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학의 도시이야기]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도시들

[여행]by 한국일보

⑮치매 노인을 위한 공간 네덜란드 호그백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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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구이저우성 구이저우대의 후밍 교수 강의실에서 졸고 있는 후밍 교수의 어머니. 후밍 교수 제공

여행 초기였던 2017년 가을 중국에서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의 한 대학 교수가 인지장애증(치매)에 걸린 노모를 강의실 뒷자리에 모셔놓고 강의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으며 앞으로 전 세계가 맞닥뜨릴 고령화 사회를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났다. 기사의 주인공인 교수와 노모를 꼭 만나고 싶었다.


중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교수는 언제든 찾아 오라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 에서 구이저우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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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이 넘는 노모를 강의실에 모셔놓고 강의하는 구이저우대 후밍 교수. 후밍교수 제공

구이저우공항에 내려 구이저우대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마중나온 후밍 교수를 만났다. 이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후밍은 공교롭게도 나의 어머니와 동갑인 1958년 개띠여서 더 친근함이 느껴졌다.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이뤄졌다. 특히 집안을 꽉 채운 화분과 책에 눈길이 갔는데, 후밍 교수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함께 좀 더 쾌적한 공간에서 어머니를 모시려는 마음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 마음은 인터뷰는 내내 이어져 뭉클하면서도 즐거웠다.

노인들 주머니도 충분히 채워주는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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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로 유명한 네덜란드는 노인 복지 정책이 잘 된 나라로 손꼽힌다. 이동학 작가

치매로 알려진 노인의 인지증 문제는 전 세계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약이나 치료를 통해 인지장애를 해결할 방법을 만들지 못했다. 때문에 인지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열심히 찾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 늘 노인이 행복한 나라로 꼽히며, 최고의 노인복지 정책을 자랑하는 네덜란드는 2020년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들어섰다.


궁금했다. 어떻게 노인 행복 국가가 됐을까. 세계에서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에서 왔기에 특히 그 배경을 알고 싶었다.


먼저 1인 당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넘는 네덜란드의 노인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50플러스당'을 찾았다.


이 정당의 연구소장인 리처드 더 뮬더씨는 오랫동안 노동당에서 활동했고, 내가 찾아갔던 2018년 당시 71세로 50플러스당의 연구 책임자를 맡고 있었다. 특히 리처드를 비롯해 연구소 실무자 모두 무급으로 일한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뭔지 모를 여유가 느껴지면서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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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고령자들이 타는 초소형 2인승 오토카. 이동학 작가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노인들에게 100% 지급되는 연금과 민간 보험을 통해 나오는 별도의 연금제도를 통해 소득을 충분히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2015년 기준 노인생활 지수가 세계 6위에 오르는 등 해마다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노인 인구 중 빈곤 상태에 있는 비율은 2% 미만이다. 노인 빈곤율이 절반에 달하고, 폐지 줍는 어르신 10명 중 6명 이상이 생계 때문에 일을 한다는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 낯설었다.


리처드에게 한국 노인들의 폐지 줍는 현실, 노인 자살, 기초 연금과 국민 연금의 처우 등 을 설명했다. 그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히려 한국이 못 사는 나라가 아닌데 왜 그런 상황을 다들 보고만 있냐며 되물었다.


혹시 돈을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그리고 노인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액수와 비교하면 적은 돈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불행한 노인을 방관하는 것은 사회문화와 관계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더 돌봐줘야 한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속도가 우리보다 느리지만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65세 이상이 20%를 넘어섰다. 이들은 몇 년 전 65세였던 은퇴 연령을 올해까지 67세로 조정하기로 결정했고, 2022년부터는 기대 수명에 연동되도록 했다.


매번 개혁에 따른 진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한편,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능성도 높이는 조치다. 법으로 정한 은퇴 시기와 연금 수급 시기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소득 절벽이 생기지 않고, 높은 연금을 받을수록 비례해서 연금세가 매겨진다.

수많은 치매 노인이 입주 대기 중인 호그백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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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호그백 마을에 사는 노인들이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호그백 마을 홈페이지

우리는 치매에 대한 얘기도 나누었다. 네덜란드의 호그백(hogeweyk) 마을은 치매 노인 마을로 꽤나 유명하다.


이 곳은 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어르신들이 소득에 따른 월세처럼 돈을 내고 지내는데, 연금에서 충분히 소화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비용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호그백 마을은 장기 요양보험으로부터 1인 당 수천 유로의 지원금을 받는다. 이 운영비는 입주 노인들이 슈퍼, 미용실, 레스토랑, 공원, 극장 등을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쓰인다.


150여 명의 노인들은 23개의 가정에 6~8명으로 나뉘어 산다. 침실은 프라이버시를 존중한 개인별로 쓸 수 있고, 요리를 하는 주방과 거실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서로를 돕고 좋은 관계를 지속될 수 있게 설계된 점이 특징인데, 특히 공간 디자인은 전통형, 종교형, 도시형, 인도형 등 7개 형태로 존재한다.


150여 명의 어르신들, 간호 인력, 돌봄 직원 등 200명 넘는 스태프들이 머무는 이 마을에 새로 입주하려면 기존 구성원 중 누군가 빠져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평상복을 입고 어르신들을 돕는 등 의료진에게서 치료를 받는 병원이라는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함께 사는 마을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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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케어팜의 운영 정신은 '뭔가를 돕고 이바지하면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홈페이지 캡처

이 밖에도 노인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농업과 노인 돌봄을 연결한 케어 팜(Carefarm)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중후반 5,6개를 시작해서 지금은 1,100곳이 넘는다. 신체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살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데, 네덜란드 전체 케어 팜의 15%가량인 170개 이상이 치매 노인을 위한 곳이다.


농촌의 소득 증진과 고령층의 건강 증진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자 국가도 정책적으로 지원을 늘려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나이를 떠나 마약이나 알코올, 게임, 자폐 등 정신질환 환자들까지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안락사 적용 범위 놓고 끊임 없이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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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치매 노인 마을로 유명한 호그백 마을 전경. 호그백 마을 홈페이지

나는 리처드 소장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죽는다는 건 더 이상 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그 순간을 편하게 맞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연구소가 대학 연구팀과 진행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의 주제 중 하나가 안락사 적용 범위 확대에 관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네덜란드는 벨기에 등과 함께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안락사 합법국가다. 이미 2002년 안락사 법이 시행됐고, 이전에도 관습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고 한다. 안락사는 의사가 약물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환자가 약물을 스스로 주입하는 조력 자살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①환자의 자발성이고 ②참을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이 있어야 하며 ③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해야 한다는 등 법에서 정한 세가지 요건을 갖출 경우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리처드가 말한 연구는 죽음을 앞 뒀지만 이 요건를 다 채우지 못해 안락사 대상에서 제외 되고, 원하지 않는 의료 행위를 계속 받아야 하는 상황 등 안락사 사각 지대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이 배경에는 1980년대 이후 점차 민영화 된 의료보험으로 인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 있다. 공공재정의 투여로 인해 지속가능성이 저하되자 네덜란드는 건강보험을 민영화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지속가능성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국민 개개인의 부담은 늘었다. 50플러스 연구소는 이러한 개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영화된 의료보험을 다시 국영화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참고로 최근 네덜란드 법원에서는 중증 치매환자가 치매 판정을 받기 전 안락사를 원한다는 의사 표시가 된 문서만으로도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끝으로 리처드 소장이 강하게 힘주어 말했던 부분을 소개한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지만, 선입견으로 노인을 은퇴해야 할 존재, 무조건 도와줘야 할 존재로만 인식해선 안 된다."


"우리는 어떤 점에선 젊은이들과 비슷한 능력을 가졌으며, 또 어떤 것들은 낫거나 부족한 것도 있다."

묘지를 마을 공원 처럼 여기는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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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의 도심 속 공원에 있는 공동묘지. 이동학 작가

나는 여러 대륙을 돌면서 장례 문화와 묘지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미나 북미에서는 도심 속이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옆에서 묘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혐오 시설로 여겨져 도시 외곽의 납골당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묘지를 지정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죽어서도 하늘로 못 가고 우리 옆에 남아 현실의 일을 방해하는 귀신이 된다고 믿는 우리 문화권과 수호 천사로 내 주위를 돌며 도움을 준다고 믿는 문화의 차이 때문일까.


특히 캐나다에서 묘지는 공원과 같은 의미다. 사람들은 집 옆의 묘지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바람을 쐰다. 늘 죽음을 옆에 두고 누구나 언젠가는 저 곳에 눕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자는 것일까.

천천히 그렇지만 많은 것을 공유하는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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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는 장례식에서 참석자들에게 간단한 다과를 제공하는 등 등 간소하게 치러진다. 이동학 작가

묘지뿐 아니라 장례도 다르다. 물론 캐나다는 다민족이 살고 있기에 민족별, 국가별, 종교별 특성을 버무려 맞춤형 장례 프로그램이 있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치러지는 장례는 우리의 장례 모습과는 딴판이다.


먼저 고인이 숨을 거두자마자, 순식간에 장례식을 준비해 3일장을 치르는 우리와는 달리, 캐나다는 장례식 날짜를 여유롭게 잡는다. 서두르거나 허겁지겁 치르지 않는다.


마치 결혼을 앞두고 예식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날짜를 멀리 잡아놓고, 돌아가신 분 중심의 인간 관계를 통해 연락을 한다.


마치 예식을 하듯, 할머니와 추억과 안녕을 비는 손주들의 편지, 할머니의 친구들 또는 자식들의 마지막 인사말이 장례식의 하이라이트다. 장례식장에 들어서 조문객들은 꽃단장을 하고 운구함에 누워있는 시신을 볼 수 있다.


고인을 추모하고, 고인과의 추억을 공유한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고, 슬픔에 젖어 있는 유족을 위로한다.


고인을 위한 장례식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유족들, 친구들, 이웃들이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고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의 슬픔을 공유하며 치유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육개장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장례식 풍경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장례식이 끝나면 뒤풀이를 하는데, 정식 식사가 아닌 과자를 비롯한 간단한 먹거리와 커피 같은 마실 것 등이 준비된다.


어떤 장례식이 더 좋다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각자의 문화에 따른 차이가 있으므로.

좋은 죽음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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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병원에 있는 사전의향서 윌(WILL). 이동학 작가

더 큰 차이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에 보이는 반응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환자 본인이 미리 의지를 밝혔을 경우, 더이상 무의미한 삶을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웰다잉 법'을 통과시켜 2018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캐나다에 비하면 이 수준은 아직 초보 단계이다. 캐나다에서는 불치병 또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확진할 경우 의사는 즉시 그 개인에게 사실을 알린다. 환자에겐 감추고 가족에게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귀띔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의사의 의무이고, 환자 역시 이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권리의 침해로 여긴다.


내가 좋은 죽음(웰 당이)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오래 전이다. 나는 열 세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언젠가 어머니에게, 왜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 여행을 가지 않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마지막 6개월 동안 보냈던 기억이 대부분 병원에 있었던 일들이라는 건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려고 했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계획을 포기했다. 그런데 아버지 상태가 좋아져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겼는데도 여행을 떠날 용기가 나질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 입장에서도 삶의 기억 중 마지막은 병원이었을 것이다. 네모난 하얀색 천장과 병원 침대, 낡디낡은 냉장고와 텔레비전.


아무리 생각해도 삶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내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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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던 후밍 교수가 노모와 환하게 웃고 있다. 이동학 작가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어르신들 혹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마지막은 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 동안 이렇게 유지될 것이다.


살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사랑과 의지도 꺾이기 어려울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여전히 두렵고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만 끝내 답을 못 찾고 죽는 경우도 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꽤나 한가한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로 고민해 보자. 어떻게 죽을 것인지, 죽음의 마지막을 상상하다 보면 어떻게 살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캐나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내미는 사전의향서(WILL)에 앞으로 나타날 상황 중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미리 의사 표시를 해 둔다. 이것은 법적 효력이 있어 신중하게 선택하고, 환자는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게 된다.


본인의 삶이고 죽음이므로, 스스로가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생전에 용기가 없어 못 했던 말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정신은 이미 죽었는데, 몸이 하루라도 더 살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 되면, 무의미한 숨만 연장되고, 가중되는 의료비는 살아있는 가족이 떠안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중국 구이저우의 후밍 교수와 지금도 안부를 전하고 있다. 다행히 후밍 교수의 노모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여전히 아들 후밍 교수의 손을 붙잡고 학교에 나가고 있단다.


개인과 가족이 부양하는 시대에서 사회가 부양하는 시대로 넘어 온 지금 내겐 너무 따듯한 기억이다. 후밍 교수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던 과정에서 어머니의 헌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이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려는 이유도 그 헌신에 대한 자신의 답이라고 했다.


그의 모친인 할머니는 그저 천진난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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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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