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식 생선구이, 고등어 비린내 어떻게 잡았나

[테크]by 한국일보

'천덕꾸러기' 신세 고등어, HMR 구이로 인기몰이

'1분 조리' 편의성·비린내 없고 촉촉한 식감 비결

과일추출물로 TMA 저감…저산소로 구워 이취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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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이 출시한 비비고 생선구이 이미지. CJ제일제당의 가정간편식(HMR) 생선구이는 출시 10개월 만에 누적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CJ제일제당 제공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 다시 바다를 가르네.(중략)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가수 루시드폴은 2009년 발표한 노래 '고등어'(2009)에서 등 푸른 생선 고등어를 이렇게 예찬했다. 고등어의 시점으로 풀어낸 가사처럼 몇 만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고등어는 오랫동안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을 책임졌다.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싼 고등어는 예로부터 '바다의 보리'라고 불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우리 민족이 400여 년 전부터 고등어를 상식해왔다고 기록돼 있으니 '국민 생선'란 별칭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등어의 위상은 흔들렸다. 잔가시 때문에 요리하기 번거롭고 비린내도 심해 간편식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주방에서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2016년엔 환경부가 난데없이 고등어구이를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고등어는 더욱 밥상에서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던 고등어가 최근 다시 국민생선으로 회귀할 조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밥족'이 늘면서 지난해 부쩍 커진 가정간편식(HMR) 생선구이 시장이 고등어가 새로 유영하는 '바다'다.


고등어는 1분이면 완성되는 간편한 조리법과 고소한 감칠맛이란 무기를 장착하고 돌아왔다. 고등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 같았던 비린내도 훌훌 털어냈다.

고등어는 왜 비린내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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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는 죽은 후 체내의 삼투물질인 산화트라이메틸아민(TMAO)이 효소에 의해 트리메틸아민(TMA)으로 변하면서 비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비린내 안 나는 생선이 거의 없지만 고등어는 유독 비린내가 심한 편이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고등어가 살던 바다로 거슬러 가야 한다.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 분자가 이동하는 삼투현상에 의해 염분이 있는 바다 속에서 어류들은 바닷물에 수분을 뺏기게 된다. 이 때문에 어류들은 세포 내 수분 함량을 유지하기 위해 삼투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 삼투물질에는 산화트라이메틸아민(TMAO)이라는 화합물도 포함돼 있다. TMAO는 어류 체액에서 무취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어류가 죽은 후에는 화합물이 분해되면서 비린내의 원흉이 된다.


어류가 죽으면 사후경직, 자기소화, 부패 등으로 이어지는 사후 변화 과정을 거친다. 먼저 근육이 수축해서 딱딱해지는 사후경직이 시작된 후 단백질과 지방질 등에서 효소 작용이 일어나는 ‘자기소화’가 진행된다. TMAO는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효소에 의해 분해돼 트리메틸아민(TMA)으로 변화한다. TMA는 상온에서 기체 형태로 존재하며 색깔은 없지만 냄새를 풍긴다.


갓 잡은 생선을 바로 썰어 회로 먹으면 TMA가 적기 때문에 비린내가 덜하고, 죽고 난 후 분해가 시작될 시점부터는 TMA가 증가해 비린내가 심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린내는 생선이 얼마나 신선한지를 확인하는 보편적인 지표다. 비린내가 심하게 날수록 생선은 바다를 떠난 지 오래됐다.

고등어의 TMA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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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는 소금을 뿌려 삼투압 현상을 일으키거나 산성물질로 중화하는 방법으로 비린내를 잡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등어를 비린내 없이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활어이지만 빨리 죽는 습성 때문에 어부나 낚시꾼이 아닌 이상 어려운 일이다. 차선책으로 죽은 고등어의 비린내를 방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에 씻어내는 것이다. TMA에 있는 아민이란 성분은 수용성이라 물에 잘 녹는다.


비린내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면 중화 과정을 활용해 이를 잡아야 한다. 간고등어처럼 소금을 뿌리거나, 소금물에 담가두면 고등어 밖의 염분 농도가 내부 농도보다 높아져 수분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삼투현상이 생긴다. 생선 안에서 미생물이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방지할 수 있다.


산성물질인 레몬이나 사과, 식초도 흔히 사용되는데, 염기성 물질인 TMA는 산성물질과 결합하게 되면 여러 유기산들과 반응해 중화되면서 비린내가 감소한다. 산성물질은 유해한 세균 증식도 억제하고 살균 효과도 발휘한다.


HMR 고등어구이는 이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비린내를 얼마나 잘 없애느냐가 관건이다. 식품업계는 TMA의 함량이 높지 않은 신선한 재료를 선정한 후 생선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과일이나 향신료 추출물을 적용해 비린내를 잡는다. 다만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 CJ제일제당의 경우 고등어에 사과추출물을 더해 폴리페놀 성분으로 TMA를 저감화했다. 동원산업은 생선을 다듬는 과정에서 세라믹을 활용한 특허기술을 적용했다. 세라믹의 흡착효과로 생선에서 배어나는 핏물과 각종 부유물이 제거되는 원리다.


고등어 이외에도 식품업계는 TMA 함량에 따라 제각기 냄새를 없애는 방법을 사용한다. CJ제일제당은 TMA 함량이 고등어보다 적은 삼치 가자미의 경우 밀가루로 TMA를 흡수하고, 오뚜기는 연어구이에 녹차의 주성분인 카테킨이 TMA 성분을 중화시키는 원리를 활용했다.

냄새 없는 HMR 생선구이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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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 연구원이 HMR 생선구이 관련 실험을 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제공

TMA를 어느 정도 잡았다고 해도 고등어의 이취(이상한 냄새)를 완벽하게 없애는 건 쉽지 않다. 이취는 사후 세균에 의한 부패과정에서 생기는 비린내 뿐 아니라 생선이 가진 고유의 자연적인 냄새, 생선유 불포화 지방산의 산화물에 의한 냄새 등 원인이 복합적이다. 또 비린내를 일시적으로 제어해도 공기 중에 노출돼 자동 산화가 되거나, 미생물이 번식하면 다시 비린내가 날 수 있다. TMA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이취를 깔끔하게 잡을 수가 없는 셈이다.


CJ제일제당의 경우 고등어 이취의 또 다른 원인인 불포화지방 산화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300도 이상의 과열 증기를 활용해 저산소 조건에서 고등어를 구워 지방산화를 최소화하고 산화시 발생하는 불쾌한 냄새(산패취)를 제어하는 것이다. 생선 지방의 산화는 다양한 과정에서 진행되지만 특히 가열에 의한 산화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구울 때 산소 유입을 최소화해야 가열로 인한 지방산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별도의 방부제 없이 급속냉각하고 질소포장으로 산소 유입을 막으면 고등어는 더 이상 지방산화가 일어나지 않아 비린내 없이 소비자의 식탁에 오를 수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과거에는 HMR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HMR 식품이 일상식이 되고 질적 향상이 이뤄지면서 수산물 HMR 구매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2021.01.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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