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같은 언어로 노래하고 싶어요” 목소리로 프랑스 홀린 유발이

[컬처]by 한국일보

유학 중 올린 유튜브 영상 덕에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출연

심사위원들 서로 멘토를 자청

낙점된 英가수 미카 환호 “감사”

“아이 같은 언어로 노래하고 싶어요”

가수 유발이는 ‘문법은 아름다운 노래’란 책을 좋아한다. 9세 아이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언어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동화형식의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유발이의 음악은 동화 같다. 서재훈 기자

“캄사함니다(감사합니다)”. 지난해 봄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사 TF1에서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더 보이스: 라 플뤼 벨 부아 시즌 7’(‘보이스’). 심사위원인 영국 유명 가수 미카가 한 지원자에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자신을 멘토로 뽑아줘 고맙다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미카가 반한 참가자는 한국에서 온 유발이(본명 강유현ㆍ31). 그는 피아노에 앉아 경쾌하게 연주를 시작한 뒤 봄바람 같은 목소리로 경연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유발이가 부른 곡은 핑크마티니의 샹송 ‘심파티크’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네 명 중 세 명의 심사위원이 유발이에 러브콜을 보냈다. 프랑스 유명 가수 겸 배우인 플로랑 파니 등이었다. ‘보이스’의 첫 경연은 참가자가 다수의 심사위원에게 선택을 받으면 참가자가 그 중 한 명을 멘토로 최종 선택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유발이에게 낙점된 미카는 미친 듯이 기뻐했다. 미카는 “메르시(Merciㆍ고마워)!”라고 소리치며 유발이가 있던 무대로 육상선수처럼 뛰쳐나갔다. “세상에 미카라니요, 제가 은총을 받았죠.” 최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발이는 프랑스에서의 ‘꿈의 무대’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 유발이는 2009년 한국에서 밴드 흠의 멤버로 데뷔한 가수다.


‘보이스’는 지난해 1~4월에 방송돼 시청률 30%를 웃돌았다. 유발이는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샹송과 팝을 넘나들며 다양한 무대를 보여줘 경연 내내 주목 받았다. 프랑스 국적도 아닌 한국에서 온 여성이 목소리로만 일군 이례적 성과였다.

“아이 같은 언어로 노래하고 싶어요”

가수 유발이(오른쪽)가 지난해 프랑스에서 방송된 음악 경연 프로그램 '더 보이스: 라 플뤼 벨 부아' 시즌 7에서 팝스타인 미카와 노래를 주고 받고 있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유발이는 임신 6개월째에 ‘보이스’ 제작진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다. 유튜브에서 유발이가 부른 ‘라비 앙 로즈’ 동영상을 보고 온 연락이었다고 한다. 유발이가 재즈 보컬을 배우기 위해 2015년 프랑스의 음악학교 콩세르바투아 부르 라 렌에 입학한 뒤 여러 나라를 돌며 한 공연 영상이 현지에서 입소문을 탄 덕이었다. 유발이는 “처음엔 출연 포기를 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이었고, 경험해 보지 않은 오디션 무대에 임신을 한 채 오르기에는 심리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남편이었다. 유발이는 “오디션 제의 얘기를 꺼내니 남편이 먼저 해 보라고 하더라”며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뒤 3~4주 지나 프랑스로 건너가 경연에 임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프로그램 출연 당시 유발이는 체중이 평소보다 15㎏이 는 상태였다. 산후 부기가 빠지지 않아 발이 퉁퉁 부어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올라야 했다. 동화 같은 만남도 잠시, 멘토인 미카는 엄격했다. 유발이는 세 달이나 준비한 무대를 방송 하루 전 날 엎기도 했다. “(냇 킹 콜의 노래인) ‘네이처 보이’를 야심 차게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해놓고 미카한테 검사를 받는데 갑자기 그만두라는 거예요. 너무 기교를 부렸다고요. 그래서 피아노 연주만으로 곡을 구성했죠. 전 무대 내려와 엉엉 울었는데 결국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가 다음 무대에 올라갔죠, 하하하.”


프랑스에서의 축제를 끝내자 공허함이 찾아왔다. 한국으로 건너와 그가 최근 낸 첫 앨범은 물음표투성이다. ‘?’란 제목의 앨범엔 ‘왜?’ ‘모르겠어요’란 곡들이 실렸다. 유발이는 수록곡 ‘무얼 노래하고 싶은 걸까’에서 “살며시 사라져도 좋을 내가, 이 길에 서 있는 이유는”이라고 읊조린다. 프랑스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가수는 다시 가수로서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유발이는 “흔하디 흔한 싱어송라이터로 올해도 난 곡을 만들고 있다”며 “내 음악인으로서의 고민이 삶에서 존재감을 찾지 못하고 흔하디 흔한 길을 묵묵하게 걷는 요즘 사람들과 같다는 생각에 만든 곡”이라고 말했다. 유발이는 통기타 한 대의 소박한 연주에 속삭이듯 노래한다. 그의 음악은 자장가에 가깝다. ‘사랑은 아닐까’엔 두 돌이 채 안 된 자신의 아이가 잠 잘 때 낸 숨소리가, ‘왜?’엔 공이 구르는 걸 표현한 “떼구루루”란 소리가 들어있다. 유발이는 또 다른 수록곡 ‘그렇게 산다’의 노랫말의 어두를 기역(ㄱ)에서 히읗(ㅎ)으로 시작해 노래를 끝낸다. 정제되지 않은 소리와 말맛을 살려 음악에 상상력을 들인다. 유발이는 “꾸미지 않은 아이의 언어가 가벼워 보여도 결국 가장 뼈아프게 마음에 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발이는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실용음악 콩쿠르 등에서 상을 휩쓸며 연주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는 격식을 거부했다. “고등학생 때 받은 성적표에 별명이었던 유발이가 이름처럼 표기 된 경험”에서 그는 활동명도 아이처럼 유발이로 지었다.


그는 최근 선배 가수인 박기영의 소속사 문라이트 퍼플 플레이에 둥지를 틀었다. 록밴드 산울림 출신 김창완이 박기영과의 만남을 주선해 연을 맺었다. 박기영과는 함께 옆에 아이를 두고 노래하는 영상을 찍을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가 됐다고. 유발이는 “지루한 건 싫다”고 했다. 그는 또 어떤 엉뚱한 음악을 들고 찾아올까. 유발이는 3월16일과 17일 서울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홀에서 공연을 연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2019.02.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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