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집값이 뭐라고… ‘일단 반대’ 에워싸인 청년주택

[비즈]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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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주택, 특수학교 설립 등 공공사업은 추진할 때마다 번번이 반대 목소리에 에워싸였다. 어렵게 후보지를 선정하고 부지를 마련해도 주민 반대에 멈추거나 지연되는 일이 빈번하다. 인천시가 미추홀구 인하대역 인근에서 추진하는 청년 창업 주거시설 조성 사업인 ‘드림촌’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10일 오전 360도 촬영 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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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통일로 777 일대 부지에 지어질 예정인 청년주택은 당초 2019년 착공이 목표였지만 아직까지 공사가 시작되지 못했다. 10일 오전 360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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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은평구 청년주택 부지 건너편 아파트 외벽에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울시는 청년주택 철회하라!’

서울 은평구 통일로 777 공터 건너편 아파트 단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3개 걸려 있다. 수백 미터 밖에서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아파트 15층 높이의 절반이 넘는 길이의 현수막에는 청년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현수막은 아파트 단지 앞 공터를 지목한다. 공터에는 28층 규모 건물 4개 동에 998세대 규모의 청년임대주택이 지어질 예정이다.


지난 7일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만난 주민 김모(62)씨는 "코 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조망권, 일조권이 침해 받을 수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집값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12일 “이 지역에는 세입자를 찾지 못해 비어 있는 집이 이미 많다”며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물량을 쏟아 내면 임대업자들에게도 안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주택은 청년 주거 안정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역세권에 주택을 지어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사업이다. 서울시를 비롯해 인천시와 경기도도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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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청년주택을 반대하며 주민들이 게시한 글. 이곳도 현재 부지만 조성됐을 뿐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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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울 영등포구청 인근 아파트 단지에 걸린 청년주택 반대 현수막. ‘영등포 이미지에 먹칠하는 5평짜리 임대아파트 결사 반대!’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청년주택은 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번번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받아 왔다. 주민들은 반대 이유로 주택가격 하락, 임대업자 피해, 교통난 가중, 지역 이미지 훼손, 주민과 협의 부족 등을 꼽는다. 관악구 신림역 인근 청년주택의 경우 300가구 규모 임대주택 건설 계획을 두고 지역 주민들이 ‘교통대란과 주차난’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영등포구청역 인근 주민들은 청년주택을 ‘빈민아파트’라 비하하는가 하면 ‘슬럼화로 불량 우범지역화 우려’라고 주장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주민의 반대 의견은 각종 민원으로 이어지고 민원처리로 사업이 진행되는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청년 창업 주거시설 조성을 위한 ‘드림촌’ 사업도 주민 반대로 지지부진한 것은 마찬가지다. 인천시는 미추홀구 인하대역 인근에 12층 규모로 창년 창업인 임대주택 200호와 창업지원시설을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이번 달 예정된 착공이 불투명한 상태다. 주민들은 ‘아파트 이미지 훼손’을 주요 이유로 들어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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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추진 당시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청년주택 부지 모습(붉은 선 안). 마찬가지로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4일 360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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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학교인 ‘여명학교’의 이전 예정 부지(붉은 선 안)도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공터로 남아있다. 4일 오전 360도 촬영

공터 주변이 주민들 반대로 에워싸인 곳은 청년주택 부지 뿐만 아니다. 탈북자 학교도 주민 반대로 이전 설립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북한 이탈 청소년이 다니는 대안학교 ‘여명학교’는 현재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의 건물 계약이 내년 2월 만료됨에 따라 서울시 협조를 얻어 은평구 진관동에 이전 부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서 작업이 중단된 상황이다.


학부모가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난 뒤에야 설립이 진행된 특수학교 서진학교는 공사과정에서도 민원이 이어져 개교가 두 차례 미뤄지기도 했다. 당초 개교는 지난해 6월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9월에서 올해 3월로 늦춰졌다.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주민 민원으로 공사 시간이 제한돼 공사 기간이 길어졌다”며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마주 보지 않도록 교문을 옮겨 달라’ ‘담을 쳐 달라’식의 민원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우려와 달리 임대주택 공급이나 공공시설이 들어서면 주택 가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또 적정 규모의 임대주택이 공급되면 기존 노후 주택가가 개선되고 교통망이 확충되는 등 기반 시설과 공공서비스 질이 향상되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기관의 사업 추진 방식도 문제로 지적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업을 추진하는 기관이 지역 주민에게 국민의 책무를 다하기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며 “사전에 주민 복지 향상과 편의 시설 확충 방안을 마련해야 생활환경 변화로 인한 기존 주민들의 주거권 침해를 상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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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등포 청년주택 반대 논란이 일던 당시 게시됐던 안내문과 항의 문구.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2020.02.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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