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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안의 팔색조 매력

by한국일보

베트남항공 기내에서 잡지를 보았다. 호이안 기사였다. 5년째 이곳에 터를 잡은 프랑스 포토그래퍼 레한(Rehahn)의 사진과 함께다.


샛노란 벽 앞으로 한가로이 자전거를 타는 논(원뿔형 베트남 모자)을 쓴 여인이었다. 침을 좀 흘렸다. 내가 응당 있어야 할 바로 그곳이란 끌림이었다. 직접 가보니, 그 벽 앞에 20명이 서 있었다. 관광의 성지가 아니라 사람 지옥이었다. 차디찬 배신감과 함께 시작한 호이안 여행. 그러나 3일 후 평가는 크게 바뀌었다. 떠나고 싶지 않아진다. 자연스레 장기 체류를 권하는 호이안의 시간대별 폭발적인 마력에 대하여.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그윽한 노랑이 매력적인 호이안 고(古)도시는 베트남 관광의 핫플레이스

AM 6:00 태양은 가득히, 시장이 가장 뜨거운 순간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캄남(Cam Nam) 다리에서 본 호이안. 어선이 결을 만든 강 위에서 잠을 깬다.

호이안은 이탈리아의 베니스와 비교된다. 호아이(Hoai) 강의 풍경이 그럴 법하나 더 비슷한 건 관광객의 범람이다. 사람 때문에 몹쓸 사진을 찍게 됨은 물론 걸을 때 한쪽 어깨는 남에게 맡겨야 할 때도 잦다. 새벽은 호이안의 풋풋한 '쌩얼'을 볼 수 있는 기적의 시간. 캄남 다리로 발을 들여놓는다. 밤낮의 카페와 패션숍에 혹사당한 시야가, 다리 사이를 물들이는 강의 일출 서사시에 충전된다. 지척에 호이안 재래시장도 있다. 현지인의 손아귀에 완벽히 통솔되는 호이안의 심장이다. 시장은 여행자가 현지의 냄새에 익숙해지는 도구가 되는 법. 어제도, 오늘도 그들의 일상은 웃고 활기차다. 가슴이 주책없이 뛴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새벽녘 현지인과의 직거래 속에서 하루 웃을 분량을 다 소비해버리는 듯하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이른 오후가 되면 행상인은 ‘투잡’을 뛴다. “photo?”, 부업으로 모델 역할을 한다.

AM 9:00 호이안 고(古)도시, 그윽한 노랑 컬러의 재림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현지인보다 외국인 수가 확실히 많은 호이안 고도시. 베트남 관광지 중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눈부시다’란 말은 태양과 함께한다. 호이안은 늘 눈부시다. 비가 오든 흐리든 마찬가지다. 노랑 벽의 압도적 색상 덕분이다. 왜 하필 노랑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프랑스 콜로니얼 건축 양식의 영향, 혹은 실내가 덜 더워지고 습도로 인한 이끼가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건축학적 이유, 노랑이 가진 우월성 혹은 권세에 기인했다는 설 등이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이곳 건축의 시간도 꽁꽁 묶였다. 15~19세기 동남아 무역항의 틀 그대로다. 당시 무역항으로서의 종말이 오늘날 관광지로서의 부활을 낳았다. 노랑 벽의 아름다움은 부인할 길 없다. 단, 이 오롯한 만남은 (단체 관광객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은) 오전에 허락된다. 노랑이 이리도 탐스러웠는지, 반 고흐보다 찬양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건물마다 노랑은 이끼의 존재를 인정한다. 시간의 더께와 함께.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노랑이란 얼마나 멋진가. 태양을 의미하니까. – 반 고흐.

PM 12:00 반미(Bahn Mi)의 위장 습격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이 심플한 샌드위치에 철학이 있다. 우주가 있다.

호이안은 식도락 여행지로도 썩 괜찮은 곳이다. 기라성 같은 음식점이 도처에 깔렸다. 영어로 곱게 소개하는 길거리 음식까지 합세하면 굶어 죽을 일도 없다. 반미는 쌀로 만든 바게트다. 호이안이 속한 중부 특유의 음식도 아니다. 빵 사이에 고기와 야채 등을 투척해 가판대에서 저렴하게 한 끼 때우는 용에 가깝다. 고로 반미 집이 트립어드바이저(여행 리뷰 사이트)에서 최상위권에 든다는 건 스캔들 감. 스캔들의 주인공은 ‘피 반미(Phi Bahn Mi)’다. 0.5평도 안 되는 가판대 오픈 키친에서 마술이 펼쳐진다. 채식주의자까지 고려한 11가지 메뉴는 오직 반미에만 충성을 바치고 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정통 반미와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살찐 특별 반미가 추천 메뉴. 바삭바삭한 바게트로부터 연결되는 다양한 식감이 입안에서 춤춘다. 자, 그런 의미에서 하나 더? 

주소 : 88 Thai Phien, Hoi An, Vietnam / 가격 : 1만5,000VND(베트남 동, 750원)~3만5,000VND(1,750원)대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숯으로 달군 베트남식 오븐에 구워진 바게트로 격을 달리한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맛으로만 승부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수줍은 실내.

PM 1:00 자전거로 맛보는 호이안의 이면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고도시와 다른 전원 풍경은 호이안의 야누스적 얼굴이다.

호이안 고도시에 집중된 여행에서 한눈 팔 시간. 올드타운의 북쪽, 동서남북 방향의 외곽 코스다. 호이안에서 상팔자는 개가 아닌 자전거 라이더다. 달리다가 쉬다가, 길은 취향에 따라 선택 폭이 넓다. 파도가 그립다면 안방(An Bang)이나 꾸아다이(Cua Dai) 해변으로, 소박한 감성마을에 기대고 싶으면 탄하(Thanh Ha) 도예마을로, 야자수 아래서 게을러지고 싶으면 워터 코코넛 농장으로. 본인 맘이다. 저질 체력도, 길치에게도 축복의 길이다. 대부분 평평한데다가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올 때쯤 큼직한 표지판이 안내하니까. 아스팔트와 흙 길을 다이내믹하게 넘나드는 리듬감이 청량하다. 생체 나이도 한결 낮춘 기분이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탄하 마을 여행은 도예 구경보다 강을 따라 흐르는 순박한 정서에 무게를 둘 것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유료 렌탈일 경우 한나절 2만~3만VND(1,000~3,000원)대. 호이안은 요상하게 일반 식당과 슈퍼의 음료 값이 거의 같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퉁차이(Thung Chai)라고 불리는 대나무 바구니 보트. 외곽 길의 동쪽 코코넛 농장이 에코 보트 투어의 요충지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대체로 거센 파도 앞에 수영이 아닌 파도타기로 체력이 축나는 안방 해변

PM 2:00 기름진 하이반 패스(Deo Hai Van) 드라이브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첩첩 산중 넘어 랑코 해변(Bien Lang Co). 하이반 패스는 도미노같은 풍경을 연결하는 열쇠다.

여행자의 단골 여행지인 후에(Hue)와 호이안. 그 사이 여러 항공사가 취항하는 큰 도시, 다낭이 끼어 있다. 다낭과 후에 사이엔 비밀이 있다. 멀미 나는 이동도 초유의 즐거움을 주는 코스, 하이반 패스다. 산에 기름장어처럼 구불구불 길을 여는 고갯길은 산과 바다, 하늘의 좋은 풍경은 몽땅 쏟아 부었다. 호이안으로부터 하이반 패스를 관통해 백지의 랑코 해변까지 돌진해볼 것. 되돌아오는 길엔 선물 세트도 있다. 다낭 근처의 마블 마운틴(Non Nuoc Ngu Hanh Son)이다. 불과 물, 나무, 금속, 나무를 관장하는 다섯 가지 봉우리가 저마다 몸매를 자랑하는 대리석 산이다. 특히 투이쏜(Thuy Son, 물 봉우리)은 미끄럽거나 험하거나, 구석구석 숨은 사찰 찾기의 미로다. 

팁 : 오토바이도, 차도 내 사전이 아니라면? 여행사에서 관할하는 후에-호이안을 연결하는 투어 버스를 고려한다. 하이반 패스, 마블 마운틴 등 4가지 코스에서 적절한 여행 시간을 내어준다. 편도 가격 11~13달러대.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풍경을 끼고 달리는 국도. 후에-다낭을 연결하는 일반 버스는 이 길 대신 1시간이 단축되는 고속도로 터널로 이동한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규모에 압도되는 투이쏜의 후엔콩 동굴(Dong Huyen Khong)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반통 동굴(Dong Van Thong)을 통해 알량한 쇠고리에 몸을 맡겨 정상으로 향하는 공포의 트레일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물 봉우리에서 서스펜스 트레일을 관통한 자에게 내보이는 전경이다.

PM 7:30 연등 아래 생맥주와 까오라우의 랑데부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호이안의 밤 풍경을 더욱 빛내주는 연등

호이안의 나이트라이프는 고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주말이 따로 없다(더 붐빌 뿐이다). 시끌벅적한 불장난 대신 야경과 조명에 기댄 다소 점잖은 밤이다. 검은 하늘을 수놓는 연등은 호이안 밤의 일등공신. 이에 질세라 호아이 강은 사랑의 서약으로 출렁인다. 조각배에 실린 예비부부가 강에 연등을 띄우거나 플래시 세례에 눈이 멀기 일쑤. 한 잔 생각이 아득해지면 안호이(An Hoi) 다리 앞 누옌훅추(Nguyen huc chu) 거리가 답이다. 무규칙 다국적 바의 행진이다. 해피 아워도 너그럽게 오후 9~10시까지, 말만 잘하면 자정까지도 이어진다. 출출해지면 나이트마켓 골목으로 쓱 들어간다. 호이안의 명물, 까오라우(Cao Lau) 한 그릇이 표적이다. 고도의 젓가락질을 요하는 면과 돼지고기를 접시 바닥의 소스와 싹싹 비벼 먹는 포족함. 망각의 밤은 내일을 기약한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안호이(An Hoi) 다리 근처 포유(For You) 레스토랑에선 베트남에서 실종된 500cc의 생맥주를 만날 수 있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돼지고기, 숙주, 콩나물, 반다(Ban Da, 쌀과자) 등이 얹혀진 까오라우. 누런 면이 퉁퉁하고 쫄깃하다.

‘고흐 옐로’에 빠지다… 베트남 호이

불야성을 이루는 호아이 강의 로맨스. 호이안(會安)을 풀이하자면 행복한 회동 장소라 했던가.


글. 강미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