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 섬마을 스님의 애틋한 노둣돌, 보랏빛 오작교가 되다

[여행]by 한국일보

<90> 신안 안좌면 박지도ㆍ반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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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안좌면 두리마을과 박지도를 잇는 '퍼플교'가 은은한 보랏빛 조명을 밝히고 있다. 두리마을과 박지도, 반월도는 3개의 보라색 해상 인도교로 연결돼 있다.

모름지기 섬이라면 애틋하고 그리운 전설 하나쯤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지척에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섬이 있다. 달 밝은 밤이면 큰 섬 암자의 비구니가 울리는 목탁 소리가 낭랑하게 갯벌을 떠돌고, 바다안개가 어른거리는 새벽이면 작은 섬 승려의 예불 소리가 어렴풋이 수면에 번지곤 했다. 목청껏 소리 지르면 들릴 수도 있는 거리,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만큼 서로를 향한 그리움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이심전심, 큰 섬에 사는 비구니는 작은 섬을 향해 노둣돌을 놓기 시작했다. 작은 섬의 스님도 바닷물이 빠질 때마다 열심히 징검다리를 놓았다. 마침내 둘은 바다 한가운데서 만났다. 반가움이 컸던 걸까, 노동에 너무 집중해 물때를 잊어버린 때문일까. 때마침 급격하게 차오른 바닷물은 돌무더기 위에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을 무심하게 삼키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승려의 인연은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불륜으로 전개되지 않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섬 주민을 위한 헌신이자 보시라 할 수도 있겠다. 신안 안좌면 박지도와 반월도 두 섬을 잇는 징검다리, ‘중노두’에 얽힌 전설이다. 두 중이 놓은 노둣돌은 세월이 흐르며 갯벌에 묻혀 흔적이 희미해졌고, 이제 징검다리 대신 보랏빛 나무다리가 두 섬을 잇고 있다.

3개의 퍼플교, 사계절 보랏빛 향기

박지도와 반월도는 신안 안좌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안좌도 남쪽 두리마을이 가까워지면 주변에 서서히 보랏빛이 감돈다. 마을로 들어서면 담장도 지붕도, 하다 못해 버스정류소와 쓰레기 수거함까지 보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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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안좌면 두리마을과 박지도를 잇는 퍼플교. 왼쪽이 박지도 삼각형 모양의 섬이 반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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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의 상징 조형물. 섬이 둥그런 박 모양이어서 박지도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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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는 보라색 섬이다. 쓰레기 수거함과 해안 산책로도 보라색이다.

마을 남쪽 끝에서 좌우로 보이는 섬이 박지도와 반월도다. 2개 섬과 두리마을을 잇는 3개의 인도교가 바다 위에 설치돼 있다. 두리마을과 반월도 사이 다리는 ‘문브릿지’라는 별도의 명칭이 있지만 모두 보랏빛 ‘퍼플교’다. 3개의 다리 길이만 약 1.9㎞, 섬을 경유해 한 바퀴 돌면 3㎞가 넘는 바다 산책길이다. 퍼플교는 애초 ‘소망의 다리’라 불렸다. ‘걸어서 섬을 건너는 게 소원’이라는 박지도 주민 김매금 할머니의 간절함이 담긴 이름이었다. 할머니의 소망대로 2007년 목교가 놓였고, 두 섬에 보라색 꽃과 농작물을 심으면서 퍼플교로 불리게 된다.


퍼플(purple)은 빨강과 파랑이 반반 섞인 색깔이다. 흔히 보라색으로 번역하지만 붉은 기운이 감도는 자주색에 가깝다. 파랑이 더해질수록 바이올렛(violet), 즉 보라색이다. ‘퍼플교’보다는 ‘보라다리’가 낫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자주교’나 ‘바이올렛교’에 비하면 어감도 그렇고 부르기에도 한결 편하다. 보라는 화려함과 우아함을 상징하는 고급스러운 색깔이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색이어서 유럽의 귀족들도 보라색 옷을 즐겨 입었다. 일상에서 패션으로 소화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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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 해안에 보라색 꽃은 지고 진한 자주색 국화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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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의 라벤더 정원. 꽃이 없어도 겨울바람 끝에 이따금씩 라벤더 향이 감지된다.

주민들도 처음에는 보라색 마을, 보라색 섬으로 가꾸는 것에 조금은 주저했다고 한다. 한국 전통 색상인 오방색(청ㆍ백ㆍ적ㆍ흑ㆍ황) 중 하나라면 모를까, 아무리 특색 있게 꾸민다 해도 보라는 너무 튀는 색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섬에서 고구마와 자색 감자를 많이 재배해 왔고, 도라지와 꿀풀 꽃도 흔했으니 자주색이나 보라색이 영 낯설지는 않았다. 요즘은 자색 뿌리를 자랑하는 양파와 콜라비까지 재배하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익숙한 색이다. 두 섬을 색깔 있는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금은 라일락과 박태기, 자목련, 수국, 라벤더, 아스타국화, 수레국화 등을 심어 사계절 보랏빛 향기가 가득한 섬으로 변신했다.

박지도는 소를 잡고, 반월도는 꿩을 잡고

두 섬 여행은 보통 두리마을에서 첫 번째 다리를 건너 박지도로 간 다음, 두 번째 다리로 반월도로 이동해 마지막 다리를 건너 다시 두리마을로 돌아오는 코스로 잡는다. 입장료는 3,000원, 보라색 복장이면 무료다.


박지도는 기록상 1700년경 김해 김씨 김성택이 이주하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진도에서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건너왔기 때문에, 혹은 섬 모양이 둥그런 박을 닮아서 박지도라 부른다고 말한다. 도로를 겸한 해안 산책로는 약 2㎞,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자전거를 대여(1시간 5,000원)해도 좋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전동셔틀(3,000원)을 타면 섬마을 이야기를 속속들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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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산책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오는 박지도와 반월도의 전동셔틀도 보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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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가구가 남아 있는 박지도 마을 지붕도 모두 보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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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박지도 마을호텔과 식당. 섬의 유일한 숙소이자 식당이다.

박지도에 도착하면 섬의 상징 표주박 조형물과 자전거 대여소가 보이고, 바로 앞에 보라색 전동셔틀이 대기 중이다. 전동셔틀은 섬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온다. 마을로 이동하는 해변 언덕배기에 지난 가을 섬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국화가 아직도 일부 남아 있다. 진한 자줏빛 꽃송이 너머로 보라색 퍼플교가 대비된다.


마을은 선착장 반대편에 있다. 낮은 돌담과 보랏빛 지붕의 오래된 건물이 남향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 축대만 남은 집은 서양화가 김환기(1913~1974) 집안의 농지관리인이 살았던 집이었다고 한다.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처럼 마을 앞 농경지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위치다. 일제강점기에 백두산에서 목재를 들여와 지은 건물인데 너무 낡아 지난해 허물었다고 한다. 김환기 생가는 안좌면 소재지 읍동리에 있다. 그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대한민국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지만(‘우주’는 지난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서 132억원에 낙찰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고향에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작은 섬마을로서는 어림도 없고,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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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 라벤더 정원 꼭대기의 바람의 언덕. 다도해의 섬과 바다가 편안한 눈높이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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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 해안 산책로에는 바다로 구멍이 많이 뚫려 있다. 배수구이자 산란기에 붉은발도둑게가 이동하는 통로다.

마을 뒤편은 라벤더 정원으로 꾸민 ‘바람의 언덕’이다. 꽃 없이 잎만 남은 라벤더에서 바람이 불면 보랏빛 향기가 은은히 번진다. 남쪽으로는 장산도를 비롯해 신안의 크고 작은 섬들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산꼭대기에는 당집과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고 한다.


박지도는 작지만 풍족한 섬이었다. “바다에 가면 감태가 지천이고 게도 잡고 고기도 잡지, 논밭도 많아서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어.” 반월도에서 태어나 박지도에서 살고 있는 장청균씨의 말이다. 현재는 한 집에 한 명 17가구에 17명이 전부지만,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때는 300명가량이 거주했다고 한다. 작은 마을은 보통 집성촌을 형성하기 마련인데, 16개 성씨가 어울려 살다 보니 섬 안에서 혼인도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다들 먹고살 만했으니 설 지내고 5일 있다가 가가호호 쌀과 돈을 걷어 중송아지를 사서 정월대보름 저녁에 박지당에서 당제를 지냈어. 제관은 상을 당하거나 산달이 아닌 사람 중 4명을 뽑았어.” 이렇게 소 잡고, 술 빚고, 밥 짓고 떡을 해 푸짐하게 당제를 올리고 나면 이장과 나룻배 도선장을 뽑고 농악놀이로 마을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해안 산책로를 이동하다 보면 보라색으로 칠한 낮은 안전 펜스 아래에 촘촘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린 모습이 보인다. 물이 빠지는 구멍이자 붉은발도둑게의 이동로다. 매년 7~8월이면 산란을 하기 위해 게들이 산에서 바다로 이동하는데, 이때는 바닥이 새빨개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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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도와 반월도를 잇는 퍼플교. 3개 다리 중 가장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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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도의 상징 조형물. 섬이 반달 모양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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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도의 당숲. 400여년 전 인동 장씨가 섬에 들어오면서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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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도 당숲 앞의 버려진 창고와 노루섬. 노루섬에는 꿩과 노루가 많이 서식해 당제에서 제물로 이용됐다고 한다.

박지도를 한 바퀴 돌아 반월도로 이어지는 두 번째 퍼플교를 건넌다. 915m로 3개 다리 중 가장 길다. 물이 차면 푸른 바다에, 물이 빠지면 차진 갯벌에 떠 있는 보랏빛 꿈이다. 반월도는 섬이 반달 모양이어서 붙은 지명이다. 봉우리 양쪽으로 어깨춤을 으쓱해 보이는 어깨산(210m)에서 가파르게 흘러내린 해변에 2개의 마을이 있다. 반월도 해안 산책로는 약 4㎞, 걷기에는 좀 길고 자전거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퍼플교를 건너면 반달 조형물 뒤에 대여소가 있다.


시계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인동 장씨 집성촌인 반월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섬 주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올리던 당숲이 운치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장씨가 이 섬에 처음 들어온 시기가 약 400년 전이니 당숲의 역사도 그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과 숲이 공존하는 전형으로 인정받아 산림청에서 뽑는 ‘아름다운 숲’에 선정된 곳이다. 둥그렇게 돌담을 쌓은 당제 공간을 아름드리 느릅나무 팽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가 호위하고, 송악과 마삭줄이 나무 기둥과 돌담을 기어올라 한낮에도 신성한 기운이 느껴진다. 박지도 당제에 송아지 고기가 올랐다면 반월도 당제에는 꿩 고기가 주로 쓰였다. 당숲 바로 앞에 장도(노루섬)라는 작은 섬이 있다. 꿩과 노루가 많이 서식했는데 당제를 지낼 때 제물로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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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도 어깨산 자락 아래의 반월마을. 인공 구조물은 모두 보라색으로 단장한 보라색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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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도 마을 뒤편의 해안 산책로. 민가가 없어 호젓하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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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교 뒤로 삼각형 모양의 반월도가 잔잔한 수면에 비친다. 어깨춤을 살짝 올린 모양이어서 어깨산이라 부른다.

마을을 관통하면 산책로는 살짝 언덕배기로 올라간다. 민가가 전혀 없어 바다와 섬만 내려다보이는 호젓한 공간이다. 해질녘이면 무수한 섬 사이로 떨어지는 석양과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언덕을 내려와 반월선착장에 닿으면 두리마을로 돌아오는 세 번째 퍼플교(문브릿지)와 연결된다. 어둠이 깔리기 바쁘게 보라색 조명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 세모꼴 어깨산이 잔잔한 수면에 비친 모습이 보랏빛 꿈처럼 몽환적이다.


신안=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20.12.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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