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오케스트라 선율의 정체

[컬처]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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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는 인물 심리를 묘사하는 다양한 클래식 악기 선율이 등장한다. JTBC 제공

연일 20%대 시청률을 기록 중인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는 유독 클래식 선율이 자주 등장한다. 첼로 선율로 위기감을 끌어올리다 합창을 더해 대규모 오페라 서곡을 방불케 하는 인트로 주제곡부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깔리는 음악들까지.


‘부부의 세계’가 클래식을 많이 쓰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재력가, 의사, 회계사 등이 등장하는 상류 사회를 다뤄서만은 아니다. “클래식 오케스트라는 여러 악기가 모여 조화를 이뤄야 아름다운 소리를 내잖아요. 그처럼 부부도, 가족도 조화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죠.” ‘부부의 세계’ 음악을 책임진 강동윤 음악감독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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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선곡을 책임지고 있는 강동윤 음악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또 한가지 이유는 역시 드라마의 특성이다. 강 감독은 “영국 원작 드라마 ‘닥터 포스터’는 사건 전개 중심인데, ‘부부의 세계’는 등장인물들의 깊은 감정선을 끌어내는 장면이 많아 클래식 사용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부부의 세계’에 등장하는 음악은 대부분 강 감독이 직접 만들었다. 지난 25일 10화에서 지선우(김희애)가 “결혼이 뭘까 이혼은 또 뭐고… 헤어졌는데도 왜 이 질긴 고리가 끝나지 않는 걸까”라 한탄할 때 흐르던 피아노와 현악기 선율이나, 이야기가 긴박하게 진행될 때 자주 등장하는 ‘스피카토(현악기 활을 튕기며 끊어질 듯 짧고 빠르게 연주하는 주법)’ 선율 등이 대표적이다. “지선우와 이태오(박해준), 여다경(한소희)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사랑을 함축한다”는 게 강 감독의 설명이다. 낮은 현악기 소리로 시작해 고음 합창으로 끝나는 드라마 인트로 주제곡에 대해서도 “사람 감정의 밑바닥부터 차츰 끓어오르는 격정을 표현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인기에다 줄거리나 캐릭터가 빚어내는 긴장감을 절묘하게 표현해낸 덕일까.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부부의 세계’에 등장하는 곡들을 따라 연주하는 ‘커버 영상’들이 쉴새 없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강 감독의 음악은 삽입곡의 운명에 따라 아직 ‘무제(無題)’ 상태로 남아있다.


사실 강 감독은 부지런한 스타일 덕에 ‘개미’라고도 불리는, ‘태양의 후예’ ‘동백꽃 필 무렵’ 등 숱한 화제작의 곡을 만든 스타 음악감독이다. 물론 강 감독은 스스로를 “차이콥스키를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애호가”라며 낮췄다.

‘부부의 세계’에 기존 클래식 곡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지난 4일 방영된 4화에서 고예림(박선영)이 남편과 지선우의 불륜 사실을 알아채며 절망하는 장면, 그러니까 고상한 의사로만 살아온 지선우가 복수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장면에서는 광명 직전의 암흑을 다룬다고 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 부분이 등장했다. 강 감독은 “장송곡을 닮은 이 곡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자들에 대한 곡”이라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2020.05.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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