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고… 위로하고… 작가들이 코로나를 기록하는 방법

[컬처]by 한국일보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코로나가 남긴 상처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기록하는 작가의 역할이 다시 한번 주목 받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고찰, 정부 대응을 향한 거침없는 비판,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세계 시민들에 대한 위로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한가로운 부르주아의 여유를 과시해 눈총을 받는 이도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는 각국 작가들의 글을 모아봤다.

폐쇄된 우한의 참상을 전하다…팡팡의 ‘우한일기’

한국일보

중국 작가 팡팡과 그가 우한시의 참상을 전한 SNS, 블로그 연재 글을 책으로 엮은 '우한일기'

2월 12일 : 구호를 외친다고 우한의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봉쇄 21일째. 조금 멍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오래 갇혀 있었나? 우리가 아직도 모여 앉아 웃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농담을 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떠올려볼 수 있을까? (..….) 늙어버린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한 임시 병원에 당 간부가 사찰을 나온 것으로 보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데, 그 중에는 공무원도 있고 의료진도 있으며 환자까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공산당이 없으면 새로운 중국도 없다’를 불렀다. (……) 당신들에게도 기본 상식이라는 게 있다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 않는가? 그게 아니라면, 인민들의 고통에는 끝이 있는가?”

코로나의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출신 작가 팡팡은 정부의 억압과 감시에 굴하지 않았다. 우한이 봉쇄된 직후인 1월 25일부터 3월 25일까지 우한에서 벌어진 일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우한 일기’를 블로그에 연재했다. 애초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와 위챗에 올린 글이 정부의 검열로 삭제되자 카이신이라는 블로그로 옮겨 연재를 이어갔다. 우한에서 자라 우한대 중문과를 졸업, 후베이성 작가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이번 ‘우한 일기’를 통해 중국의 문학적 양심으로 떠올랐다.


팡팡은 “이웃의 사촌 여동생이 죽었다. 지인의 동생도 죽었다. 친구의 부모와 부인도 죽었다. 그 친구도 죽었다. 이젠 울어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우한에서 벌어진 참상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중국 인민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자와 사상자를 만든 이들은 즉각 책임지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라”며 우한의 고통과 괴리되는 중국 정부와 공무원들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총 60편으로 마무리된 블로그 글의 영문판은 글로벌 출판사 하퍼콜린스를 통해 오는 8월 출간된다. 국내에서는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출간될 예정이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울로 조르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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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소설가 파올로 조르다노와 그가 쓴 '전염의 시대를 생각하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가려져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하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직시하게 하고, 현재에 부피를 다시 부여한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고 고통이 사라지면 깨달음도 증발한다. 지금 우리는 한창 전 세계적인 유행병을 치르고 있다. 대유행은 엑스선으로 우리 문명을 비추고 하나 둘 진실을 드러낸다. 바로 마음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전염의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져버릴 진실들이다.”

이탈리아의 유명 소설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2월 29일부터 봉쇄된 로마에서 자가격리 상태로 코로나19에 대한 단상을 적어 내려갔다. 입자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의 대표적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코로나 사망률을 기록한 고국의 상황을 객관적인 동시에 성찰적으로 분석한다. 조르다노가 한달 가량 쓴 글과 언론기고문은 최근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라는 책으로 묶여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26개국에서 동시 계약 및 출간됐다.


지금을 ‘전염의 시대’로 진단한 조르다노는 “감염이 내가 알고 있는 문명의 구조가 엉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날수를 세면서, 슬기로운 마음을 얻고,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며 코로나로 인한 공백의 시간을 새로운 성찰의 시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언한다.

현실과 괴리된 ‘부르주아 작가’는 외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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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간이 르몽드에 '격리일기'를 연재했다가 비판을 받은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 파리=AP뉴시스, 르몽드 캡처

모든 작가들이 팡팡이나 조르다노와 같은 건 아니다. 오히려 시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현실과 괴리되는 글로 독자에게 미움을 받는 작가들도 있다. 2016년 소설 ‘달콤한 노래’로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레일라 슬리마니가 대표적이다. 그는 코로나가 급속하게 퍼진 파리를 떠나 한적한 시골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썼던 글들이 문제가 됐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격리 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에서 슬리마니는 “아이들에겐 이것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도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고 썼다. “코로나19 전염병이 타인의 피부를 점점 덜 만지게 되는 경향을 악화시켰다”고도 했다. 이에 ‘부르주아 작가의 향락적 취미’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프랑스 작가 디안 뒤크레는 주간지 마리안 기고문에서 슬리마니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며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또 다른 프랑스의 인기 작가 마리 다리외세크 역시 ‘도망’을 선택했다. 정부의 이동제한령이 발효되기 직전 고향인 바스크 지방으로 다급히 피란을 떠난 것이다. 그가 쓴 피란기는 이동제한령으로 집에 갇혀 있는 프랑스인들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동제한령이 발령되기 전 파리와 리옹 등에 거주하는 부유층이 한적한 지방의 시골 마을과 관광지로 몰려 주민들의 불만 여론이 커진 상황이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국에 이동금지령이 내려진 때 별장으로 이동해 보낸 일상이 독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고 두 작가들의 ‘피란기’에 비판을 보탰다.

“국민 여러분 힘내세요” 응원 보내는 국내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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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광운, 조경규, 주호민(왼쪽부터) 작가의 코로나 극복을 위한 웹툰. 네이버웹툰, 다음웹툰 제공

국내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2월 28일부터 3월 7일까지 ‘다함께 이겨내요’라는 작가들의 릴레이웹툰 연재를 시작했다. 이말년, 주호민, 순끼를 비롯해 매일 10명씩 총 92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대표 캐릭터를 활용해 코로나 극복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다음웹툰 역시 지난달 초 조경규, 추혜연을 비롯한 54명의 작가들이 동참한 ‘전국민 응원캠페인’을 진행했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편집부와 작가들이 어려운 시기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을 함께 고민한 끝에, ‘함께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나가자’는 취지로 (릴레이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2020.04.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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