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해지지 말라” 구글 직원들이 거리로 나섰다

[트렌드]by 한국일보

직장 내 성범죄자 비호에 직원들 분노

전 세계 40여 개 지사 수 천명 거리로

‘내부 해결’ 강제 중재 문화 폐지 촉구

익명 보장, 투명한 조사 등 보장 요구

이사회에 근로자 대표 참여 강제해야

“악해지지 말라” 구글 직원들이 거리

1일 전 세계 구글 직원들이 고위 임직원의 성 범죄를 비호한 회사 측의 대응에 항의해 동맹 파업에 나섰다. 한창 업무에 몰두할 오전 11시 10분 뉴욕 지사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악해지지 말라” 구글 직원들이 거리

1일 전 세계 구글 직원들이 고위 임직원의 성 범죄를 비호한 회사 측의 대응에 항의해 동맹 파업에 나섰다. 한창 업무에 몰두할 오전 11시 10분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티뷰에서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운틴뷰=AP 연합뉴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구글 직원 수 천명이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거리에 집결했다. 고위 임직원들의 직장 내 성추행 범죄를 감싸고 묵인한 경영진과 회사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싱가포르 취리히 런던 도쿄 베를린 등 전 세계 40여 개 지사 직원들이 동참했다.


미국 CNN 방송은 1일(현지시간) “구글의 전 세계 40여개 지사 직원들이 각 나라 시간대별로 오전 11시10분에 맞춰 회사 로비와 정문 앞으로 나와 피켓을 들고 동맹 파업을 벌였다”며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본사 파업 참가자들은 구글의 모토인 ‘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는 피켓을 들었다. ‘성폭행 문화를 끝내자’, ‘모두를 위한 평등’이란 구호도 눈에 띄었다.


구글 직원들의 집단행동은 회사가 고위 간부의 성 범죄를 무마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후 나왔다. 지난 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라 불렸던 앤디 루빈의 성추행 사실을 회사가 은폐하는 것도 모자라 9,000만 달러(약 1,000억 원)라는 거액의 퇴직금까지 챙겨줬다고 폭로했다. 앤디 루빈은 보도가 나온 직후 사퇴했다. 또 구글의 비밀연구조직인 구글X의 리처드 드볼 이사가 취업 면접을 보러 온 여성을 성추행 한 뒤에도 수년 간 임원 자리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다 사임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구글 직원들은 분개했다. 다양성, 포용, 평등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회사의 경영 철학에 자부심을 느껴 왔던 직원들 입장에선, 배신감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토마스 닐랜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구글 직원들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임무를 가진 특별한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모든 직원들에게 좌절감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요구사항은 근로자들의 정당한 문제제기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먼저 직장 내 성추행 등 범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마다 사측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합의를 종용하는 ‘강제 중재’ 관행을 없애라고 촉구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내부에서 분쟁 발생 시 법원이 아닌 회사 자체의 내부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계약 조항을 근로자들의 채용 시 요구하고 있다. 외부로 문제가 새어 나가봤자 회사 이미지만 실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들에게 추가적인 법적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박탈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같은 회사의 불합리한 압박과 회유를 막기 위해 직원들은 ▦성 범죄 피해를 외압 없이 익명으로 알리고, 투명한 조사를 담보하는 시스템 마련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로자 대표 포함 ▦급여와 각종 사내 혜택에서 평등한 조직 문화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구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직원들이 느끼는 분노와 실망감을 이해한다”며 “우리의 정책과 제도를 발전 시킬 건설적인 아이디어들을 반영하겠다”고 한껏 자세를 낮췄다. 그는 앞서 “지난 2년간 성추행을 저지른 48명을 해고했고 그 중 관리자 직급이 상당수였다. 거액 보상금을 챙겨준 건 없다”고 강변했다가 직원들의 더 큰 반발을 샀다.


구글 직원들의 집단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직원들은 구글이 미 국방부와 체결한 인공지능 드론 계약인 ‘메이븐 프로젝트’가 인명 살상용 무기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고 10여 명의 엔지니어가 항의 표시로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또 중국 정부의 검열 기준에 맞춘 검색엔진개발 비밀 프로젝트 ‘드래곤플라이’ 개발을 중단하라며 집단 반발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구글 직원들의 집단 행동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가 있는 기술노동자연합(Tech Workers Coalition)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성 범죄 비호 논란은 앞으로 우리가 다뤄나가야 할 많은 문제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구글과 연대해 직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2018.11.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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