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된 초등학생에게 구상권 청구?” 비정한 보험사에 뿔난 소비자들

[이슈]by 한국일보

보험사 “교통사고 치료비 등 갚아라” 소송

논란 불거지자 취하… 불매 운동 움직임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아동 교통사고를 낼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민식이법’ 시행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앞으로 어린이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내가 가입한 보험 때문에 나중에 자식이 수천만원을 갚을 수도 있다고요?”


한 보험사가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초등학생에게 수천만원 규모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보험사는 소송을 취하했다고 밝힌 가운데 일각에선 불매운동 조짐도 보이고 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23일 자신의 유튜브 영상을 통해 해당 사건을 소개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A군(12)의 아버지는 2014년 6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베트남인 어머니는 수년 전 귀국 후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보험사는 아버지의 사망보험금(1억5,000만원) 중 6,000만원을 A군의 후견인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9,000만원은 A군의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6년째 보유하고 있다. A군은 현재 보육원과 할머니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보험사는 최근 초등학생인 A군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부친의 오토바이 사고 당시 상대 차량에 대한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보험사가 지불한 5,380만원 중 2,690만원을 돌려달란 내용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달 12일 아버지의 법정 상속인인 A군에게 보험사가 청구한 금액을 갚고, 못 갚을 시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이행권고결정을 내렸다. 소송 금액 역시 A군이 물도록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한 변호사는 “꽤나 큰 보험사가 보육원에서 지내는 2008년생 아이에게 아버지의 잘못을 책임지라는 게 맞나” 며 “법적으론 문제가 없더라도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 어느 보험사인지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을 접한 이들 역시 성토에 나섰다.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아가 된 초등학생에게 소송을 건 보험회사가 어딘지 밝혀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이 청원은 25일 기준 14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논란이 커지자 보험사 측은 관련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는 “법적인 소멸시효 문제로 소를 제기한 것”이라며 “유가족 대표와 자녀의 상속비율 범위 내 금액(6,000만원)에서 하향 조정된 금액으로 합의하고, 소는 취하했다”고 말했다. 다만 한 변호사는 “(보험사와) 합의한 적 없다”며 “(A군 측에서)500만원을 보내면 취하하기로 했었는데,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소멸시효가 10년이라 그 전에 또 (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송 취하로 논란은 일단락됐으나, 보험사가 보인 비정한 행동에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해당 보험사를 추측하면서 “자식이 피 볼까 무서워서 이 보험사는 이용하지 못하겠다”고 성토했다. 한 누리꾼(팡****)은 “아무리 기업이 이윤을 내기 위한 조직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것 아니냐”며 “치졸하다 못해 옹졸하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차원의 불매운동을 제안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 누리꾼(Ko****)은 이 보험사 가입하는 사람들은 사고 터지면 자기 가족들에게 빚만 남겨줄 사람으로 여겨도 되겠다”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2020.03.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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