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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한눈에 펼쳐보는 망원동의 맛

낡은 거리의 새로운 맛,
망원동을 먹다

by한국일보

낡은 거리의 새로운 맛, 망원동을 먹

망원동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미자카야’의 이한올, 조준현씨와 ‘복덕방’의 박연숙 강성구씨가 가게 앞에서 웃고 있다. 각기 경리단길과 연남동에서 온 이들은 망원동의 공기에 편안히 녹아 들었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서울지하철 6호선 망원역. 금요일 밤이면 망원역에는 상이한 군상이 뒤엉킨다. 한 쪽은 울긋불긋한 옷을 차려 입은 익숙한 장·노년층이다.


그들은 상습 수해지역이라는 인상이 망원동에 박혀 있을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다. 다른 부류는 홍대 앞에서 몇 번은 마주쳤을 것처럼 빼 입은 청년층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망원동을 찾아온 이방인들이다.

낡은 거리의 새로운 맛, 망원동을 먹

망원동의 오래된 거리 풍경. 강태훈 포토그래퍼

망원동은 ‘홍대 앞’이 서교동에서 인근 상수동으로, 연남동, 다시 합정동으로 뻗쳐 나가는 동안에도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물주와 세입자를 갈라 놓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자극적인 화두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홍대 앞은 확장을 거듭하다 이제 망원동으로 파고 들었다. 낡고 늙은 터전이 신인류의 서식지로 변모 중이다. 홍대 앞에서 합정역을 거치는 지선버스 7011 경로를 주변으로 해서다. 망원동은 통상적으로 망원1, 2동과 합정동, 서교동 등 더 넓은 범위를 지칭하지만 변화가 가장 활발한 곳은 망원1동이다.

낡은 거리의 새로운 맛, 망원동을 먹

망원원동의 정감 어린 식당들. 강태훈 포토그래퍼

낡은 삶의 터전에서 신인류의 서식지로

인근 합정동, 서교동 등지에 비해 망원동의 원룸, 투룸 시세는 월세 기준으로 10만원선 정도 차이를 보인다. 홍대 앞을 문화적 본거지로 생활하는 인근 거주자들은 몇 년 전부터 야금야금 망원동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역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게 자리를 찾아 망원동으로 첫 가게의 입지를 정한 젊은 사장들도 하나 둘 모여들며 망원동 풍경은 독특하게 변해갔다. 망원동엔 휴대폰 가게, 전자담배 가게 대신 세탁소, 철물점, 수선집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업화가 진행될수록 후자는 밀려나고, 전자가 밀려든다. 현재 망원동에는 오래된 사람들이 사는 오래된 집들 사이에 오래된 상점들이 섞여 있는 좁은 골목마다 새로 지은 원룸, 투룸 건물과 작업실, 공방, 독특한 개성의 식당, 카페가 점점이 박혀 있다. 마치 20년 전 홍대 앞 모습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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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에 수혈된 젊은 피. 강태훈 포토그래퍼

유행에 민감한 20, 30대 독자들을 겨냥한 패션잡지들이 거의 동시에 망원동을 ‘핫 플레이스’로 지목한 데엔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SNS의 공로가 컸다. 홍대 앞에서 도보로 30분 남짓 걸려 우연히 지나칠 일도 없는 오래된 동네 속, 숨겨진 작은 가게들은 인스타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성공이었다. 비현실적인 필터를 거쳐 ‘내가 먼저 안 근사한 곳’으로 각인됐다. 덕분에 발 빠른 20대들이 폭발적으로 망원동을 밀고 있는 셈이 됐다. 거기에는 지상파TV로 송출돼 망원동의 구수한 생활상을 전해준 인디밴드 장미여관 보컬 육중완씨의 옥탑 자취 생활도 한몫을 했다. 대형마트와 투쟁한 본보기(2012년 홈플러스 입점 저지 운동)이자, 본격적인 상생, 현대화 마케팅을 펼치는 사례로 평가 받는 망원시장의 약진도 더해져 망원동은 다채로운 나들이 코스를 완성했다.

그들이 망원동으로 간 까닭은

젊은 그들이 망원동에 온 이유는 정말로 뭘까? 망원동의 대표적 힙 플레이스로 손꼽히는 일본식 술집 ‘미자카야’, 그리고 바로 옆집 ‘복덕방’이 답을 했다. 망원시장 곁에 자리한 두 가게는 한달 터울로 문을 열며 형제 가게처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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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카야(왼쪽), 복덕방의 대표 메뉴. 강태훈 포토그래퍼

미자카야는 경리단길 식당에서 일하던 요리사 조준현씨와 이한올씨,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힘을 합쳐 낸 20대 사장님들의 가게다. “경리단길에 살았고, 경리단길에서 일도 했어요. 식당과 술집이 그렇게 많지만 마음 편하게 밥 한 끼 먹을 곳이 없더군요. 첫 식당을 내면서, 망원동에 와서 조용히 동네 장사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문을 연 작년 가을만 해도 이 동네엔 정말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미자카야를 연 후 집도 망원동으로 옮겼어요. 이제 망원동이 조용한 동네는 아니지만 집 근처에 편하게 갈 동네 식당이 많아 좋아요.”


복덕방은 30대 아들인 강성구씨가 사장, 그 어머니인 박연숙씨가 주방장을 맡은 막걸리 전문점이다. 전국의 양조장을 돌며 막걸리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까지 모아 와 판다. 전라도 어머니의 손맛으로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안주는 소박하지만 편안하다. 모자는 경기 양주에 있는 텃밭에서 농사도 짓는다. “연남동에서 ‘연남회관’이라는 식당을 했었어요. 컨설팅도 몇 군데 했었고요. 일을 잠시 쉬면서 새로운 가게를 찾던 중 망원동이 눈에 들어왔죠. 지금은 변질된 연남동의 옛 골목 풍경이 망원동에 있어요. 동네분들도 마치 고향인 것처럼 다정하셔서 지내는 맛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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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블루 레이크. 강태훈 포토그래퍼

연남동에서 온 것은 복덕방만이 아니다. 연남동 리브레 출신인 이철원씨가 갓 문을 연 카페 ‘딥 블루 레이크’도 있다. 스페셜티 커피를 고집 있는 맛으로 내리는데, 망원동이라는 환경에 맞춰 문턱을 낮췄다.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 높은 가격대로 취향을 추구하는 것과 반대로 딥 블루 레이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로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선보인다. “망원동이 정말 유명해지긴 한 모양이에요. 주말에는 외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죠. 그런데 아직 평일은 거의 동네 장사예요. 그래서 주스도 원래 안 하려 했지만 아내의 주장으로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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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군 위정환 사장과 대표 메뉴. 강태훈 포토그래퍼

이번 달 문을 연 ‘위군’ 역시 30대 젊은 사장의 첫 가게다. 위정환씨는 합정동의 유명한 선어회 전문점에서 솜씨를 배웠다. “성산동에 25년 가량 살았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요리를 시작했는데 첫 가게를 내려고 둘러본 인근 여러 곳 중 망원동이 가장 환경이 좋았어요. 가게가 비좁기도 하지만, 혼자 사는 젊은 주민들이 많아서 테이블좌석을 하나만 놓고 다른 좌석은 모두 개방된 주방을 둘러 바 형태로 만들었죠. 혼자 오는 손님을 위해 대부분 메뉴를 양이 적고 저렴한 1인분으로도 판매해요.”


낡은 동네와 새 사람이 뒤섞이는 풍경. 한강변 재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과거를 품고 사는 늙은 동네는 그 늙음이 그리웠던 젊고 활기찬 사람들과 섞여 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동네는 흐른다. 다른 무엇이 되어 가는 망원동의 현재가 환기시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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