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강진의 알짜 쉼터는 여기 다 있다

[여행]by 한국일보

월출산 아래 녹색 쉼터, 강진 성전면

한국일보

월출산 남측 자락의 강진 녹차밭. 수확을 끝내고 가지런히 머리를 자른 차나무에 다시 파릇파릇 새순이 돋았다. 달빛한옥마을에서 녹차밭, 백운동정원, 월남사지까지 돌아오는 길은 온몸에 생기를 불어 넣는 녹색 산책 코스다.

월출산 하면 으레 영암이 수식어처럼 앞에 붙는다. 영암 어디서건 우람한 바위산 능선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가수 하춘화의 ‘영암아리랑’도 이런 인식을 굳히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면 처음 만나는 지명이 성전면 월남리다. 월출산의 남쪽에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다. 마을회관 앞에 ‘애향가’ 노래비가 있다. ‘월출산 기슭에 자리 잡은 터, 경포대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 대대로 빛난 전통 이어받으며 살아온 곳, 여기가 정든 내 고향’. 노랫말에 이름난 산과 강줄기의 정기가 꼭 포함되는 교가와 비슷하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넓지 않은 지역에 강진의 알짜배기 쉼터가 몰려 있다.

비움으로 충만한, 월남사지와 무위사

무위사는 강진의 대표 사찰이다. 월남마을에서 약 3km 떨어져 있다. 불가에서 무위(無爲)는 ‘생멸(生滅)의 변화를 떠난 경지’를 의미한다. 알 듯 모를 듯 철학적이다. 일상에서 무위는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음’이다. 요즘 여행 트렌드라 일컫는 체험이니 놀이니 하는 것조차 번거롭다. 세상사 어지러운 일들 모두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그 이상 뭐가 필요할까.

한국일보

무위사는 명성에 비해 소박하다. 일주문에서 극락전에 이르는 길이 일직선으로 연결돼 있다.

한국일보

무위사 극락보전은 단청 없이 말쑥하다. 전각이 많지 않고 규모도 작은 편이다.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 원효대사가 창건한 관음사가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400년 고찰치고는 소박하고 수수하다. 큰 사찰은 보통 일주문에서 본당까지 긴 계곡을 끼고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무위사는 일주문에서 본당까지 일직선으로 보인다. 전각이 많지도 않다. 무위사가 수수하다 하는 것은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때문이다. 다른 건물은 단청으로 곱게 치장했지만, 극락보전만은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다. 내부는 기둥 없이 널찍하지만 팔작지붕 형식의 건물 규모는 크지 않다. 세종 12년(1430)에 건립된 이 건물은 그럼에도 벽화 부자다. 법당 내부에 모두 31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1955년 보수공사를 하면서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만 그 자리에 남았다. 나머지 불화는 현재 바로 옆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한국일보

무위사 극락보전 처마 밑으로 빗물이 떨어진다. 건물에 단청이 없어 주변의 녹음이 한층 선명하다.

극락보전과 절 마당의 선각대사탑비(보물 제507호) 정도를 빼면 딱히 봐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경내를 지키고 선 팽나무의 옹이가 마치 부처님 형상이라는 것이 천년 고찰의 자랑일 정도다. 무위사를 찾은 3일 때마침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월에 빛이 바랜 극락보전 서까래 끝 처마 아래로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여행객의 마음도 추적추적 비에 젖는다.


텅 비어 있는 것으로 치면 월남마을의 폐사지, 월남사지가 한 수 위다. 월출산 바위 능선을 배경으로 평지에 세워진 월남사 전각은 조선 중기에 모두 사라지고, 현재 빈 터에 삼층석탑(보물 제298호)과 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만 남아 있다. 월남사지삼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으로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특히 1층 몸돌이 길쭉해 단순하면서도 늘씬하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의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슷하다.

한국일보

월남사지 삼층석탑 뒤로 월출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한국일보

월남사지 삼층석탑 뒤로 월출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탑 하나 달랑 남았지만 빈 공간을 꽉 채운 듯하다.

요즘처럼 주위가 온통 푸르름에 둘러싸이면 홀로 검붉은 탑신 돌기둥이 더 돋보인다. 탑의 머리 부분 뒤로는 월출산의 기암괴석이 걸려 조화를 이룬다. 이쯤 되면 월출산에 절이 안긴 게 아니라, 사찰이 월출산을 품은 격이다. 텅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찼다는 건 바로 월남사지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현재 주변 정비공사가 마무리 중이어서 다소 어수선하지만 삼층석탑의 품격은 변함이 없다.


바로 옆 보호각에 안치된 진각국사비도 정교함에서 빠지지 않는다. 비석의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닳았지만, 받침돌인 거북 조각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여의주를 문 머리와 생동감 넘치는 발가락, 육각 문양 등껍질까지 선명하다. 백미는 꼬리 조각이다. 힘차게 위로 올려진 꼬리의 안쪽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했으니 당대 조각가의 눈썰미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진각국사 혜심은 고려 고종 21년(1234)에 입적한 승려다. 비석 역시 그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일보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고려 말기 작품이지만 받침돌의 거북 문양은 최근에 조각한 듯 선명하다.

한국일보

월남사지 진각국사비의 뒷모습. 위로 치켜 든 꼬리의 안쪽 문양까지 생생하게 표현했다.

새순 돋은 녹차밭, 숨겨진 녹색 쉼터 백운동정원

월남사지 삼층석탑 뒤편으로 어렴풋이 초록 차밭이 보인다. 이곳을 비롯해 월출산 남측 자락 곳곳에 드넓은 차밭이 분포돼 있다. 1982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조성한 33만m²(약 10만평) 녹차밭이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자리 잡았다. 봄 수확이 끝나고 가지런히 이발을 한 자리에 새순이 돋아나 차밭은 다시 초록으로 가득하다. 차밭을 관리하기 위한 농로는 시멘트로 포장돼 있어 비가 내리는 날에도 녹색 산책을 즐기기에 불편함이 없다.

한국일보

월출산 남측 산기슭 곳곳에 넓은 녹차밭이 조성돼 있다.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따라 녹색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한국일보

월출산 남측 자락의 녹차밭은 강진을 대표하는 자연 경관이다. 수확을 마친 차밭에 다시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았다.

월출산 남측 자락은 대규모 녹차밭을 조성하기 훨씬 전인 고려시대부터 차를 재배해 온 곳이자 한국 차문화를 이끌어 온 지역이다. 월남사지 옆에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이 있다. 이한영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국내 최초로 ‘백운옥판차’라는 차 상표를 만든 인물이다. 백운옥판차의 유래는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에 닿아 있다. 월출산을 유람한 다산은 이 고을의 제자들과 다신계(茶信契)를 맺었다. 제자들은 봄이 되면 월출산에서 수확한 차를 다산에게 보냈는데, 그 인연은 후대에까지 100년 넘게 이어졌다. 이한영은 다신계의 막내 제자 이시헌의 후손이다.

한국일보

국내 최초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왼쪽). 원래 목판은 금릉월산차였다고 한다. 월남사지 인근 이한영전통차문화원에서 맛볼 수 있다.

정약용이 봄마다 기다려 온 ‘백운옥판차’의 원래 이름은 ‘금릉월산차’였는데 상표가 새겨진 목판을 영암의 누군가가 가져가서 돌려받지 못하는 바람에 새로 지은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한영의 고손녀이자 전통차문화원 원장인 이현정씨가 들려준 얘기다.


차밭 한가운데 얕은 동산에 ‘백운동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원이라 하지만 집 뜰에 조성한 꽃밭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요샛말로 꾸민 듯 꾸미지 않은(꾸안꾸) 숲 또는 계곡이라 불러도 될 수준이다. 백운동정원은 원주 이씨 입향조 이담로(1627∼1701)가 조성한 원림(園林)이다. 집터에 딸린 숲이라는 의미다. 동백나무, 후박나무를 비롯한 아열대 상록수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계곡을 뒤덮고 있다. 원시림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한국일보

백운동정원 산책로는 어느 곳이나 그늘 짙은 녹색 길이다. 상록활엽수가 빼곡히 하늘을 가리고 있다.

한국일보

백운동정원 담장 옆 대숲도 역시 녹음으로 가득하다.

어두컴컴한 그늘 아래 월출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엔 정약용이 홍옥폭(紅玉瀑), 풍단(楓壇), 창하벽(蒼霞壁) 등으로 이름 붙인 ‘백운동 12승경’이 표시돼 있다. 그중에서도 1경은 월출산 서남쪽 봉우리 이름을 딴 옥판봉(玉版峰)이다.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선녀가 놀다 갔다는 정선대 (停仙臺)에서 멀리 보이는 월출산 바위 능선이다. 12승경은 다산이 월출산을 등반한 후 이 집에서 하룻밤 묵어간 인연의 징표다. 백운옥차의 시초가 된 다신계의 막내 제자 이시헌은 이 집안 후손으로 당시 열 살이었다고 한다.

한국일보

백운동정원의 본채인 취미선방도 짙은 녹음으로 둘러싸여 비밀의 정원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일보

백운동정원에서 보이는 월출산 옥판봉 바위 능선. 다산 정약용은 백운동 12승경 중 이 풍광을 으뜸으로 꼽았다.

백운동정원의 본채이자 다산이 머물렀던 취미선방(翠微禪房)에는 지금도 이담로의 13세손이 뜰을 가꾸며 생활하고 있다. 초가인 취미선방과 기와집인 백운유거(白雲幽居) 그리고 이를 둘러싼 낮은 담장을 제외하면 백운동정원의 나머지 공간은 전부 자연이 주인이다. 대숲, 동백숲, 솔숲 어디를 걸어도 혈관까지 푸르게 물들일 것 같은 녹색 산책로다. 백운동정원을 벗어나면 다시 초록이 가득한 녹차밭이 펼쳐진다.

달빛한옥마을에서 마음 확 ‘푸소(FUSO)!’

백운동정원, 월출산 다원, 월남사지에서 가까운 곳에 달빛한옥마을이 있다. 10여년 전 조성한 한옥 전원주택 단지로 30여가구 중 절반가량이 한옥 숙박을 운영한다. 여락재, 초연재, 별바라기 등 가정마다 특색 있는 음식과 정성스러운 서비스를 선보인다. 통합 예약시스템이 없어 업소별로 예약해야 하는 점은 불편하다.

한국일보

월출산 자락 성전면의 강진달빛한옥마을. 30여가구 중 절반가량이 한옥 숙소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일보

달빛한옥마을은 집집마다 주인의 취향대로 정원과 내부를 꾸몄다. 한옥에 관심이 있다면 마을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국일보

달빛한옥마을의 한옥 숙소는 집집마다 주인장의 취향이 가득 배어 있다. '여락재' 거실은 TV 대신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국일보

달빛한옥마을 숙소는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여락재'의 아침 식사 후 다과상 차림.

한국일보

강진의 생활 민박 브랜드인 푸소. 영어 약자로 지었지만 '근심과 스트레스 확 푸소!'라 말하면 뜻이 더 명료해진다.

이 중 보금자리와 해로당 두 농가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후원하는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숙소로 운영한다. 일주일 살기는 6박 7일간 강진 군내의 ‘푸소’ 농가에 묵으면서 여행의 즐거움과 일상의 행복을 누려 보는 생활관광 프로그램이다. 비용은 6박과 아침 저녁 열두 끼를 포함해 1인 15만원이며, 2인부터 이용할 수 있다.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푸소(FUSO)는 ‘감성 충만, 스트레스 내려놓기(Feeling Up, Stress Off)’라는 영어 약자 조합이지만, 진한 전라도 억양으로 ‘마음 확 푸소!’라고 하면 느낌이 한층 또렷하게 전달된다.


강진=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20.07.13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