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장의사들이 치어리딩을 하는 이유

[라이프]by 한국일보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치어리딩 동아리 '치엘로'


한국일보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치어리딩 동아리 '치엘로' 단원들이 지난 달 경기 용인시 한 호스피스병원에서 공연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 줄 두 번째 단원이 부단장인 정지원씨고, 세 번째 줄 첫 번째 단원이 단장인 김동현씨. 김씨 제공

지난달 경기 용인시의 한 호스피스병원. 주로 말기 암 환자들이 입원한 이곳에 남성 듀오 노라조의 '사랑가'가 울려 퍼졌다. 경쾌한 기타 소리는 청년 9명의 시원하게 쭉쭉 뻗는 춤사위를 타고 더욱 질주했다. 흥이 그야말로 폭죽처럼 터졌다.


적막했던 병원을 뒤흔들어 놓은 이들은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치어리딩 동아리 '치엘로(cieloㆍ하늘)' 단원들이다. 예비 장의사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홀로 선 이들과 뜨겁게 함께 한다. 삶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축복과 응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하는 일이다.


치어리딩과 예비 장의사, 도통 접점을 찾기 어려운 두 조합이 만나 내는 울림은 크다. 휠체어에 앉아 공연을 보던 한 어르신의 주름진 입가엔 웃음이 고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전파를 막기 위해 치엘로의 공연은 병원 건물 밖에서 이뤄졌고, 20여 환자들은 로비 유리벽을 통해 치어리딩을 지켜봤다.


"장례지도학과 학생들이 치어리딩 공연을 한다고 하면 환자나 가족분들이 혹시 언짢아하시지 않을까 처음엔 걱정이 컸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하고 나니 환자분들이 오히려 즐거워해 주시고 고맙다고 인사도 건네 주시더라고요." 9일 전화로 만난 치엘로 단장 김동현(23)씨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내년에도 호스피스병원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치엘로 단원들은 낮엔 하얀 가운을 입고 염습 등 장례 절차를 배운다. 예비 장의사들의 강의실엔 관, 삼베, 한지 등 장례용품이 가득하다. 치엘로 부단장인 정지원(22)씨는 주변에서 극구 말렸지만, 죽음과 함께 사는 삶을 택했다. 정씨는 "누군가 삶의 마지막 과정을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뜻깊음과 호기심 그리고 주변에서 '여자인 네가 할 수 있겠냐'라는 차가운 시선에 대한 반발로 이 과를 택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부 학생은 장례식장에서 훼손된 시신을 보고 충격을 받아 첫 실습을 포기하고, 아예 다른 길을 찾기도 한다.


마음에 굳은살이 채 배기지 않은 예비 장의사들에게 무엇보다 힘든 건 유족의 슬픔을 마주하는 일. 김씨는 "군에서 시신을 처리하는 보직을 맡았다"며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보낸 부모님이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이 일에 대한 사명감도 생겼다"고 옛 이야기를 꺼냈다.


엄숙함에 짓눌려 사는 장의사들에겐 무거운 마음의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기 위해 탈출구가 필요하다. 예비 장의사인 치엘로 단원들은 장의 수업을 끝내면 곧장 학교 지하 주차장으로 가 치어리딩을 시작한다. 치어리딩은 누군가를 응원하는 몸짓이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다독이고 용기를 불어 넣는 '주문'이다. 그래서 치엘로 단원들은 더욱 똘똘 뭉쳐 치어리딩을 하고, 같은 꿈을 꾼다. 죽음을 끝이 아닌 과정으로, 눈물로 슬퍼하기보다 응원하는 '유쾌한 장의사'다. 10일 방송될 KBS1 '다큐인사이트'에선 이 학생들의 특별한 일상을 볼 수 있다.


"죽음이 다가와 호스피스 병원 임종방에서 숨을 거둔 분들에겐 '너무 고생하셨다'는 말을 해줘요. 죽음이 물론 슬픈일이지만 누군가에겐 또 다른 안식으로 가는 길이잖아요. 전 마냥 슬퍼만하지 않고,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장의사가 되고 싶어요."(정씨)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2020.12.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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