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료 고작 5만원, 음원 수익은 쥐꼬리... 음악방송이 강요하는 열정페이

[컬처]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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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듀오 멜로망스 멤버인 김민석인 지난해 JTBC 음악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2'에서 노래 '유'를 부르고 있다. 멜로망스는 '유' 음원 공개 후 10억 원의 매출이 발생했으나 방송사에게서 수익 정산을 최근까지 받지 못했다. JTBC 방송 캡처

신인 아이돌그룹 A는 새벽 2시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반쯤 감긴 눈으로 향하는 곳은 미용실. 멤버들이 모두 머리 손질 등을 마치는 데까지는 세 시간이 걸린다. 분장을 마친 뒤엔 숨 돌릴 틈 없이 바로 방송사로 출근한다. 이른 오전부터 진행되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 리허설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

음악방송 한 번 출연에 400만 원 투자

이 일정이 잡히면 아이돌그룹은 늘 밤잠을 설친다. 더 큰 노역은 기다림이다. ‘퇴근 시간’은 생방송이 끝나는 오후 6~7시. 새벽 2시에 일어났으니 16시간여를 이 일정 하나에 묶여 있어야 했다. 가수는 대기실에서 틈틈이 쪽잠을 잔다.


들인 시간만큼 경비도 많이 든다. 스타일리스트에 백댄서 출장 일비까지. 제작진이 다른 음악 방송에서 선보이지 않은 새 의상을 요구해 의상 제작비만 100만원이 넘는다. K팝 기획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성 5인조 아이돌그룹이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하려면 평균 400만원 이상이 든다. 출연료는 얼마나 받을까. “케이블채널 한 곳에선 5만원, 지상파 방송사 한 곳에선 11만원을 받았네요.” 그룹 A의 상반기 정산표를 컴퓨터로 살펴본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5만원은 멤버 별로 주는 돈이 아닌 팀 전체 출연료다. ‘16시간에 400만 원’을 투자한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보상이다.


방송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유명 가수라고 해도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받을 수 있는 출연료는 30만~40만 원대다. 20여년 동안 아이돌그룹 기획을 한 관계자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엔 출연할수록 빚더미는 커진다”라고 말했다. 가수들이 적자를 무릅쓰고도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는 방송의 힘이다. 과거보다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TV는 아직도 주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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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등이 모여 만든 ‘공정한 음악생태계 조성을 위한 연대모임(공음연)’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JTBC 음악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2’가 가수들의 음원 수익을 편취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공음연 제공

JTBC도 멜로망스 음원 수익 ‘불공정 계약’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밤샘 촬영이 사라지는 등 열악했던 방송 제작 행태가 일부 개선되고 있지만, 방송사에서 가수들의 활동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처우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낮은 음악 순위 프로그램 출연료 문제는 10년 넘게 바뀔 기미가 없다. 이 와중에 종합편성채널 JTBC는 최근 남성 듀오 멜로망스와의 불공정 계약 논란으로 입길에 올랐다. 이 일로 잘못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음악인을 상대로 한 방송사의 ‘갑질’과 착취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음악인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등이 모여 만든 ‘공정한 음악생태계 조성을 위한 연대모임(공음연)’은 지난 19일 “JTBC 음악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2’가 가수들의 음원 수익을 편취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대표 피해 사례로 멜로망스가 ‘슈가맨2’에서 부른 뒤 지난해 1월 음원 사이트에 공개한 노래 ‘유’를 들었다. 이 곡이 공개된 뒤 10억여원의 음원 매출이 발생했는데 JTBC가 정산을 일절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수익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데는 음원 수익 분배 비율에 대한 양측의 이견 탓이 컸다. 공음연에 따르면 JTBC는 지난해 8월 ‘유’의 음원 수익 중 17.85%만 가수 측이 가져가는 안을 제시했다. 프로그램 투자사인 인터파크가 37.5%를 챙겨 가는 내용이었다. 멜로망스 측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터파크가 ‘유’ 제작이 아닌, 프로그램 제작에 투자한 것인데 가수가 음원 수익을 투자사와 나눠야 하는 게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였다. 공음연에서 활동하는 신종길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처음 계약서엔 투자사 음원 수익 분배 조건이 없었고 수익 분배도 JTBC가 70%, 멜로망스가 30%였다”며 “음원 제작비도 모두 멜로망스 측에서 댄 터라 투자사 음원 수익 분배는 납득하기 어려운 계약 조건”이라고 말했다. 방송사에 기울어진 즉 가수와 방송사 사이 불평등 계약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대목이다.


공음연은 이 건이 공정거래법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JTBC를 상대로 20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이 사건을 신고했다. JTBC는 멜로망스에 대한 수익 미정산을 사과하고 “지금까지 제작한 음악 프로그램의 정산 작업 전반을 점검하겠다”라고 밝혔다.

해마다 느는 계약 기간도 점검해야

가수를 상대로 한 방송사의 ‘열정페이’ 강요 문화 개선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최근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Mnet은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를 제작하며 출연자와의 계약 기간을 1년(아이오아이ㆍ2016), 1년6개월(워너원ㆍ2017), 2년6개월(아이즈원ㆍ2018), 5년(엑스원ㆍ2019)으로 해마다 늘려왔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은 프로그램 음원 수익 및 그룹 데뷔를 통한 수익 확대와 관련이 깊은 만큼 계약 전반에 대해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2019.09.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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