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제대로 주인 행세… 객가상인과 푸젠성 토루

[여행]by 한국일보

푸젠 고촌 ① 구산중촌과 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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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젠성 토루군 관망대에서 본 화창루. 토루는 대문만 막으면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는 요새형 주거 시설이다.

중국 동남부 푸젠은 타이완과 마주하고 있다. 최근에 세계문화유산 토루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친근해졌지만, 여전히 심정적으로 멀다. 구곡계의 무이산이 있고 주자학자 주희가 태어났지만, 아직 역사문화를 이해하는 장벽이 높다.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면 독자적인 문화를 간직하고 풋풋한 인정이 살아 있는 고촌이 많다. 4편으로 나누어 푸젠성 고촌 여행을 떠난다. 구산중촌과 토루, 창팅고성과 페이텐고촌, 타이닝고성과 구이펑고촌, 무이산과 샤메이고촌. 촌촌촌촌, 고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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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젠성 고촌 여행 동선.

인천공항에서 3시간이면 푸젠 남부의 샤먼에 도착한다. ‘싼하이이먼(三海一门)’은 가장 살기 좋은 해변 도시 네 곳을 말한다. 광시 베이하이, 광둥 주하이, 산둥 웨이하이와 함께 샤먼이 포함된다. 샤먼에서 1시간 거리에 구산중촌(古山重村)이 있다. 669년 당나라 초기, 토착 민족을 안정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행군총관 설무혜가 처음 주둔했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싼 첩첩산중이다. 설씨 후손이 천년 동안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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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중촌 초입의 석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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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중촌의 설씨가묘.

관광 차량을 타고 마을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돌무덤을 지난다. 주렁주렁 염원을 담은 빨간 리본을 매달았다. 800년 역사를 지닌 남송시대 석불탑이다. 크고 작은 자갈을 겹겹이 둥글게 쌓았다. 거위 알처럼 큰 자갈로 차곡차곡 다듬었다. 실제로 거위 알을 연상해 아란석(鹅卵石)이라 부른다. 7층 8.45m 높이에 1층 지름이 14m다. 이런 모양도 불탑인지 궁금했다. 꼭대기 첨탑에 있는 8면 돌기둥이 실마리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불’이 새겨져 있다. 푸젠에서도 유일무이하다고 적혀 있다. 16년이나 헤집고 다닌 중국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고민거(古民居) 지역 입구에 설씨가묘가 있다. 푸젠 남부의 주거 건축을 구춰(古厝)라고 부른다. ‘춰’는 동사로 쓰면 ‘놓아두다’라는 뜻이지만 방언으로 ‘집’이다. ‘옛 집’이란 이름의 가옥인 셈이다. 보통 벽돌로 쌓은 단층(간혹 복층) 건물이다. 설씨가묘도 원래 구춰를 개조해 세웠다. 지붕 용마루는 나선형으로 부드러우며 날렵하게 솟구친다. 꽃, 물고기, 동물 문양 등이 붉은 기와와 어울려 화사한 느낌을 준다. 구춰의 형태나 문양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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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석으로 장식된 구산중촌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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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중촌 담벼락의 구호.

골목은 미로다. 구춰 사이를 꼬불꼬불 걸어간다. 표지판이 없으면 영락없이 길을 잃을 듯하다. 담벼락은 물론이고 길바닥도 반질반질한 아란석이다. 담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에는 이끼가 새록새록 남았다. 발걸음이 많이 닿지 않은 흔적이다. 뜯어고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보존했다. 주민은 생활이 편리한 고촌 바깥으로 옮겼다. 인기척이 없어 고촌을 전세 내고 노는 기분이다. 물 고인 돌절구와 때 묻은 연자방아는 주인을 잃었지만, 담벼락에 남은 구호만이 사람이 살았노라 증명하고 있다. ‘국가기관’과 ‘민주집중제’, ‘인민군중’과 ‘인민복무’는 담아 갔으리라 믿고 싶다.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다. ‘와장(卧樟)’이라 의인화했다. 천년 풍파를 견디던 녹나무가 2006년 태풍으로 뿌리째 뽑혔다. 엉덩이를 드러낸 뿌리 위로 나뭇잎이 너무 푸르다. ‘고장무용(枯樟茂榕)’, 고사한 녹나무와 무성한 용수나무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녹나무가 넘어지며 옆에 있던 용수나무를 덮쳤다. 녹나무 가지는 용수나무의 영양분을 받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나 미사여구가 빠질 수 없다.

살아서 천년, 죽지 않고(生而千年不死)


죽어서 천년, 넘어지지 않고(死而千年不倒)


넘어져 천년, 썩지 않네 (倒而千年不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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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쓰러진 녹나무, 구산중촌의 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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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라는 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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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중촌의 ‘천년고장’ 녹나무.

이 말에 어울리는 나무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다.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호양(胡杨)으로 위구르민족이 ‘영웅수’라 부른다. 2012년 사막 도로를 지나며 만난 호양림은 척박한 땅을 비웃으며 꼿꼿했다. 구중산촌에는 1000년 간 생생하게 살아있는 녹나무, 천년고장(千年古樟)도 있다. 어른 열세 명이 두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다. 마을이 생기기 전에 태어난 나무다. 긴 세월에 나무의 속살은 비었어도 여전히 건재하다. 천년 묵은 녹나무는 중국 온 사방에 많다. 와장은 천년 고촌에 어울리는 기적이다. ‘삼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지 두고 볼 일이다.


서쪽으로 3시간을 달리면 토루(土楼)가 있다. 푸젠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 건축이다. 장시, 광둥, 심지어 쓰촨에도 토루는 있다. 북방민족의 중원 장악은 연쇄적으로 민족대이동을 불렀다. 중원에서 남하한 후 공동체 가옥 토루를 짓고 살았다. 대문을 막으면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갈 수 없는 방어가 필요했다. 외적이 침투해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고안했다. 부엌과 창고, 침실은 동일 표준이다. 청나라 말기에는 토지 쟁탈로 토착민과 이전투구도 벌였다. ‘손님으로 와서 주인 행세를 한다’는 악명이 굳어져 객가(客家)가 됐다. 객가인, 객가상인은 토루와 이란성 쌍둥이다. 푸젠에 집중적으로 많다. 한 지역에 우르르 모여 있어 토루군이라 부른다. 크거나 작거나 다양한 모양의 토루가 거의 2,000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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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갱 토루군 사채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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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루 마당에서 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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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루 대문에서 위로 본 모습.

사채일탕(四菜一汤)으로 유명한 전라갱(田螺坑) 토루군 관망대에 도착한다. 사채일탕은 요리 넷, 탕 하나인 식탁의 은유적 표현이다. 기이한 광경에는 늘 전설이 따른다. 비탈 아래 전라(우렁이)를 먹고 자라는 오리가 있었다. 오리를 기르는 소년이 우렁각시를 도운 덕분에 재산을 모으고 보운루를 지었다. 청나라 시대 1796년이다. 가운데 탕 그릇처럼 생긴 토루다. 소년의 이름은 황귀희다. 황씨 집안은 날로 번창해 얼마 지나지 않아 화창루를 짓고, 1930년대에 진창루와 서운루, 1960년대에 문창루를 차례로 지었다. 가운데 네모 반듯한 토루를 중심으로 세 토루는 원형이며 문창루는 타원형이다.


모두 3층 높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처음 만나는 화창루, 한 층에 방이 22칸이다. 1층은 부엌, 2층은 침실, 3층은 창고다. 생일 케이크를 같은 크기로 잘랐다고 연상하면 된다. 더 크고 더 작고 따질 이유가 없다. 토루 방을 모두 더하면 66칸이니 300명 이상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당의 우물도 함께 사용한다. 지금도 사람이 살지만, 관광지가 된 후 1층은 가게로 변했다. 위를 바라보면 뚫린 하늘, 홍등과 빨래가 줄줄이 이어진다. 왜 방마다 홍등이 하나씩 걸렸을까? 불이 켜지면 식구가 귀가했다는 신호이자 약속이다. 불이 다 켜지면 마지막에 귀가한 사람은 대문을 걸어 잠근다. 웬만한 공격으로 문은 부서지지 않는다. 방화에 견디도록 대문 위에는 항상 물을 담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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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루 마당에서 본 동도서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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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루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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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루 2층에서 본 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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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루 1층 부엌의 우물.

지진이나 재해, 전쟁에도 끄떡없이 튼튼한 이유가 많다. 1층 담장은 1.8m로 두텁고 한 층 올라갈수록 10cm씩 얇아 안정적이다. 복도 기둥이 과학적으로 설계돼 지진과 침식에도 굳건했다. 3ㆍ4층 기둥은 시계 방향으로, 5층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최대 15도가량 기울었다. 이런 동도서왜(東倒西歪)가 균형을 잡고 충격을 흡수했다. 7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튼튼한 이유다. 원래 계단을 따라 2층 이상 올라갈 수 없지만 약간의 돈을 내면 가능하다. 여행 온 사람 대부분 올라간다.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단층 조당이 마당을 채우고 있다.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정문은 결혼과 제사를 위해 들어가는 문이고 출생을 기원하는 동문과 장례를 치르는 서문으로 구분한다. 조당은 교육을 위한 서원으로도 사용한다. 마당의 공동 우물 외에 1층 부엌에 작은 우물이 22개가 있다. 인구가 많은 토루이니 우물이 많다. 1.5m 깊이에서 물이 나온다. 건축할 때 지형도 매우 중요했다. 계곡이 지나는 산비탈이나 도랑 부근에 토루를 짓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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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위에 지은 화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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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에서 본 화귀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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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흥건한 화귀루 학당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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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귀루의 맑은 우물.

습지에 토루를 짓다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운수요고진(云水谣古镇) 남쪽에 위치한 화귀루가 그랬다. 청나라 옹정제 때인 1732년 건축됐다. 토루 중 높이가 최고인 21.5m이고 네모 형태다. 1층을 다 짓자 배가 침몰하듯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소나무 말뚝 200여개를 박아 기초를 다시 튼튼히 했다.


3칸 크기의 학당이 자리 잡았으니 마당이 좁아 보인다. 정문엔 진사(进士) 편액이 붙었다. 학당 마당에 자갈이 깔렸고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이 흥건하다. 바닥에 5m에 이르는 철선을 겹쳐 깔고 자갈로 덮었지만, 습지라는 증거를 없앨 수는 없다. 자갈을 조금 세게 밟으면 질퍽거려 ‘노아의 방주’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마당에 두 개의 우물이 있다. 하나는 맑은 물, 하나는 탁한 물이 솟는다. 음양정(陰陽井)이라 부른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신기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마실 물과 씻는 물로 자연스레 나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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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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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루 학당 사시실.

운수요 북쪽에 위치한 회원루는 쌍환형 토루다. 4층 높이 14.5m, 36칸이라 웅장하다. 2층과 4층에 기와로 지붕을 쌓아 두 개의 원이 쌍가락지처럼 보인다. 마당에 누워 위를 보면 토루만의 시야가 하늘에 펼쳐진다. 1909년에 건축된 토루의 주인은 허베이에서 이주했다. 머나먼 땅에서 온 역사를 늘 품으라는 뜻이다. 대문 위에 태극팔괘를 그렸고 좌우에는 긴 대련(對聯)을 남겼다. 대련의 첫 글자가 회와 원이다. ‘덕을 품어 조상의 교훈을 잘 따르고’ ‘멀리 산을 보고 가까이 물을 생각하듯 우수한 인문적 소양을 갖추라’는 메시지다. 인문적 수사가 아주 많은 토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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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루 학당 옆문의 ‘식곡’과 ‘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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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루 학당 입구 대련.

학당은 시와 예를 거론하는 시례청(诗礼厅)이고 본당은 사시실(斯是室)이다. 당나라 문학가 유우석의 ‘루실명(陋室铭)’이 출처다. ‘여기 누추한 집이지만 나는 마음의 향기가 있노라(斯是陋室,唯吾德馨)’는 대목을 빌었다. 누추하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담소 공간으로 생각하면 된다. 양쪽 옆문에도 글자로 뒤범벅이다. 보전(宝田)과 옥수(玉树)는 어렵지 않다. 식곡(式穀)과 치모(詒謀)는 조금 의역이 필요하다. 식곡은 ‘곡식을 대하듯 규범을 생각하라’, 치모는 ‘지략을 잘 다듬어 본보기를 남기라’로 해석하면 무난하다. 학당 입구에 새긴 대련도 의미심장하다. ‘동양의 유태인’ 소리를 듣는 객가상인은 교육이 곧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

경서는 자식을 교육시켜 널리 모범이 되도록 하며(诗书教子诒谋远)


예법은 집안에 연이은 경사가 오래 지속하도록 한다(礼让传家衍庆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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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토루 여승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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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루 마당에서 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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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루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나의 붉은 고래’의 장면.

토루군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다 둘러보려면 1주일로도 모자란다. 다 소개하기도 벅차다. 그래도 꼭 보여주고 싶은 토루가 있다. 융딩토루군에 위치한 여승루(如升楼)다. 쌀 한 되를 ‘승’이라 하고 꼭 그만한 크기라고 한다. 가장 작은 토루로 유명하다. 2017년 6월 한국에서도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나의 붉은 고래(大鱼海棠)’가 개봉했다.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토루를 배경으로 삼은 장면만은 너무 참신했다. 여승루가 나오는 장면은 감동 이상이었다. 여주인공이 죽은 자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찾아간 마법사의 집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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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루 옆 촬영지점에서 본 복유루.

여승루 건너편에 유창루의 유(裕)를 쓴 토루가 둘 있다. 광유루(光裕楼)와 복유루(福裕楼)다. 풍부하고 넉넉한 유는 옷(衣)과 곡식(谷)을 담고 있다. 토루 이름으로 아주 걸맞다. 의식주가 완벽하다. 여승루에서 바라보는 복유루, 복까지 누린 토루다. 토루마다 사연이 다르지만 모두 객가인의 혼이 담긴 보물이다. 이런 토루가 수천 개다. 평생이 걸려도 알기 힘든 중국, 토루도 한 몫, 아니 두 몫 하고도 남는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2019.07.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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