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만 하는 남편, 어린 딸에게도 욕설과 폭력을...어떻게 살지 막막"

[라이프]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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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구원 기자

남편, 두 딸과 살고 있는 주부입니다.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의심으로 부부간의 소통이 어렵습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저를 믿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함부로 대합니다. 이제는 아이에게까지 욕설을 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두 아이를 생각하면 가정을 지키고 싶지만 이런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남편은 저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대체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돌이켜보면 연애시절 친정에 처음으로 인사를 갔던 날이 시작이었습니다. 남편을 친정 부모님께 처음 소개하는 날 저는 남편에게 "우리 집에서 반대하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고, 남편은 "반대하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부모님은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점을 못마땅해하셨지만 결혼을 반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당시 저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싶어 질문했던 것뿐이었지만 남편은 아직도 그 일을 거론하며 친정 식구들을 싫어합니다. 친정에서는 남편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앙심을 품고 저와 친정에 대한 싫은 감정을 감추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남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무관심한 남편의 태도에 상처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임신 중에 감기가 걸렸을 때에도 저는 물론 태아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아이가 순하고 잘 울지도 않는다며 아기를 이뻐하더군요. 남편이 딸바보가 되어가는구나 싶던 찰라 둘째가 태어났는데 남편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둘째는 첫째보다는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고, 남편은 아이가 잘 운다며 싫은 기색을 여러 번 내비쳤습니다. 둘째가 돌 무렵이 됐을 때는 "삼청교육대 같은 곳에 보내고 싶다"며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어요.


그러다 두돌이 됐을 때 손찌검을 시작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언니에게 과자를 줬는데 그 때문에 첫째가 밥을 먹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둘째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러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급기야 첫째까지 때렸습니다. 평소에도 드러내놓고 차별을 하는 데다 때리기까지 하는 모습에 화가 난 저는 둘째를 데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둘째를 때리지 않으면 들어가겠다고 엄포를 놓자 남편이 그러겠다고 약속해 다음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이들을 다시 때렸습니다.


남편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아이에게까지 이어지니 견디기가 힘듭니다. 남편은 평소 저와 둘째에게 비속어와 욕설을 여과없이 내뱉습니다. 대부분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어른인 저도 듣기 힘든 수준의 막말입니다. 언젠가 힘들어서 누워 있는데 첫째한테 "엄마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더니, 둘째에게 "엄마 가면 니가 구조조정 1순위야"라고 합니다. 백신을 맞고 잠깐 졸다 깼을 땐 대뜸 "죽지도 않고 일어났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둘째의 머리를 너무 자주 때려서 한 때는 둘째가 아빠가 가까이 오면 머리부터 막는 시늉을 했을 정도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무뚝뚝하시고 술과 담배를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술만 드시면 욕을 하고 폭력을 쓰기도 했죠. 그 영향으로 지금도 주량을 못 이기며 술을 먹는 사람이 너무 싫습니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가족 내에는 차별도 있어서 집안 분위기는 늘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아빠의 사랑은커녕 차별과 비난을 받고 자라는 둘째 아이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혼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아빠 없이 자라야 하는 아이들과 경제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내가 참고 희생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다고 남편에게 읍소하면 "때리지 않는 것만해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받아칩니다. 남편은 저만 잘하면 된다면서, 아이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원인을 제 탓으로 돌려버립니다. 이런 아빠가 있는 가정에서 제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남편은 상담을 받자고 해도 거부하는 상태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설아(가명·44세·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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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설아씨는 섬세하지만 의존적인 사람이에요. 반면 남편은 공격적이고 착취하는 성향이죠. 각자의 성향이 맞물리면서 오랫동안 역기능적인 부부관계가 반복되었던 것 같아요. 설아씨의 아픈 감정들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어디에서 왔을지 생각해보면 지금의 고통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 원인을 짚어보며 설아씨와 어린 딸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해요.


사연으로 볼 때 설아씨의 남편은 편집성 성격 특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남을 믿지 못하고 모욕감과 관련된 원한을 오랫동안 풀지 않기 때문에 설아씨 입장에서는 의심의 근거도 부당하고 억울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 결혼 생활을 뒤흔들 만한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부부 사이의 비난과 폭언이 이 정도로 일상화돼있다면 이건 폭언을 하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남편의 행동은 분명한 잘못이고, 부부가 당면한 문제의 상당 부분이 그의 책임이라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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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자기 자신의 과도한 모욕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해 납득이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설아씨와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어요. 남편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모욕과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부부관계에서조차 자신의 안 좋은 면을 상대에게 들킬까봐 불안해하고, 잘못을 지적당할까봐 두려운 나머지 먼저 상대를 의심하고 비난하며, 통제하는 식으로 심리적 갈등을 해결하는 겁니다. 특히 만만한 사람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강하게 느끼고 공격적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 편집성 성격의 특징이죠. 우려가 되는 부분은 남편이 설아씨와 아이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선을 넘고 있다는 점이에요. 둘째 아이는 일상적으로 차별당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정서적 학대입니다.


내가 잘못을 한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지난 인생은 절대로 설아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설아씨 역시 역기능적인 부부관계 패턴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게요. 냉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앞으로 설아씨와 딸들의 인생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어요. 짐작건대 설아씨는 어린 시절 엄한 아버지, 차별적인 가족 분위기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눈치보는 데 익숙한 생활을 해온 것 같아요. 두려움으로 인해 자기주장이나 기분 나쁜 내색을 잘 못하는 성향을 갖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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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태도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사람은 설아씨를 존중하지도,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게 됩니다. 저항하고 싶어도 갈등 상황에 놓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참는 식으로 회피했던 설아씨는 남편에게 계속 휘둘렸고, 남편은 스트레스를 시종 아내에게 풀어왔어요. 이제는 그 화살이 집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둘째 딸아이를 향하고 있죠.


지금이라도 휘둘리지 않으려면, 먼저 스스로 바로 서야 해요. 이혼을 고민하는 당신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가정을 끝까지 유지할지 말지는 실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설아씨 스스로 내면의 힘을 갖추지 못하면 이혼하는 과정, 이혼 이후에도 남편에게 휘둘리며 고통당하는 현실을 반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설아씨의 말처럼 남편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래서 극적인 행동 개선을 일으킬 여지가 크지 않아요. 변해야 하는 쪽은 설아씨입니다. 당장 용기가 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남편에게 당신 때문에 나와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전해야 해요. 남편이 그 사실을 인정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표현을 해야 합니다. 아이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있어선 안 될 일이고, 받아들여선 안 되는 행동이에요. 이 점을 설아씨가 분명히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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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어린 자녀들은 지금의 가정에서 존재의 의미가 흔들릴 정도로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설아씨는 아내인 동시에 엄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요. 아이들의 정서를 안정적으로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을 위해 용감하게 할 말을 하는 엄마를 보면서 딸들은 설아씨를 진정한 보호자라고 느끼고 믿게 될 겁니다. 부부가 모두 자녀들의 보호자이자 부모로 살아갈 수 없다면 한 사람이라도 바로 서야 해요. 설아씨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참는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를 키운다면 딸들은 그런 무력한 어머니상을 학습하게 됩니다.


당장 혼자 힘으로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부부상담을 받는 것이 어렵다면 자녀 교육을 위한 상담을 받을 것을 설득해보세요. 좋은 인간이 되기란 어렵지만 어린 자녀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을 전하며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세요. 조금씩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을 해보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결단을 내려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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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2022.11.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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