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공지능 안무 ‘비욘드 블랙’ … 사람보다 더 유연한 춤이었다

[컬처]by 한국일보

안무가 신창호 교수

무용수 움직임을 찍어 입력

AI 스스로 학습, 동작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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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현대무용 ‘비욘드 블랙’을 선보이는 신창호 안무가는 “기술에 친숙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가 단절돼 있다”며 “이번 작품이 예술을 통해 기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인공지능(AI)시대에 예술은, 그리고 창작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일까. 바흐 곡을, 렘브란트 그림을 AI에다 입력시켰더니 더 바흐 같은 곡을, 더 렘브란트 같은 그림을 만들어 내는 시대다. 그렇다면 춤은 어떨까. 아직은 AI가 아직 갖지 못한,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 말이다.


결론적으로, 가능하다. 이번 달 26, 27일 이틀간 온라인에 공개될 국립현대무용단 10주년 신작 ‘비욘드 블랙’이 그런 작품이다. AI를 무대로 끌어들인 이는 신창호(43ㆍ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안무가. ‘그래잉’ ‘맨 메이드’ ‘IT’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비욘드 블랙’ 제목 자체가 ‘미지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신 안무가는 “AI 안무는 국내에서 첫 시도일 것”이라며 웃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안무가보다는 공학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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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신작 ‘비욘드 블랙’ 안무에 기초 재료가 된 AI의 동작.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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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블랙’의 한 장면. AI가 인간의 춤 동작을 학습한 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안무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Aiden Hwangㆍ국립현대무용단 제공

AI로 안무를 하기 위해선 먼저 크로마키를 배경으로 무용수 8명의 움직임을 촬영, 그 데이터를 입력해야 한다. AI는 그 동작들을 스스로 학습해 응용 동작들을 만들어 낸다. 256분 분량을 집어넣었더니 일주일 만에 3배가량인 1,000분 분량이 나왔다.


만화 캐릭터 ‘졸라맨’처럼 점과 선으로 단순화한 AI가 만들어 낸 춤은 인간보다 훨씬 더 유연했다. 결과물을 보고 신 안무가도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AI는 기계니까 딱딱한 느낌의 무용수들을 섭외했거든요. 그게 기계적인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 제 선입관 자체가 틀린 거죠(웃음).”


신 안무가는 AI 동작을 토대로 다시 안무를 구성했다. 팔을 뻗고 다시 접는 식으로 인간의 움직임은 일정한 패턴이 있는 반면, AI의 안무는 불규칙적이어서다. 신 안무가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때보다 인간의 창의력이 훨씬 더 많이 쓰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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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 뒤편 스크린 속에서 AI가 춤을 추고 있다. ⓒAiden Hwangㆍ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무대에선 LED 패널, 프로젝션 맵핑까지 활용한다. 스크린 속에선 인간의 이미지를 입힌 AI가 춤을 추고, 그 앞에선 무용수들이 군무를 펼친다. 기술과 인간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신 안무가와 창작진은 AI 캐릭터에 ‘마디’라는 이름이 붙여줬다. 뼈와 뼈가 맞닿는 게 마디이듯, 인간과 AI가 맞닿는다는 의미다. “이번 무대가 예술적 감각을 통해 기술의 진보를 체험해 보고, 그 간격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비욘드 블랙’은 원래 4월 정식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공연으로 변경됐다. 그래서 준비는 더 복잡해졌다. 온라인 상으론 입체감이 살지 않아서 무용수를 여러 시점에서 촬영한 뒤 이를 영화처럼 편집해 보여준다. 그는 “스트리밍으로 훨씬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게 돼 기쁘기도 하지만, 영상 문법을 통해 재구성한 안무라 온전한 무대 공연은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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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들이 AI가 안무한 동작을 토대로 움직임을 재창조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Aiden Hwangㆍ국립현대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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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블랙’을 촬영하는 모습. 이 작품은 영상에 담겨 온라인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Aiden Hwangㆍ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신 안무가는 한국 대표 안무가 중 1인으로 꼽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 ‘무용계 아이돌’이라 불리는 LDP무용단 대표를 지냈다. 무용수로 영국, 스위스에서도 활동했다. 안무작 ‘노 코멘트’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수출됐다. 한국 현대무용 작품으로는 최초다.


신 안무가는 당분간 첨단기술을 접목한 안무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아직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2년 전 ‘맨 메이드’ 만들 때는 가상현실(VR)을 이용했어요. 헤드기어의 전선이 동선을 제약하는 게 참 거슬렸는데, 개막 이틀 전에 무선 헤드기어가 출시되더군요.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AI 안무 또한 AI 로봇이 하는 시대가 올지 모르죠. 기술이 예술의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을 때까지 이 작업을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아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2020.06.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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