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삼협 안에 협곡 또 협곡...가슴까지 뻥 뚫리는 '산소카페' 속으로

[여행]by 한국일보

후베이, 이창 싼샤댐과 우산 샤오싼

한국일보

중국 충칭 우산현의 샤오샤오싼샤(小小三峽)로 들어가는 관광유람선. 협곡은 점점 좁아지지만 물과 공기는 그만큼 청량하다.

후베이 서북부와 장강 중류에 위치한 도시 이창(宜昌)으로 간다. 강을 따라 올라가면 쓰촨으로 이어진다. 옛 이름은 삼국지 시대 3대 전투로 알려진 이릉(夷陵)이다. 기원전 초나라 시인 굴원과 중국 고대 4대 미인 왕소군의 고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장강의 협곡을 막아 만든 싼샤댐으로 유명하다. 상류부터 취탕샤(瞿塘峽), 우샤(巫峽), 시링샤(西陵峽)가 이어지는데 세 협곡을 묶어 싼샤(三峽)라 부른다. 이창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강 협곡 세 곳을 지나 충칭에 이르는 유람선의 출발지다.

한국일보

장강삼협 골짜기 마을인 싼샤런자로 가는 장강 유람선.

버스를 타고 시링샤 협곡 도로를 지나 1시간 만에 후진탄(胡金灘) 부두에 도착한다. 유람선은 30분가량 장강을 거슬러 올라 강 남쪽 부두에 정박한다. 싼샤런자(三峽人家)로 가는 입구다. 런자는 ‘사람 사는 마을’이란 뜻으로 산상런자(山上人家), 수이상런자(水上人家), 시벤런자(溪邊人家)가 있다. 각각 산촌, 어촌, 계곡에 만들어진 마을 풍광이다.

한국일보

덩잉샤 케이블카, 정상 부근에 정자가 보인다.

한국일보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법사의 모습과 닮은 덩잉스.

배에서 내리면 덩잉샤(燈影峽) 입구다. 풋풋한 강변 길을 걸어 케이블카를 탄다. 케이블카에서 보니 ‘산 위에 달맞이 정자’라는 뜻의 야오위에팅(邀月亭)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정상에 내리면 ‘장강제일석(長江第一石)’이라는 덩잉스(燈影石)가 있다. 소설 ‘서유기’에서 불경을 찾아 인도로 가는 당나라 승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현장법사가 여행 짐을 이고 가는 모습을 연상한 듯하다. 노을이 지면 무대에서 등불이 빛나는 모양이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협곡 이름도 이 바위 때문에 자연스레 지어졌다. 뛰어난 상상력이다.

한국일보

바왕궁 입구와 바왕궁 왕의 신위.

덩잉스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니 산상런자로 가는 팻말이 보인다. 골짜기에 관광용으로 지은 바왕궁(巴王宮)이 나타난다. 왕의 신위와 함께 있는 초상화가 낯설다. 파(巴)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중원 변경 지역인 후난과 후베이 서부, 충칭과 구이저우 일대에 살았던 투자족 왕국이었다. 투자(土家)는 본토, 본거지, 토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투자족은 자칭 비츠카(Bifzivkarㆍ畢茲卡)라고 하는데 ‘흙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란 뜻이다. 중국 56개 민족에 포함되며 인구도 800만명이 넘는다.

한국일보

시간여행을 하는 터널 스광쑤이다오의 지하 폭포, 덩잉둥.

한국일보

강변 공연장의 전통 악기 공연.

바왕궁 옆에 ‘시간여행을 하는 터널’이라는 스광쑤이다오(時光隧道)가 있다. 덩잉둥(燈影洞)을 그렇게 부른다. 1.5km에 이르는 카르스트 동굴로 조명에 비친 각양각색의 종유석을 관람할 수 있다. 동굴 속에 낙차 30m인 지하 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고 있다. 어두운 길을 천천히 내려가 출구를 벗어나니 바로 강변으로 연결된다.


강변에 관광객을 위한 공연장이 있다. 약 30분 정도 관람한다. 전통악기 연주와 함께 무용수가 등장해 선녀처럼 하늘거리며 춤을 춘다. 공연은 평범한 편이나 전통악기를 직접 보고 음색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18줄 현악기인 구정(古箏), 피리인 디즈(笛子), 태평소인 쒀나(嗩吶), 작은 징인 샤오뤄(小羅), 큰 북인 다구(大鼓), 생황인 다셩(大笙)이 보인다. 벤중(編鐘)을 망치로 때리며 내는 멜로디도 듣기 좋다.

한국일보

장강삼협의 나룻배

한국일보

룽진시 계곡으로 가는 길 안내판.

강변 공연장이 위치한 지역을 수이상런자라고 한다. 자그마한 샘이 하나 있는데 합마천(蛤蟆泉)이다. 개구리와 두꺼비 이름을 땄다. 당나라 시대 차성(茶聖)으로 알려진 육우(陸羽)는 중국 곳곳의 명천을 기록했다. 순위가 있을 리가 없지만 ‘천하제사천’이라 써 있어서 놀랐다. 지나친 억측이다.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천하제일천’이라 하지는 않았다. 강변에는 전쟁터로 진군할 듯한 자태로 배 몇 척이 서 있다. 큰 배는 장강을 떠다닐 수 있겠지만 작은 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협곡에서 장강으로 흐르는 계곡인 룽진시(龍進溪)로 거슬러 갈 수 있다. 계곡 쪽이 시벤런자다. 계곡과 강이 연결돼 있어 수량이 많고 어종도 다양하다.

한국일보

장강 어부가 전통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어망을 내리는 모습.

한국일보

장강 어부가 전통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어망을 올리는 모습.

계곡 길을 따라 올라간다. 몇 척의 나룻배가 고기잡이 준비를 하고 있다. 전통복장의 어부가 고기잡이 배에서 시범을 보인다. 긴 줄을 늘어뜨리니 어망이 물에 잠긴다. 배와 연결한 대나무를 중심축으로 끈을 당기니 그물이 사방으로 넓게 펼쳐져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대나무를 끌어당기니 지렛대 원리로 그물이 솟아오른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망에 물고기가 걸린 듯하다. 장강과 달리 옥처럼 맑고 연한 초록을 띤 물빛이다.

한국일보

관광객을 위한 전통 혼례 공연 중 노래를 부르는 신부.

한국일보

관광객을 위한 전통 혼례 공연에서 혼례를 주도하는 매파. 여성으로 분장한 남자다.

계곡에 목조건물이 하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아가씨 몇 명이 앉아 있다. 관광객을 위해 전통 혼례를 준비하고 있다. 관광객 중 남자 한 명을 정해 혼례를 치른다. 꽃무늬로 장식된 가마가 등장하고 징과 북, 피리로 분위기를 돋우며 흥을 낸다. 2층으로 올라간 총각이 전통복장으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검은 모자를 쓰고 하늘색과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와 어깨에 빨간 리본을 매달고 나타났다. 신부는 들러리와 함께 노래 한 곡을 부른 후, 신랑에게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어요?”라고 물어 본다. 신랑이 큰 소리로 그렇다고 외치면 혼례가 성사된다. 매파가 혼례 과정을 주도한다. 예쁘게 생긴 아주머니인 줄 알았는데 여장 남자라고 한다. 남자가 이다지 예뻐도 되는지 모르겠다.

소녀의 피눈물인가...'세계 최대' 자랑 속에 장강의 붉은 물빛

한국일보

싼샤댐이 보이는 탄쯔링.

강변으로 되돌아왔다. 강변도로를 따라 상류 쪽으로 약 30분 이동하면 싼샤댐이다. 댐을 한 바퀴 도는 관광 차량으로 이동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탄쯔링(壇子嶺) 공원에 오른다. 1997년 1차 물막이 공사를 마친 후 개방된 장소다. 공원에 야트막하게 솟은 부분이 마치 단지를 엎어 놓은 듯하다고 붙은 이름이다. 해발 262.48m로 부근에서 가장 높아 댐의 전체 모습이 잘 보인다.

한국일보

싼샤댐 전망대인 탄쯔링에 '세계 최대' 댐을 자랑하는 책 형태의 돌 안내문을 세워 놓았다.

돌로 만든 책이 펼쳐져 있다. 진짜 책처럼 접어지는 부분까지 부드럽게 잘 만들었다. 댐에 대해 자세히 적었다. 길이는 2,309.47m, 높이는 185m다. 저수량은 393억㎥, 최고 수위는 175m, 연간 평균 발전량은 847억킬로와트(KW)에 이른다. 온통 ‘세계 최대’라는 자랑이다. 정말 엄청난 기록인데 상상했던 것에 비해 커 보이지 않는 건 왜 그까? 싼샤댐은 ‘중국인의 오랜 세월에 걸친 꿈을 실현’한 대공사이며, ‘건설에 참여한 사람의 지혜와 노력의 산물’이라는 설명은 너무 상투적이다.

한국일보

또 다른 전망대인 185관징핑타이에서 본 싼샤댐.

공원을 나와 185 관징핑타이(觀景平臺)로 간다. 관광 차를 타자마자 금방 도착한다. 약 1km 떨어진 거리라 그냥 걸어도 좋았을 듯하다. 댐 높이인 185m에 맞춰 관망대를 쌓았다. 큰 차이는 아니어도 눈높이에서 가까이 보니 더욱더 생생하다. 길기도 참 길다. 볼수록 수량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인 소양강댐 저수량의 13배가 넘는다.

한국일보

쯔구이 공원에서 본 싼샤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한국일보

쯔구이 공원의 소녀 조각상. '영웅적 참여'를 기리기 위함이지만 왠지 애잔하다.

댐 위에 만들어진 도로를 달려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강을 건너면 쯔구이현(秭歸縣)이다. 아담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댐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의 조각상을 세웠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영웅적’으로 참여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철모와 안경을 쓴 소녀상이 유난히 눈에 밟힌다. 소녀상 뒤로 끝도 없이 길게 강을 가로막고 있는 댐이 보인다. 수몰된 지역에서 건져 올린 기상천외한 암석도 전시하고 있다.

한국일보

제류공원에 싼샤댐 건설 당시 사용한 장비를 전시해 놓았다. 꽃이 예쁜 공원인데 분위기가 살벌하다.

한국일보

제류공원 전시관에 싼샤댐 건설 당시의 공사 사진이 전시돼 있다.

물막이 공사를 기념하는 제류(截流)공원으로 간다. 거대한 공사를 기념하는 상징물과 장비를 전시해 놓았다. 기념관 안에는 공사 현장 사진이 수두룩하다. 트럭이 오가며 강을 막고 있는 무채색의 사진을 본다. 건설 현장을 보니 조금 답답해진다. 깔끔하게 조성한 공원이다. 도랑도 흐르고 꽃도 예쁘지만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비가 곳곳에 진열돼 있어서 숨이 막힌다.

한국일보

물막이 공사를 기념하는 제류공원에서 본 싼샤댐

공원은 댐 바로 아래에 위치해 방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파란 하늘과 누런 장강 사이에 거대한 댐이 가로 막혀 있다. 마침 방류가 시작되고 있다. 그저 물이건만 그냥 물로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노동으로 물줄기를 막고 댐을 세웠다. 하얗게 솟아나는 물줄기는 ‘세계 최대’ 용량의 전기를 생산하고 하류로 흘러간다. 장강의 물빛이 자꾸 붉은 빛을 띠고 있다. 피눈물처럼 보인다. 장강 일대를 무대로 살았던 투자족과 댐 건설 노동자의 모습이 흘러가는 듯하다.

삼협, 소삼협, 소소삼협...끝없는 협곡 속으로

이창에서 시링샤를 지나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우샤를 끼고 있는 우산(巫山)에 다다른다. 우산은 충칭 동부에 위치한 현이다. 이창에서 우산까지 국도로 가면 3시간 30분이 걸린다. 우산 항구의 부두인 주마터우(九碼頭)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대교(大橋)가 보인다. 다리 쪽으로 가면 우샤, 왼쪽 방향은 다닝후(大寧湖)다. 이 넓은 공간으로 흘러 내려오는 다닝허(大寧河)를 따라 오르면 샤오싼샤(小三峽)가 있다.

한국일보

충칭 우산 항구의 주마터우 부두. 멀리 장강대교가 보인다

한국일보

샤오싼샤(소삼협)가 있는 다닝허.

한국일보

샤오싼샤 룽먼샤(용문협곡)의 잔도.

멀리 한 바퀴 돌아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배가 출발한다. 샤오싼샤로 들어서면 황토는 완전 사라지고 옥으로 빚은 듯한 푸른 강물이 나타난다. 먼저 룽먼샤(龍門峽)를 지난다. 강물을 헤치고 쾌속정이 지나간다. 댐이 들어서자 수위가 높아졌다. 옛날 잔도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 배는 협곡 구석구석을 훑으며 서행한다. 갑판 위에 서니 천연의 협곡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곳은 2019년 ‘천연산소까페(天然氧吧)’에 선정됐다. 2016년부터 중국기상복무협회에서 산소가 풍부한 관광지를 선정한다. 지금까지 115개 도시가 영예를 차지했다. 대부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동네다.

한국일보

샤오샤오싼샤(소소삼협) 관광유람선에 동승한 해설사.

협곡을 굽이굽이 돌아 서서히 바우샤(巴霧峽)를 지난다. 디추이샤(滴翠峽)를 지나 배가 우회전한다. 벌써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전에 비해 훨씬 좁은 마두허(馬渡河)로 들어선다. 벗겨내면 더 작아지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새로운 협곡이 등장한다. 크기는 작아지지만 모양새나 분위기는 사뭇 비슷하다. 협곡 이름만 다를 뿐이다. 싼샤에서 샤오싼샤, 다시 샤오샤오싼샤(小小三峽)가 등장한다. 먼저 싼청샤(三撐峽)를 지난다. 친왕샤(秦王峽)와 창탄샤(長灘峽)를 합쳐 샤오샤오싼샤라 한다. 점점 좁아지는 협곡을 따라 간이 선착장에 내린다. 40여명이 정원인 배로 옮겨 탄다. 원시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듯 청아하고 황홀하다. 전통 옷을 입은 해설사는 풍광을 설명하고 토속적인 민가를 부른다.

한국일보

샤오샤오싼샤 뱃사공 체험. 전통 비옷이 한국의 도롱이와 비슷하다.

한국일보

샤오샤오싼샤의 동굴 입구에 놓인 관.

해설사는 입고 있던 비옷을 벗는다. 나뭇잎과 대나무 줄기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가볍다. 옷을 입고 뱃사공처럼 서서 사진을 찍으라고 권다.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해주는 체험 상품으로 제격이다. 절벽에 뻥 뚫린 동굴이 많다. 자세히 보니 관이 보인다. 나무나 철로 만든 관이다. 중국 남부 일대에 많이 나타나는 장례 문화로 현관(懸棺)이라 부른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무덤을 쓰는 장례는 기원전부터 시작됐다고 전한다. 그 기원과 유래는 다양하다. 멀리 전쟁에 나섰다가 사망하면 시신을 관에 넣어 임시로 보관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이송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가 하나의 관례로 굳어졌다는 의견이 있다. 그럴듯하다.

한국일보

샤오싼샤의 옥빛 물길. 산소가 묻어 있는 듯 청량하다.

심호흡을 하면 코가 뻥 뚫리고 가슴이 후련하다. 눈부시게 산뜻한 협곡 관람이다. 무엇보다 ‘산소카페’에서 맛본 무색무취의 공기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고가의 상품이다. 다시 러시아 인형을 합체하는 과정처럼 우산 항구로 되돌아 나온다. 들어갈 때는 앞만 보느라 몰랐는데 뱃길이 따라오고 있다. 푸른 강물에 일렁이며 수를 놓은 듯하다. 마치 산소가 묻어 있는 듯 착각이 든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2020.09.17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