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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

언제나 봄날, 사랑하기 딱 좋은 프랑스 론 알프스

by한국일보

리옹과 안시의 속살로 직진 중


알프스에 대한 기시감은 막연한 겨울이다. 론 알프스(Rhone-Alpes)는 그 반대다. 차디찬 설산이 보일지라도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고 싶은 설렘, 그 봄의 전령이 뒤엉켜 있다.

언제나 봄날, 사랑하기 딱 좋은 프랑

론 알프스의 작은 고추 안시. 5만명이 사는 마을의 저력은 따분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있다.

애초에 론 알프스에 대해 특별한 흥미가 있던 건 아니었다. 오랜 지인이 리옹(Lyon)에 터를 잡았고, 브라질 여행 시 만난 프랑스 친구가 다뉴(Dagneux)란 소규모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일명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여행의 컨셉트. 동기는 상봉의 설렘이었고, 졸지에 론 알프스는 여행지로 얻어걸린 격이었다. 론 알프스는 알프스와 론 강 수역의 프랑스 동남부 지역이다. 리옹을 주축으로 프랑스의 샤모니-몽블랑, 안시, 에비앙, 뻬루즈 등이 이탈리아와 스위스 접경으로부터 서쪽으로 만개한 꽃 모양의 지대에 퍼져 있다. 그 모양처럼 겉도 속도 풍족하다. 유럽에서 6번째로 부강한 경제력을 자랑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의 근사치에 다가간 풍광을 품고 있다. 햇살 좋은 날, 가만히 눈을 감고 꽃 내음을 맡는 상상을 해보라. 론 알프스는 그 봄의 평화를, 오감을 예민하게 살려 건설한 여행지다.


이중 리옹과 안시를 빼면 앙꼬없는 찐빵이다. 리옹은 2,000년 이상 된 역사 도시. 전망대 격인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리옹을 요점 정리한 뒤 구석구석 골목을 헤쳐나가는 두괄식 여행지다. 반면, 안시는 한나절 코스로 동화책을 쭉 찢어 3D로 띄어놓은 듯한 비현실적인 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병렬식 여행지다. 구성 방식이야 어쨌든 두 산책 모두 왠지 기분 좋은 날을 보장하는 해방구 역할을 확실히 해낸다. 걸으면서 일종의 푸념을 계속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여기 안 오고 뭐하고 있었어? 친구를 만났고, 봄날의 도시를 얻고 돌아왔다.

거친 동력의 리옹 vs 서정적인 안시

리옹과 안시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유기적인 산책이 주 테마를 이룬다는 점이다. '걷는다'란 일상 행위가 영광스럽다. 다만 성격은 좀 다르다. 리옹이 거친 호흡으로 해발 281m의 언덕에 올라 다리를 쫙쫙 찢어 내려오는 강심의 트레킹 스타일이라면, 안시는 다짜고짜 유럽의 구시가지가 주는 감동부터 받고 걸음마다 잔재미를 발견하는 동네 산책에 가깝다. 관광객이 아닌 척 담담하게 걷기가 대단히 곤란하다. 지척에 널린 고수의 가게와 이질적인 풍경이 신세계에 발을 들인 탐험가의 기질을 부채질하기 때문. 어느 쪽이든 발에 모터를 달게 하는 흡입력에 애를 먹는다.


"일단 푸니쿨라를 타고 푸르비에르(Fourviere)로 올라 둘러보고 내려오면 돼."


사감 선생처럼 여행 코스를 정리한 현지통의 조언으로 리옹 여행은 시작됐다. 첨단 푸니쿨라를 타고 미니메스(Minimes)역에 내리면 푸르비에르 언덕. 다소 성급한 과거로의 산책이었다. 자그마치 기원전 1세기의 소환이 아닌가. 당시 로마인이 이 언덕에 정착하면서 탄생한 도시가 바로 리옹이다. 로마 극장의 잔재가 있는 시테 갈로 로망(Site gallo-romain)을 벗어나 리옹을 수호하듯 명당을 꿰찬 노트르담 대성당(Basilique Notre-Dame de Fourviere) 곁에 섰다. 삐쭉삐쭉 서로 오르려는 욕망의 서울 전경과는 달리, 단편적으로 획일화된 붉은 지붕의 전경은 되레 단조로워 지루할 정도다. 역으로 궁금증은 폭발했다. 대체 리옹은 어떤 의미로 건장한 걸까.

언제나 봄날, 사랑하기 딱 좋은 프랑

손 강과 론 강, 구 시가와 신 시가의 두 줄기 기적이 있는 리옹. 신경쇠약 직전의 건축가가 정리한 도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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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전망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으로부터 비유 리옹(Vieux Lyon, 구시가지)으로 연결되는 몬테 데 샤쥬(Montée des Chazeaux)로 진입하는 순간, 숨은 전망이 보석.

정적인 인상이던 리옹은 구시가지로 접근할수록 동적으로 가쁘게 전환되었다. 생 장(Saint-Jean)으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건축물은 키가 점점 커지고 건축물 사이의 어둡고 좁은 길에 갇혀 겨우 빠져나가는 순간, 리옹의 구시가지로 드라마틱하게 탈출하며 사람과 소음에 섞이게 된다. 유네스코도 반한 구 시가지에서 실실 쪼개는 웃음부터 나왔다. 돌길을 따라 시간의 무게를 이겨낸 건축물 옆으로 낭만적인 테라스를 내세운 카페, 그 옆 자기 브랜드가 확실한 전통 상점 등 하나라도 놓치면 후회할 '옆'의 몸살에 응하는 길이었다. 길은 생 장 대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제야 탈진 신호를 눈치챈 일행의 은신처는 대성당 앞 카페.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리옹에서 태어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라고 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가 일깨운 청량함. 그런데 리옹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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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 애호가의 테라스는 언제나 만석. 생 장 대성당 100m 앞 카페 겸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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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건축물을 활용한 상점이 즐비해 다리 근육은 확실히 잡힌다. 들락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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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적 산업의 발달을 입증하는 리옹의 상징, 기뇰(guignol). 가끔 호텔 객실 내에 전시되어 심장이 멎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안시 여행은 주차 대란으로 다소 삐걱거리며 시작했다. 차를 버리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은 오롯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안시의 풍경 때문이다. 티우 운하 위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파스텔톤 건축물, 아예 거울이 되기를 작정한 크리스털 같은 안시 호수, 터질 듯 싱싱한 신록과 제라늄, 그리고 늘 휴일인 듯 잠재된 평화의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비행을 사모한 생텍쥐페리가 이곳의 전경에 취해 항로를 이탈했다는 거짓말 같은 일화가 실제 상황이었다.


도보 여행자 입장에서 안시는 크게 두 구획으로 나뉜다. 소위 '알프스의 베니스'란 별칭의 근거가 되는, 티우 운하 위로 띄워진 각종 중세 건축물이 집결한 쪽과 알프스와 안시 호수의 풍경을 담보로 유럽 공원(Jardins de l'Europe)으로 연결되는 쪽. 전자가 판타지에 가까운 소설이라면, 후자는 잔잔한 에세이에 가깝다. 유럽 공원에 있는 사랑의 다리(Pont des Amours)로 가니, 사람들이 서로 몸을 포개어 박제된 상태였다. 서정적인 안시의 전경에 혼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앙드레 지드가 비유한 안시의 매력은 얼마나 기막혔던가. '연인인 사람들', 안시의 다른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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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 호수는 이래서 어쩌려고 지구별에 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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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우 운하에 띄워진 팔레 드 릴(Palais de L'Isle). 안시를 들른 어느 여행자의 사진 폴더에도 있을 법한 단골이자 간판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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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거나 꼭 껴안거나. 저마다의 사랑 표현이 난무한, 사랑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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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은 약속하듯 한 방향으로만 걸었다. 티베트에서 순례하듯.

낮에 즐기는 퐁듀 vs 밤에 즐기는 부숑

'NON-STOP SERVICE'


유럽공원에서 티우 운하 방향으로 틀자, 대환영 인사는 '논스톱 서비스'였다. 안시의 대부분 레스토랑은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의 룰을 깨고 있다. 논스톱은 이뿐만이 아니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 아이스크림 가게로 이어지는 즐길 거리 역시 논스톱이었다. 운하로 대폭 좁아진 거리는 야외 테이블에 의해 반토막이 나고, 소문을 듣고 몰려든 전 세계인과 사뭇 전투적인 산책이 진행됐다.


이곳에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경험한다. 남의 옷에 아이스크림을 묻히거나(혹은 묻거나) 갑자기 몹시 허기지거나. 후자에 속한 우린 티우 운하 뒤편 골목의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알프스 지역의 특산 요리인 퐁듀가 역시 메인 요리. 한 솥에 3가지 치즈를 섞어 뜨겁게 달군 치즈에 미니 사각 빵을 푹 찍어 먹는 단출한 테이블이다. 그러나 쭉쭉 늘어지는 치즈 앞에 와인이 끼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졌다. 공식적으로 파악되는 3,420여 종의 프랑스 와인 중 안시가 속한 사부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로컬 와인이 잔을 채웠다. 치즈는 주책없이 늘어지고, 다른 와인 병은 이미 테이블에 와 있고. 사부아주엔 이런 전통이 있었다. '빵 조각이 포크에서 빠져 치즈에 풍덩 빠지면, 다음 잔은 네가 사기.' 전통을 따른 것도 아닌데, 우리의 낮술과 치즈 사냥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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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가가 만들어낸 프랑스의 테라스 문화는 좁은 골목의 안시에서 더욱 극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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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치즈가 섞인 사부아주의 퐁듀. 빵을 치즈에 퐁당 담가 쭉쭉 늘어지는 치즈를 돌돌 감아 재빨리 먹는다. 계속해서 술을 들이킬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

안시가 시간을 파괴했다면, 리옹은 위장을 파괴하는 쪽에 가까웠다. 어둠을 질투하듯 늦은 저녁임에도 구 시가지 부숑(Bouchoun) 거리의 레스토랑은 불야성이었다. 부숑은 말하자면 리옹의 전통 가정식 레스토랑. 엄마의 큰 손이 내놓은 정겨운 밥상이 연상되지만, 아서라! 가정식과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소곱창, 에스까르고, 가리비 수플레 등 동공을 확장시키는 메뉴가 줄줄이였다. 부숑의 각 레스토랑은 '홈 메이드' 메뉴를 전면에 내세우는 까닭에, 요리가 얼마나 예술적인 경지에 오를 수 있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제네바에서 건너온 친구들과 다른 세트 메뉴를 시식하기 시작했다. 메인 요리인 양 큰 대접의 전채 요리를 보자마자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


'살찌는 것은 절대 죄가 아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대규모 칩거하는 리옹에서만 허용되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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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구 시가지) 리옹의 부숑 레스토랑이 로맨틱한 이유는 창의적인 음식 그리고 연인들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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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숑의 전채 요리 중 하나인 에스까르고. 메인 요리로 오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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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통과 샐러드, 햄 짬뽕에 반죽 계란이 척. 알프스 설산이더냐, 리옹식 샐러드.

'Here, there're no strangers.'


잠들지 않은 리옹의 밤을 활활 불태우기 위해 간 아이리시 펍이 새긴 문구였다. 여긴 아무도 이방인이 없었다. 이렇게 전 세계를 고향으로 둔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인가. 봄이다. 사랑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여행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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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Info] 제40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평창에 고배를 마신 안시지만, 매년 개최하는 애니메이션 축제로 건재함을 보여줄 예정이다. 83개국이 참여한 2,700여 필름이 상상의 도시에서 상영된다. 2016년 6월 13일~18일, 상세 정보는 www.annecy.org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