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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구겨진 세단…국내 자동차 안전 테스트엔 ‘천장 강도’ 항목이 없다

by헤럴드경제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사고…모든 승용차 처참한 결과 불가피 

-미국 자동차 안전 테스트에 있는 ‘천장 강도’…KNCAP에는 없어 

-미국 ‘우수’ 등급은 차량 무게 4배 견뎌야 vs 국내 최소 기준 1.5배 

-“국내 안전 테스트 항목에 ‘천장 강도’ 있으면 제작사 더욱 신경 쓸 것”

 

[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 서울 서대문구에서 거주하는 Y(40)씨는 요즘 운전할 때마다 룸미러를 보는 것이 습관이 생겼다. 혹시라도 버스나 트럭과 같은 대형차가 뒤따라 올때면 차선을 다른 쪽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부고속도로에서 광역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 사고로 K5(2013년식) 승용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진 사진을 본 뒤부터 후방에서 오는 차를 더욱 자주 점검한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7중추돌 사고 이후 Y씨와 같이 뒤따르는 차량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운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고차량과 같은 차량을 소유한 운전자의 경우 차량 교체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겨진 세단…국내 자동차 안전 테스트

지난달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 나들목 인근에서 광역버스와 추돌해 심하게 파손된 승용차 모습.[연합뉴스]

자동차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차량이 받았을 충격을 감안할 때 그 어떤 승용차라도 처참한 결과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한다. 10t 정도 무게의 버스가 1.5t 되는 자동차를 덮쳤으니 이를 견뎌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당시 피해 차량의 운전자는 혈기흉으로, 동승자는 외상성 뇌손상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안전은 피할 수 없다고 포기할 수는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쇼핑몰에서 차량 강도를 높여주는 장치에 대한 소비가 늘고 자동차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같은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해 차량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자가 운전자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구겨진 세단…국내 자동차 안전 테스트

IIHS의 지붕 강도 테스트 장면[사진출처=IIHS 홈페이지]

자신이 보유한 차량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도는 국내 자동차 안전평가 프로그램(KNCAP) 홈페이지(www.kncap.org)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운영하는 KNCAP는 국내 대표 자동차 안전도 평가 프로그램인데, 정면충돌, 측면충돌, 보행자 등 22개 항목의 평가 결과를 종합해 1~5등급으로 안전도를 평가해 제공하고 있다.

 

KNCAP 안전도 평가에 따르면 2015년 평가 결과이지만 K5의 안전도 등급은 1등급이었다. 충돌 안전성은 97.4%를 기록했으며, 주행 안전성은 95.0%, 보행자 안전성 67.3%를 기록하며 평균점수 91.8으로 1등급을 받았다.

 

이 같은 기록은 동급의 다른 차량과 비교해서도 나쁘지 않다. 지난 2016년 KNCAP 조사에서 최우수한 성적을 거둔 한국지엠의 쉐보레 말리부의 경우 92.1점을 기록했다. 말리부의 충돌 안전성은 97.1%였으며, 주행 안정성은 81.0%, 보행자 안전성은 74.0%였다. K5의 경우 주행 안전성과 보행자 안전성은 말리부보다 낮았지만, 충돌 안전성은 더욱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결과만 볼 때에는 그 어떤 차량이라도 사고 당시와 같은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동차 천장 강도를 안전 테스트 항목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안전 테스트에서는 천장 강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부분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구겨진 세단…국내 자동차 안전 테스트

KNCAP 최신 자동차 안전 평가 결과[사진출처=KNCAP 홈페이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의 안전도 평가 항목 중에는 ‘지붕 강도 테스트(Roof strength test)’라는 것이 있다. 자동차 전복 사고에 대비한 것인데, 지붕이 승객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잘 버티는지를 테스트한다. 이 항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차량 무게의 4배에 해당하는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즉 1.5t 정도의 일반 승용차의 경우 6t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정도면 우수 등급을 받는다는 얘기이다.

 

비록 이 기준에 따라 우수 등급을 받은 승용차라고 하더라도 경부고속도로 사고와 같이 10t 무게의 버스가 누르는 힘을 견디기는 힘들었겠지만, 그렇게 처참하게 구겨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해볼 수도 있다.

 

IIHS에서는 승객을 보호할 수 있는 천장 강도의 마지노선으로 차량 무게의 2.5배를 제시하고 있으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서도 전복 사고시 자동차 지붕이 견뎌야 하는 무게에 대한 기준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 KNCAP에서는 자동차 천장 강도에 대한 안전 테스트 항목이 없다. 전복 가능성에 대한 기준만 있다.

구겨진 세단…국내 자동차 안전 테스트

한국 및 해외의 자동차 안전도 평가 기준 비교 [사진출처=KNCAP 홈페이지]

그나마 승용차 천장 강도와 관련된 규정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성능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규칙 92조에 따르면 승용차 천장은 차량 중량의 1.5배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끔 제작 되어야 한다. IIHS에서 제시하는 마지노선(2.5배)과 비교하면,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 수출 자동차의 경우 IIHS의 등급을 받기 위해 천장 강도에도 신경을 쓴다”며, “반면 국내 자동차 안전도 테스트에서는 그 같은 항목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pdj2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