 들어선 두 남성은 대화를 시작했다. 직원들은 몰래 타깃의 대각선 방향 테이블에 앉아 현장 사진을 담아 의뢰인과 업체 대표에게 전송했다.


잠시 후 이들 직원의 휴대폰으로 업체 대표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수신됐다. ‘지금부터는 타깃과 대화 중인 남성을 쫓을 것.’ 두 직원은 서로 눈빛을 나눈 후 한 명은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했고, 다른 한 명은 커피숍에 남았다.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눈 두 명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택시를 잡아탄 새 타깃을 B업체 직원들이 뒤쫓으면서 추가 정보를 전화로 전해 들었다. 이들의 새 타깃은 의뢰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20여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퇴사한 전직 임원이었다.


새로운 타깃은 그 후에도 오후 8시까지 세 명을 더 만나고서야 귀가했다. 직원들은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사진으로 남겼다. 이들은 전직 임원이 사내 정보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확인했을까. 직원들은 고개를 저으며 “도청하거나 이야기를 엿듣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우리 업무는 어디까지나 의뢰인 회사에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당사자를 쫓고, 그가 누구와 접촉했는지 알아내는 것이어서 이번 일은 여기서 끝입니다.”

불륜서 산업스파이까지… 뒤를 밟는 ‘

14일 민간조사기업이 쫓던 타깃이 서울 용산구 카페에서 한 중소기업 전직 임원으로부터 기업기밀을 전해 듣고 있다. 민간조사기업 제공

민간조사기업 직원들은 의뢰받은 일 이상으로 타인의 정보를 파고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가정사와 채권ㆍ채무 관련 의뢰를 주로 받는 흥신소 직원들이 타깃의 카드사용, 통화내역, 이동경로 등 가능한 정보를 되도록 많이 수집하려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서울 동대문구 주택가에서 만난 민간조사기업 C업체 직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해외 명품 브랜드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이 상표를 무단 도용하는 일명 ‘짝퉁’ 유통업자들을 추적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17일 만난 이들은 동대문구의 한 주택을 짝퉁 창고로 사용 중이라 의심되는 한 여성을 추적하고 있었다. C업체 직원은 “민간조사기업은 각자 특화된 분야에 한해 의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우리 같은 경우는 지식재산권 침해 관련 업무만 하기 때문에 타깃의 평소 사생활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민간조사기업 ㈜위드맨을 운영했던 강지형 민간조사업협회장은 “탐정제도 도입과 관련해 무분별한 사생활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는 업계의 지형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의견”이라며 “최근 새롭게 나타난 민간조사원들의 업무는 기업 기밀유출 보호, 지식재산권 침해 예방 등 전문화되고 세분화돼 있다”고 말했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 회장도 “최근 민간조사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 생기는 등 민간 차원에서 체계화된 육성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중”이라며 “한국형 탐정은 흥신소 직원들이 아닌 민간조사원들이 그 모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2018.09.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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