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당 많은 집, 동네 ‘놀이본부’ 되다

[컬처]by 한국일보

경남 산청 ‘안테나 하우스’

※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에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자리 잡은 이준석ㆍ김보명 부부의 집은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를 닮았다. 집의 형태가 삶에 영향을 준다는 건축가의 철학이 녹아 있다. ©이한울 건축사진작가

산골에 살면 도시에서의 삶이 주는 편리와 멀어진다. 출퇴근, 통학, 사교육, 외식, 쇼핑 등 생활이 일사천리로 굴러가는 도시와 달리 산골에서의 삶은 적지 않은 시간과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다. 대신 여러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밀도 높은 도시에 비해 산골에서는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1년여전 세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고 도시(경남 김해시)를 떠나 산골(경남 산청군)로 집을 지어 옮긴 이준석(41)ㆍ김보명(41) 부부는 오히려 이와 반대다. 부부의 삶은 더 편리해졌고, 더 복작거린다. 부부는 “도시에서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리지 않을지 걱정했고, 외식 한번 마음 편하게 하기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에 다니고, 건강한 먹거리가 많아서 육아가 한결 편해졌다”며 “산골이라 아는 사람도 적고 적적할 줄 알았지만, 이웃들과의 활발한 교류에 심심할 틈도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아내는 전업주부다.

한국일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오른 주택의 지붕은 안테나처럼 동네 주민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이한울 건축사진작가

세 개의 마당이 있는 놀이본부

작은 소음에도 잠을 설치고, 식품 첨가물이 든 음식을 먹으면 예민해지는 첫째(12)와 에너지가 넘치는 둘째(9), 호기심이 풍부한 셋째(5)까지. 세 아이를 위해 부부는 조용하고, 직접 먹거리를 재배할 텃밭이 있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마당이 있는 산골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지인이 산청에 살고 있었다. 3개월간 산청에 집을 빌려 살아보니 아이들도 좋아했고, 용기도 생겼다. 부부는 산청군에서 인구를 늘리기 위해 분양한 언덕배기 대지(877㎡)를 골랐다. 책에서 마음에 든 주택을 보고, 그 집을 지었던 김동희(KDDH 건축사사무소) 건축가에게 집 설계를 의뢰했다. “세 아이와 주위 친구들이 다 모여서 놀 수 있는 놀이본부 같은 집이면 좋겠다”는 게 부부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건축가는 외부 공간을 나누었다. 반듯한 대지 한쪽으로 집을 두지 않고, 중앙으로 집을 당겨 집을 중심으로 세 개의 마당을 만들었다. 일자형 집을 두면 공간은 앞뒤로 두 개만 생기지만 Y자형 집은 세 개의 공간을 만들었다. 햇살 가득한 남향에는 앞마당이, 집 뒤쪽 출입구에는 뒷마당이 있다. 주방과 연결되는 사이 마당에는 작은 텃밭과 정원, 모래 놀이터가 있다. 김 소장은 “집을 뒤로 밀고 마당을 넓게 만들면 막상 활용도가 제한된다”며 “집의 형태가 다소 복잡해도 여러 공간을 만들어 활용도를 높였다”고 했다. 모래 놀이터에는 1톤의 모래를 넣었고, 널찍한 앞마당에는 잔디를 심었다. 모래 놀이터 옆에는 야외 샤워시설이, 현관에는 작은 세면대가 있다. 아이들이 수시로 물을 쓰고, 실내로 들어올 때 씻을 수 있어 편리하다. 김씨는 “아이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모래를 만지고, 나무와 교감하고, 뛰어 노는 걸 보면 집을 지은 게 그리 뿌듯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일보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위치한 주택은 주방을 중심으로 날개가 세 개인 Y형 구조로 설계됐다. ©이한울 건축사진작가

건축가는 집안도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정교하게 동선을 짰다. 집에 들어오면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다락을 통해 건너편 방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 첫째 방이다. Y형 집의 한 끝에 있는 첫째의 방부터 일렬로 둘째, 셋째 방이 배치됐다. 아이들 방을 지나면 집의 중심인 주방으로 나온다. 이 순환 동선을 따라 아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때때로 머무른다. 곳곳에 뚫린 창으로 산과 구름이 흘러간다. 김 소장은 “일렬로 방을 배열해 통로를 만들고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면 단층집(연면적 116.39㎡)도 넓게 보인다”며 “그러면서 아이들의 공간과 부부의 공간도 분리했다”고 설명했다. 부부의 공간은 거실과 주방을 가로질러 Y형의 또 다른 축에 놓였다. 도시에서 잠을 곧잘 설쳤던 아이들을 돌보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부부는 새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아이들도 깊은 잠을 잔다.

한국일보

집은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도록 현관 계단→다락→첫째 방으로 연결되는 사다리→복도 순으로 돌 수 있는 순환형 구조로 설계됐다. ©이한울 건축사진작가

한국일보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위치한 집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Y형으로 대지에 놓여 있다. 건축가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집을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들여 놓았다. ©이한울 건축사진작가

산골공동체 꿈꾸는 ‘안테나 하우스’

동네 주민에게 집은 ‘안테나 하우스’라 불린다. 종이비행기처럼 생동감 있게 외관을 만들고 싶었다는 건축가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하얀 외관에 지붕과 창으로 변화를 줬다. 경사지붕은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았고 빨강, 초록, 노랑 등 크고 작은 창은 재미를 더한다. 현관 앞에는 안테나 같은 깃대가 서 있다. 김 소장은 “안테나로 동네 주민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신호에 맞춰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런 놀이본부를 상상했다”며 “집의 형태는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좀 더 즐겁고 신나게 설계했다”고 말했다.


설계의 영향일까. 듬직한 산에 폭 안겨 고요할 것만 같은 집은 오가는 이들로 항상 떠들썩하다. 김씨는 “오히려 도시 아파트에서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이웃도 잘 몰랐지만, 이곳에서는 이웃이 집 비밀번호도 알 만큼 가깝게 지내고, 자주 모인다”고 말했다. 이웃과 일상의 인사가 ‘갖다 먹어라’가 될 만큼 옥수수, 상추, 가지, 오이, 토마토 등 각종 먹거리들이 오간다. 굳이 장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다. 집을 짓고 난 뒤 문턱이 닳을 정도로 방문객이 수시로 찾아온다. 세 아이의 동네 친구들과 예전 도시에 사는 지인들이다. 한번에 60여명이 머물다 간 적도 있다. 같은 크기의 도시의 집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민폐겠지만 김씨는 대환영이란다. 김씨는 “집만 열어뒀을 뿐인데 알아서 사람들이 와서 같이 놀고, 먹고, 뒷정리까지 다 해주고 간다”라며 “경계하고 의식하지 않고 나누고 공유하는 삶이 이렇게 행복한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꽃꽂이를 하고, 천연 화장품을 만든다.

한국일보

천정 높이가 2m 가까이인데다 큰 창으로 풍경을 들이는 다락은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활용된다. ©이한울 건축사진작가

아이들도 달라졌다. 환경과 사람에 예민했던 아이들은 이제 그들과 함께한다. 집 마당에서 친구들과 모래 놀이를 하고, 축구를 하고, 캠핑을 한다.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강에서 수영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더위를 식힌다. 정원에 심은 앵두와 블루베리, 포도나무를 관찰하고, 열매를 따 먹는다. 나뭇잎을 줍고 해 지는 하늘을 바라본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따라 야간 등산을 한다. 산골 가족의 여름 휴가는 따로 없다. “여름 휴가요? 1년 365일이 휴가 같아요. 휴가철엔 저희 집도 성수기랍니다.”

한국일보

Y형 주택 마당에 모래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콘크리트 벽 뒤에는 샤워시설이 있어 모래 놀이 후 아이들이 씻기에도 편하다. 강지원 기자

산청=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2019.08.19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