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는 어쩌다 ‘국민 영웅’에서 ‘적색수배자’가 됐나

[이슈]by 한국일보

장자연 사건 유일한 증인으로 관심 모아

후원금 논란 있지만 “윤씨 마녀사냥” 옹호 여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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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로 주목 받은 배우 윤지오씨가 지난 4월 8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 등과의 간담회에서 참석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는 이름 하나가 있습니다.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를 통해 반짝 이름을 알린 뒤 세상을 떠난 고(故) 장자연(당시 29세)씨. 2009년 사회 유력인사에게 성상납을 강요 받았다는 자필 문서를 남긴 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죠. 일파만파 파문은 커졌지만 경찰과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이어졌고, 관련자 대부분은 법망을 빠져나가 진실은 미궁에 빠졌습니다.


장씨의 옛 동료 배우 윤지오(32ㆍ본명 윤애영)씨는 관련 사건에 대해 유일하게 적극적인 진술을 해온 인물입니다. 홀로 권력자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도 공개 증언에 나서는 등 용기 있는 모습에 국민들은 지지를 아끼지 않았죠.


그러던 그가 이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적색수배자’ 처지가 됐습니다. 윤씨는 후원금 사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ㆍ고발을 당했는데요. 캐나다에 있는 윤씨가 수사에 불응하자 한국 경찰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고, 6일 인터폴은 중대 범죄 혐의자에게만 부여하는 적색수배령을 윤씨에게 적용했습니다. 경찰은 캐나다 경찰과 협의해 윤씨를 국내로 데려올 방침이라는데요. 그가 공개 증언으로 대중 앞에 나선지 불과 8개월 만의 일입니다.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로 ‘국민 영웅’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그는 어쩌다 경찰에 쫓기는 적색수배자 신세가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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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씨는 지난 3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유튜브 방송화면 캡처

윤지오, 어떻게 알려졌나요?

지난 3월 ‘장자연 사망 10주기’를 맞아 윤씨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통해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그는 사건 초기부터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던 핵심 증인이었고, 이전까지는 익명으로 언론 인터뷰 등을 해왔죠. 10년 만에 얼굴을 드러낸 이유로 그는 “(한국은) 가해자들이 너무 떳떳하게 사는 걸 보면서 억울하단 심정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윤씨는 장자연 리스트에 관해 “세상에 공개를 하고자 쓴 문건이 아니라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쓴 문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죠. 장자연 리스트가 법적 대응을 위해 작성된 문건이라는 주장입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장씨가 2009년 3월 언론사 고위 간부 등 유력인사들로부터 성상납을 강요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4장 가량의 자필 문건입니다. 그는 “(사건 초기) 매번 밤 10시 이후, 새벽에 검경에 불려가 장자연 사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며 “당시 21세였던 내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부실했다”고 사건 초기 수사기관의 부당한 행태를 폭로하기도 했죠.


법무부 과거사위 진상조사단은 지난해 4월부터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고 있었는데요. 윤씨의 등장으로 조사도 활기를 띠는 듯했습니다. 1차 조사에서 그는 성접대 대상 명단에 포함됐다는 의혹을 받는 언론인 3명과 정치인 1명의 이름을 조사단에 진술했습니다. 2차 조사에 출석하면서는 “연예인 이미숙씨 외에 5명이 더 계신다”며 연예계 동료들에 대한 확대조사를 주장하기도 했지요.


3월 그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가 눈물 짓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죠. 다른 라디오나 TV 방송 인터뷰 요청에도 적극 응하며 윤씨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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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1033개 단체 공동주최로 열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 전 차관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증언하고 있다. 앞서 증언한 윤지오씨가 증언을 들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원금 문제는 왜 불거졌나요?

장자연 사건을 다룬 자서전 ‘13번째 증언’을 출간한 후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 온라인 방송도 진행했습니다. 그가 신변에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개인 경호 비용이 모금되기도 했고, 장자연씨 관련 굿즈 제작을 위한 후원금 모금도 추진됐죠. 그는 4월 증언자 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만든다며 기금을 모금해 1억 5,000만원 상당의 후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한 언론에서 윤씨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장씨를 이용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그는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는데요. 보도 당일 여야 국회의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취재진에게 “아침에 기사를 봤다. 정정보도를 부탁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 대응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이 언론사는 기사를 삭제했지요.


그 사이 ‘13번째 증언’은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그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북콘서트를 열고 100명의 시민 앞에 섰는데요. 윤씨는 “이익을 추구하러 나온 게 아니냐고 묻는데 늦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나오기 어려웠다”며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벗어난 일이었다”고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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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씨가 4월 24일 오후 캐나다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캐나다는 왜 갔나요?

2017년 ‘혼잣말’을 출간하기도 했던 김수민(34ㆍ본명 김경미) 작가가 4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작가 김수민입니다, 윤지오씨 말은 100% 진실일까요?’란 글을 올리며 파국은 시작됐습니다.


그는 “이슈를 만들기 위해 책을 냈고, 출판 과정에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았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며 윤씨를 비판했는데요. 김 작가는 ‘13번째 증언’의 집필과 관련해 윤씨가 조언을 구하면서 친분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윤씨가 “김 작가와는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다”며 법적 대응을 거론하자, 김 작가는 윤씨를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후에는 사기 혐의로도 고발했죠. 김 작가 측은 “윤씨가 고 장자연 사건에서 뭔가를 아는 것처럼 침묵해 사람들을 기망했고, 해외 펀드 사이트를 통해 후원금을 모금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6월 윤씨는 후원자 400여명으로부터 후원금 반환 집단소송까지 당하게 됩니다.


윤씨는 김 작가에게 고소 당한 다음날인 4월 24일 캐나다로 출국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행보에 ‘도피성 출국’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었는데요. 그는 어머니의 건강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윤씨는 출국 장면을 아프리카TV로 생중계하면서 공항의 취재진을 향해 “내가 범죄자냐. 장난하냐”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윤씨의 진술 신빙성 논란에 정작 ‘장자연 사건’의 본질은 잊히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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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작가가 지난 4월 자신의 SNS에 공개한 윤지오씨와의 대화 내용. 왼쪽은 윤씨가 지난해 6월 26일 김 작가에게 처음 보낸 SNS 메시지, 오른쪽은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진 후 오간 대화다. SNS 화면 캡처

윤지오 사건 수사 상황은?

한동안 잠잠했던 윤씨 사건은 지난달 30일 체포영장 발부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경찰이 지난 7월부터 지난달까지 세 차례 윤씨에게 카카오톡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윤씨가 이에 불응해 체포영장을 신청한 겁니다. 하지만 윤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귀국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윤씨를 강제 송환하기 위해 여권 무효를 신청하고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습니다. 적색수배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가장 강력한 조치입니다. 통상 강력범죄, 조직범죄, 5억원 이상 경제사범 등이 대상이지요.


윤씨는 꾸준히 SNS를 통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5일 SNS에 “호의와 선의로 진행됐는데 (후원금이) 저를 이 상황까지”라며 “‘국민사기’, ‘윤지오 사건’이라며 고인을 위해 증언한 모든 분들과 유가족을 비롯한 모든 증언 자체를 훼손할 수 없으니, (언론이) 도를 넘는 가해행위를 행하고 있다”고 밝혔죠.


체포영장 발부 직후에는 “출장조사, 서면조사, 화상조사를 요청했는데 경찰이 모두 묵살하고 국내소환조사만을 압박했다”며 부당하게 가해자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증인으로 10년을 살게 해 놓고 이제는 아예 메시지와 메신저의 역할을 박살내려 하냐”면서 “공개적으로 증언자로서 나선 것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도대체 무엇을 덮으려 하는가”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인터폴이 적색수배를 내리자 7일 그는 또 SNS에 장문의 글을 띄웠습니다. 윤씨는 “인터폴 적색수사는 강력 범죄자로 5억원 이상 경제사범, 살인자, 강간범 등에 내려지는 것”이라며 “저에게는 애초에 해당되지 않는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의 강제 송환 조치는 ‘공익제보자 보호법’,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겁니다.


국내에서도 여전히 윤씨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나옵니다. 녹색당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7개 단체는 6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윤씨를 상대로 편파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제가 보기에 경찰이 적색수배를 요청한 것은 진실을 가리고 윤씨를 마녀사냥 하기 위해서”라며 “경찰이 적색경보를 울리며 수사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윤지오가 아니라 버닝썬 게이트와 장자연 사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윤씨는 정말 국민을 상대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범죄자일까요, 아니면 장씨를 도우려다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한 피해자일까요. 상처 입은 국민과 억울하게 떠난 장씨를 위해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겠죠. 다만 온 국민이 윤씨의 행보에 집중하는 사이, 정작 밝혀져야 할 ‘장자연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장자연 사건’은 어떻게 됐나요?


2009년 3월 세상을 떠난 장자연씨가 남긴 문건이 폭로된 후 언론인, 금융인, 기업인, 연예기획사 대표 등 20명이 수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검찰은 유력인사들을 모두 불기소 처분하고 술자리를 제공한 연예기획사 대표와 매니저 등 2명만 재판에 넘겼는데요. 관련자들이 모두 법망을 빠져 나와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지난해 검찰은 장씨 사건 관련자 가운데 공소시효가 임박한 전 조선일보 기자 A씨를 성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지난 8월 A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10년 만에 이뤄진 진실 규명 시도도 허망하게 마무리됐습니다. 5월 과거사위는 유력인사들이 개입된 성범죄 의혹 및 수사 외압에 대해 수사 권고 없이 마무리됐다고 밝혔습니다. 과거사위는 “장자연 문건은 진실하지만, 성접대 대상 이름이 적힌 리스트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강제조사 권한이 없는 위원회 기구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죠. 증거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윤씨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 도리어 진실 규명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2019.11.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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