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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맛은 가격에 정비례한다고?
No! 스시 민주화를 외치다

by한국일보

얇은 지갑을 위한 진격의 중저가 스시

맛은 가격에 정비례한다고? No! 스

초밥은 비싼 만큼 맛이 좋다. 이는 곧 진입장벽이 높다는 의미다. 최근 1, 2년 사이 대거 등장한 중저가 초밥집들은 가격 방어선을 낮추는 동시에 맛도 합리적인 한계선까지 꽉 채워 잡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것은 쌀과 생선으로 만든 단순한 음식이다. 좋은 쌀을 잘 불려 고슬고슬하고 감칠맛 나는 밥을 짓고, 신맛과 단맛을 가미해 샤리(舍利)를 준비한다.

 

생선, 혹은 해물은 가장 때가 좋은 것으로 싱싱한 것을 준비해 제일 맛있는 방법으로 숙성하거나 조미한다. 스시다네(네타라고 흔히 부른다)다. 샤리는 빛이 통과할 정도로 가볍게 손으로 쥐고, 네타를 적당한 두께로 썰거나 뭉쳐 샤리 위에 얹는다. 샤리와 네타 사이에 고추냉이를 갈아 얹거나, 네타 위에 간장을 바르거나 소금을 얹어 간을 맞춘다. 단순하지만, 단순할수록 정교하고 세심한 음식, ‘스시’(壽司ㆍ초밥)다.

 

초밥의 출신 성분을 보자면 일본의 도쿄만 지역, 에도 막부 시대 도쿄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후딱 끼니를 때우던 패스트푸드가 정체다. 그 때도 지금과 똑같이 밥을 지어 앞바다에서 나는 생선을 되는대로 올린 것이 초밥이었다. ‘에도마에 스시’라는 말이 나온 연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음식이었던 초밥은 시대를 지나는 동안 신분이 점프했다.

 

현재의 초밥은 냉정한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흔히 초밥을 두고 “가격과 맛이 정비례한다”는 말들을 한다. 초밥은 가격을 배려하지 않는 음식이다. ‘가성비’가 아닌, 가격에 합당한 값어치가 여실히 드러난다. 참 정 없이 정직하다. 값이 비쌀수록 맛이 좋아서, 터무니 없는 가격의 초밥은 터무니 없는 맛을 내게 돼 있다. 일본의 미쉐린 3스타 고급 초밥은 한 끼를 먹는 데에 몇십만원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한다. 아니, 때로 한 점에 십수만원하는 초밥도 있다. 초밥은 전세계 어디서나 고급 미식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데, 어디서나 이 정비례 법칙이 지켜진다. 한국에서 역시 마찬가지라 한 동안 한 끼에 10만원도 훌쩍 넘는 초밥 전문점들이 강남 일대에 유성우처럼 펼쳐진 시기를 지났다. 엥겔지수를 조금도 낮출 생각 없는 미식가들이 기꺼이 맛있는 초밥에 지갑을 열었다. 청담동과 도산공원 앞 일대에 형성된 고급 초밥 벨트는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맛은 가격에 정비례한다고? No! 스

다양한 가격대의 초밥이 등장하면서 맛의 거리마다 초밥 민주주의가 진행 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합리적인 맛 끌어낸 중저가 초밥

그런데 세상의 반대편에는 390원짜리 초밥도 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초밥이 판촉 이벤트에 들어가면 나오는 가격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초밥은 기계로 ‘조립’만 하면 되는 대량생산 재료가 공급되는 덕분에 가능하다. 1만원 내외의 가격에 우동까지 얹어 주는 체인점 초밥도 있다. 마요네즈 듬뿍 넣은 ‘롤초밥’ 역시 초밥으로 불린다. 샤리에 네타를 올렸으니 모두가 초밥이다. 저렴한 가격만큼 그럭저럭 만족하기도 쉽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맛이다. 모르면 속이 편한데, 저 너머의 맛을 아니까 속이 허하다.

 

초밥 재료는 다시금 강조하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다. 이런 저런 생선과 해물에 쌀, 조미용 식초, 설탕, 간장, 와사비 정도가 전부다. 단순하다 보니 재료의 품질이 여실히 드러난다. 초밥 장인의 기술도 맛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흡사 전기신호를 물리적 파장으로 바꿔주는 스피커와 같이 단순하다. 하지만 스피커의 세계에도 3,000원짜리 플라스틱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케이블의 소재까지 나노 단위로 집착하는 예산 무한대의 세계관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중간계에는 ‘미들급’이라는 우주가 있다. 평균적인 욕구를 갖고 있는 소비층이 선택하는 ‘보급형’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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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초밥 재료인 참치는 등급이 천양지차로 나뉜다. 맛도 그만큼 천차만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390원과 39만원 사이의 중간계 초밥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고작 몇 해 전부터의 일이다. 1만~2만원 가격대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맛을 보장하는 몇몇 초밥 전문점들이 일찍이 등장해 불을 당겼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런치 가격 3만~5만원, 디너 가격 5만~7만원 선의 ‘미들급’, 나누기에 따라 혹은 ‘엔트리급’으로 통칭되는 가격대의 초밥 전문점들이 대거 인기를 얻고 있다. 초밥은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닌지라 매우 접근성 높은 가격대다. 초밥 세계의 부르주아 혁명이다. 390원, 1만원에서 아쉽던 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러면서도 합리적인 취사선택을 통해 심리적 저항선 아래의 가격대를 유지한다.

 

이 초밥 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시 초밥이 갖는 단순함에 있다. 도산공원 앞 ‘초밥선수’ 오너셰프인 최지훈씨의 지식을 빌어 봤다. 고급 재료로 꼽히는 참치가 다 같은 참치가 아니다. 참치라고 불리는 생선만 해도 종류가 여럿이고, 그 중 최고로 치는 것이 구로마구로(혼마구로 또는 블루핀 참치라고 부르기도 한다)다. 구로마구로도 부위에 따라 맛의 값어치가 다르고, 잡힌 지역에 따라서도 맛이 갈린다. 또한 냉동 상태인지, 근해에서 잡아 냉장 상태로 들어오는지 역시 맛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가격차가 난다. 냉동 상태라면 해동을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저렴하면서 맛깔난 재료로 승부

여름을 달궜던 초밥 재료인 우니도 보자. 성게의 생식소인 우니는 녹진한 단맛에 고소함과 종류에 따라 쌉싸래함까지 갖춘 인기 재료다. 바닷물에만 들어가면 발에 채이는 것이 성게이지만 어느 바다에서 나온 것인가에 따라, 그리고 종류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맛은 곧바로 가격에 반영돼 저렴한 것은 한 판에 1만원 이하에도 구할 수 있고, 고가인 것은 가격이 그 수십 배에 이르기도 한다.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초밥 장인들이야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성을 갖췄을 때 가격에 전혀 구애 받지 않고 최고의 재료만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초밥 혁명의 주역들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선의 재료를 선택하는 감식안을 무기로 활약한다. 그 가격대에서 납득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맛을 가진 재료가 같은 정성으로 지은 밥 위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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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저가 초밥 전문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초밥은 덜 부담스러운 가격에 납득할 품질을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저변을 넓혔다. 게티이미지뱅크

동시에 초밥은 바다와, 때로는 산과 들에서 나는 재료까지 무한대의 재료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복잡한 음식이기도 하다. 초밥은 요리사에게 메뉴 선택을 전적으로 맡기는 ‘오마카세’로 먹을 경우가 흔하다. 그 신뢰를 토대로 요리사는 그 철에 가장 좋은 재료를 코스로 펼쳐낸다. 아무리 적어도 최소 10점 이상이 이어지는 긴 코스다. 재료가 다양해지면 재료비 비중은 올라가기 마련이고, 가격도 따라 상승하게 돼있다. 미들급 초밥 요리사들은 기본적인 초밥을 위주로 해서 날렵한 코스를 구성한다. 광어, 도미, 참치, 새우 등 빠지면 서운한 것들을 포함시키고 복어나 값비싼 조개류처럼 단가 상승을 주도하는 재료를 합리적으로 배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들급 초밥에 그다지 서운하지 않은 것은 명민하게 최대치의 코스를 구성해 내는 지혜를 다들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가이(赤貝, 피조개)가 없어서 서운할지언정 키조개 관자로 그 상심을 때워주는 식이다.

 

물론 여전히 세상엔 장인이 끝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고급 미식의 초밥 세계관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작은 구역은 언제나 소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허나 모두가 그 가치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폭력이다. 이제 어쩌다 한 번 맛있는 초밥을 접근 가능한 가격 안에서 즐기는 장삼이사들의 초밥 세계관 역시 하나의 우주를 이뤘다. 최지훈 셰프는 이렇게 말한다. “미들급 초밥 전문점이 많이 생기는 현상은 반길 만한 일이다. 크게 부담 가지 않는 가격대에서 누구나 괜찮은 초밥을 경험해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결국 초밥이라는 음식이 갖는 저변이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초밥 민주화다. 다양한 사회집단이 서로 관용하는 동시에 자신의 영역을 보존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민주화를 성립시키는 조건 중 하나다. 음식에서 역시 다르지 않다.

서울 시내 만족스러운 중저가 초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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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쵸우의 아카미(참치등살).

스시쵸우

한남동 한강진역 뒤편 구석진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협소한 가게에 단 8석의 바 좌석만이 마련되어 있다. 점심 2회, 저녁 2회로 하루 총 4번 손님을 받는데 예약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좀 더 많은 분들이 1년에 한두 번이라도 드셔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오너셰프 박진태씨의 코스는 초밥 위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만족스럽다. 점심 4만원, 저녁 6만원(이하 가격은 모두 오마카세 또는 코스 기준).

 

이요이요스시

공덕동 마포경찰서 뒤편 한 아파트 상가에서 조그맣게 시작한 초밥집. 10석의 바 좌석과 몇 개의 테이블이 전부다. 입소문을 타면서 마포 베스트웨스턴프리미어서울가든호텔 지하에 분점도 냈다. 본점보다 구색이 더 다양한 대신 가격대는 좀 더 높다. 두 개의 가게를 운영하는 덕분에 가격에 비해 구색이 다양한 것이 장점. 공덕점 점심 2만 2,000원/3만 3,000원, 저녁 4만원/5만 5,000원.

 

스시시로

2010년 오픈하면서부터 화제가 된 선구자격 미들급 초밥집. 상수동 번화가 한가운데 자리해 있다. 같은 건물의 ‘이자카야 겐지’와 함께 운영해서 재료 수급도 운신의 폭이 넓은 것으로 보인다. 원래 반지하 자리에 있다가 작년에 신축 건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테리어도 한결 고급스러워졌다. 좌석은 모두 바로 되어 있다. 점심 3만 3,000원/4만 4,000원, 저녁 5만원/7만원.

맛은 가격에 정비례한다고? No! 스

상남스시의 아카미.

상남스시

신대방동, 보라매역과 신대방역 사이 주택가 한가운데에 자리한 초밥집. 임대료 부담이 덜한 입지인 만큼 가격에 대비해 꽤 충실한 코스를 낸다. 3만 3,000원짜리 저녁 코스B는 사시미 몇 점과 간단한 요리가 곁들여진다. 월급이 통장을 스쳐간 직후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갈 만한 선택지다. 점심 1만 5,000원, 저녁 1만 9,000원/3만 3,000원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