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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복면기자단

아이돌 입은 '문예지',
비정상인가요?

by한국일보

악스트, 릿터, 미스테리아…젊은 문학잡지 품평회

아이돌 입은 '문예지', 비정상인가요

지난해 7월 은행나무 출판사가 창간한 서평전문지 ‘악스트’. 표지에 해당호 인터뷰이의 사진이 실린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독자만 생각했습니다.”

 

8월 1일 민음사가 창간한 문학잡지 ‘릿터’ 기자간담회에서 박상준 사장이 한 말이다. 지난해 40년 전통의 문예지 ‘세계의문학’을 종간한 뒤 1년여 간 준비 끝에 내놓은 격월간 ‘릿터’는 아이돌 인터뷰라는 파격 외에도 평론가 대신 출판사 편집자가 문예지 제작 전면에 나서는 본질적 변화를 꾀했다.

 

지난해 7월 격월간 서평지 ‘악스트’(은행나무)와 격월간 장르문학전문지 ‘미스테리아’(엘릭시르)가 창간하면서 문예지엔 한바탕 세대 교체 바람이 불었다. 출판사 창비가 연내 젊은 문예지 창간을 선언했고, 문학과지성사도 계간‘문학과사회’의 혁신을 준비 중이어서 이런 변화의 바람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예지들이 젊게 옷을 갈아 입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문가들 위주로 돌아가던 문학판을 독자에게로 돌려 놓겠다는 것이다. 릿터, 악스트, 미스테리아를 놓고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독자 품평회를 열었다. 3시간 동안 KTX를 타고 이동할 경우 어떤 잡지를 사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기자 5명 중 3명은 미스테리아를, 1명은 릿터를, 1명은 악스트를 골랐다.

 

아연한맨(이하 맨)=체형만 놓고 보면 세 잡지가 비슷하다. A4 정도의 판형에 얇은 두께. 악스트는 표지에 인물 사진을 싣고, 릿터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 미스테리아는 빨강, 초록 등 단색 표지다.

 

아귀여워(이하 아귀)=겉으로 보기엔 릿터가 제일 젊은 잡지란 느낌이 있다. 뭔가 변화하려고 한 티가 많이 난다. 반면 악스트는 좀 딱딱해 보여 선뜻 손이 가진 않는다. 내용은 미스테리아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행복하슈렉(이하 슈렉)=릿터가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에서 많은 시도를 했다. 젊은 독자층을 겨냥한다며 예쁘게만 만든다면 되레 비호감일텐데, 세 잡지 다 나름의 기획ㆍ구성에 공을 들였다.

 

맨=세 잡지의 특징은 외관 외에도 평론가의 비평이 거의 없다는 게 기존 문예지와 차이가 난다. 악스트는 처음부터 비평 대신 서평을 표방했고, 미스테리아는 장르문학계 특성상 비평이 없다. 릿터는 맨 끝에 하나 있는데 이게 웃긴다. 첫 회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소설 재미없다 생각하지 말고 한 번만 읽어보란 투가 지금 문예지들의 악전고투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뻣뻣한 캣츠걸(이하 캣츠걸)=지금 악스트에 실리는 서평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퀄리티 차이가 너무 크다. 외고 필자의 필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능력인데 중구난방이다. 1인칭 글도 너무 많고.

 

아귀=동의한다. 특히 작가가 작가에 대해 쓰는 작가론은 너무 ‘우리끼리’ 얘기라 끼어들 데가 없는 느낌이다. A라는 작가를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데 등단해서 너무 반갑고 하는 식은 기존 문학 독자거나 작가의 팬이 아니면 그다지 알고 싶은 얘기가 아니다. 문단 사람들끼리만 아는 이야기, 유머 코드에 별로 웃음이 안 난다.

 

낮술마신 밤의여왕(이하 여왕)=글쎄, 난 악스트가 소위 순문학 독자들의 욕구를 가장 잘 만족시켜줄 수 있는 콘텐츠인 것 같다. 이를테면 3/4월호에 파스칼 키냐르 인터뷰가 실렸는데, 난 신문에서 이 작가 인터뷰 한 번도 본 적 없고 내가 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닿은 적도 없다. 앨리스 먼로라든지 다른 해외 작가들의 리스트도 흥미를 끈다. 그런데 글자가 왜 이렇게 작을까.

아이돌 입은 '문예지', 비정상인가요

문학동네 임프린트 엘릭시르에서 지난해 7월 창간한 장르문학전문지 미스테리아. 장르문학계에 오래 몸담았던 김용언씨가 편집장을 맡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맨=박민규, 이장욱 등 인터뷰이 리스트가 희소가치가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악스트의 위험성은 1차 창작물, 즉 작품이 많이 읽히지 않는 상황에서 2차 창작물이 비평이든 서평이든 흥미를 끌기 어렵다는 점이다. 관객 100명이 본 영화의 리뷰를 아무리 재미있게 써도 흥미를 못 끄는 것과 같다. 역으로 미스테리아의 강점이 여기 있다. 추리소설 속 여성혐오, 범죄소설 속 음식 이야기, 이런 식으로 문학 외 장르를 끌어오는 기획력이 탁월하다. 6월호에 실린 연재 대담 제목은 ‘밀실 살인이 가능한 집의 건축을 의뢰하고 싶습니다’이다. 난 장르소설 팬이 아닌데도 이 글이 너무 보고 싶었다.

 

캣츠걸=미스테리아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작가 의식에 대한 욕망이 없다는 것이다. 백과사전식 구성에 서평은 담백하고 정보는 충실하다. 피로도가 없다.

 

여왕=그래서 뭐가 제일 잘 팔리나?

 

맨=말한 게 무색하게 악스트다. 악스트는 창간 이후 7,000~1만부 판매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하고, 미스테리아는 4,000~5,000부, 릿터는 2주만에 초판 5,000부가 매진되고 증쇄에 들어갔다고 한다.

 

캣츠걸=가격 메리트가 크다. 미스테리아가 1만2,000원, 릿터가 1만원인데 악스트는 2,900원이다. 원고료 제대로 주고 수지타산 맞춰 찍으면 내놓을 수 없는 가격이다. 베스트셀러 있는 출판사이기 때문에 낼 수 있는 문예지다. 문학계의 ‘통 큰 피자’라는 말도 나온다.

 

여왕=꼭 가격 때문일까? 신문은 800원인데 아무도 안 산다.(웃음) 기본적으로 문학지 독자는 한 줌이다. 순문학 팬이 순문학지 읽고, 장르문학 팬이 장르지 읽는다고 생각하면 악스트 판매율이 더 높은 건 당연하다.

 

맨=릿터는 그 한줌을 넓혀 보겠다는 거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의 인터뷰가 단적인 예다. SNS에서는 이미 “아이돌로 장사한다” 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왕=왜? 이런 시도는 훌륭하다. 연예인이 책 안 읽을 거란 편견 좀 버리자. 종현 인터뷰 보려고 샀다가 소설이랑 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출판계에 장사 안 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나.

 

슈렉=쓰는 당신, 읽는 당신으로 작가ㆍ독자 인터뷰를 나란히 싣고, 읽는 당신에 아이돌을 섭외한 의도는 좋다. 하지만 더 재미있으면 좋았을 뻔 했다. 뻔한 문답이 오간 대목이 조금 아쉬울 뿐 샤이니는 죄가 없다.

아이돌 입은 '문예지', 비정상인가요

민음사가 1일 창간한 ‘릿터’. 문예지로는 이례적으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인터뷰를 실어 화제가 됐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여왕=종현은 소설책 낸 작가이자 작사가이기도 한데, 이 사람을 문예지 인터뷰이로 채택했을 땐 당연히 기존 연예인 인터뷰와 달라야 한다.

 

맨=아이돌 인터뷰는 상징 같은 거고, 릿터가 독자층을 넓힐 수 있는 바탕은 커버 스토리와 에세이인 것 같다. 박해천이나 오혜진 등 읽히는 필자들을 섭외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글을 받았는데, 계간 창작과비평에 실리는 시론을 젊게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다. 문학에 대한 글보다 이런 발언이 훨씬 잘 팔리는 건 당연하다.

 

여왕=아이돌에도 업히고 시평에도 업히고…. 어쨌든 문학만으론 안 된다는 건가.

 

캣츠걸=일본 문예지가 편집자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면 한국 문예지 주인공은 평론가였다. 그들이 작가 섭외하고 스타로 만들기도 한다. 문예지에 비평이 없어진다는 건 단순히 문학에 대한 얘기를 줄이겠다는 게 아니라 문학을 말하는 주체를 바꾸겠다는 거다.

 

슈렉=그럼 비정상의 정상화로 봐야 할까?

 

맨=문단에선 우려가 있다. 주례사 비평이란 비난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평론가들은 문학을 깊이 있게 보는 전문가다. 비평의 책무가 대중으로 넘어가면 감성비평이나 인상비평이 주가 될 거고 그럼 조정래와 김진명 외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란 염려가 나오는 거다.

 

여왕=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간단하다. 좋은 작품이 없는 거다. 좋은 작품 없는데 좋은 비평은 써야겠고, 그러다 보니 부풀리고, 독자는 외면하고. 그렇게 슬럼화된다.

 

슈렉=그런데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장이 서야 하고, 그러려면 샤이니 인터뷰를 해야 하고, 그럼 릿터는 굉장히 잘 만든 건가.(웃음)

 

맨=미스테리아가 음식 얘기하는 건 구차하게 보지 않는데 릿터가 아이돌 인터뷰한 건 왜 구차하게 볼까?

 

슈렉=종현이 아니라 이적이었다면? 아이돌 인터뷰는 장삿속이고 다른 유명인은 아닌가?

 

여왕=종현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연예인이 작가보다 삶에 대한 통찰이 없을 거란 편견은 웃긴 거다. 이렇게 편견을 없애고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계속 돼야 한다. 목소리를 뺏긴 비평가들은 화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합당한 비평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도기라고 본다.

 

캣츠걸=악스트는 출판사가 해당 순문학 작가를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로 만든 것 같고, 이게 의외로 히트하면서 다른 출판사도‘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에서 이런 시도를 이어가는 것 같다.

 

슈렉=문학의 지평을 넓히려는 모든 안간힘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런 시도들이 쌓여서 문단을 자극하고 사람이 모이고 좋은 창작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마중물이 되면 가장 좋지 않겠나.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