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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까지, 남아공 5박 7일 <上>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by헤럴드경제

인천에서 카타르 도하(Doha)까지 비행시간 9시간 30분. 도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까지는 8시간. 요하네스버그에서 호스프루잇(Hoedspruit) 1시간. 그리고 호스푸르잇에서 케이프타운(Capetown)까지 2시간. 

 

5박 7일 남아공 여행에서 총 비행시간은 40시간이 넘었다. 남아공은 먼 땅이다. 쉽게 떠나기 힘든 곳이다. 계절도 한국과는 반대다. 물리적 거리도 멀지만, 오랜 시간 그 땅을 잘 알지 못한 채 쌓아온 ‘편견’ 때문에 심리적 거리는 더 멀다.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하는 나라, 넬슨 만델라의 나라, 그리고 2010년 월드컵이 열린 나라. 얄팍한 배경 지식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향한 건 수년 전 들었던 말 때문이었다. “거기 그렇게 좋대.”

 

남아공은 한 때 한국에서 영어 조기 유학지로 각광받기도 했다. 영미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영국식 영어는 물론, 골프, 승마와 같은 고급스포츠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었다. 축복받은 대자연은 당연히 매력적인 요소였다. 

 

“몸 조심히 잘 다녀와”라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에볼라 같은 질병이 창궐하고, 차창을 내려 놓으면 흑인 강도들이 들이닥쳐 귀중품을 빼앗아 간다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몸 조심’해야 하는 이유로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은 되지 않았다. 도난, 강도, 살인은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국가 재난같은 질병이라면 한국도 빠지지 않을 만큼 앓아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다. 우려하는 모든 것은 편견이 빚은 우려일 뿐이었다. 깃발과 고성이 난무(?)하는 여느 관광지와는 다른, 남아공은 적어도 여행자들에게는 평화로운 휴식처였다.  

안녕, 무뚝뚝한 도시 요하네스버그여 

남아공 내 잘 알려진 여행지로는 요하네스버그, 더반, 케이프타운, 프리토리아, 블룸폰테인 등이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남아공을 제대로 알기는 커녕 관광지를 다 가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알찬 여행을 위해서는 미리 목적에 맞게 루트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테이블마운틴의 모습. 봉우리 12개로 이뤄져 열두 제자 봉우리로 불리는 이 곳에 하얀 구름이 내려 앉으면 신이 식탁을 차렸다는 말로 절경을 표현한다.

먼저 남아공은 열차 여행이 유명하다. 블루트레인과 로버스레일은 ‘달리는 크루즈’로 불리는 호화 열차로, 유럽 귀족들의 이동수단이었던 것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했다. 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젊은 층에 인기다. 

 

블루트레인이 시설면에서 조금 더 호화롭다. 1박 2일 동안 케이프타운에서 프리토리아까지 편도 약 200만원, 로버스레일은 2박 3일이 소요되며 편도 비용은 약 180만원 정도다. 나미비아와 짐바브웨까지도 노선이 열려 있다. 

 

이 밖에도 케이프타운에서 프리토리아까지 1700㎞ 거리를 트럭을 타고 여행하거나, 대서양을 따라 나미비아, 보츠와나까지 캠핑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개별 여행보다는 현지 여행사의 도움을 받는 편이 안전하고 실속있다. 이번 남아공 여행은 요하네스버그에서 호스프루잇, 케이프타운을 거치는 여정으로 꾸렸다. 

 

요하네스버그. 이곳 사람들은 조벅(Joburg)으로 줄여 부른다. 금융 도심 조벅의 첫인상은 ‘무뚝뚝함’이었다. 서울 여의도나 광화문과 비슷한 얼굴이다. 다른 것은 저녁 8시 이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것. 밤이 되니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 나간다. 남아공은 밤 문화를 즐기는 여느 관광지와는 다르다. 흥청망청(?) 놀 작정일랑 아예 하지 않고 오는 것이 좋다.  

메마른 사바나 호스프루잇, 그 곳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한국보다 12배나 땅 덩어리가 큰 남아공에서 도시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소도시 구간을 운항하는 SA익스프레스 국내선을 주로 이용하게 되는데, 마치 ‘날으는 마을버스’같은 느낌이다. 조벅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호스프루잇은 야생 그대로의 대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루거(Kruger) 국립공원’이 이 곳에 있다. 마을버스 정류장 같은 호스프루잇 이스트게이트(Eastgate) 공항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크루거국립공원 내 ‘토니부시 롯지(Thornybush lodge)’에 짐을 풀었다.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스프루잇 공항. 공항이라기보다 정거장 같은 모습이다.

면적 200만㏊에 달하는 크루거국립공원 내에는 수십개의 ‘게임 리저브(Game reserveㆍ야생동물보호구역)’들이 있는데 대부분 개인 소유다. 이 안에 숙박과 야생체험을 할 수 있는 롯지들이 있다. 레인지(Rangeㆍ덮개가 없는 사파리 투어용 자동차)를 타고 드넓은 사바나 초원에 살고 있는 각종 야생 동ㆍ식물을 보는 것을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고 한다. 새벽 5시 반, 오후 3시 반 하루 두 번 체험이 가능하다. 이 시간 동안 최상위 포식자들이 먹이를 찾아 움직이기 때문에 야생 동물들도 쉽게 눈에 띈다고. 

 

사막성 열대초원인 호스프루잇 사바나의 한겨울은 바짝 메마른 덤불로 뒤덮여 있다. 물기만 쪽 빨아내고 난 듯 버석거리는 숲의 질감이 손을 대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네발 달린 초식동물들은 하루종일 마른 숲을 훑으며 잘도 버텨낸다. 

 

동물원 동물처럼, 동물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드넓은 초원에서 사자, 코끼리, 버팔로, 표범, 코뿔소까지 ‘아프리카 빅5’를 짧은 시간 내에 다 보는 건 쉽지 않다. 운 좋게도 1박 2일 동안 두차례 게임 드라이브에서 빅5를 모두 만났다. 여기에 기린, 얼룩말, 임팔라(Impalaㆍ엉덩이에 검은 띠가 두 줄로 나 있는 소과의 포유류), 쿠두(Kuduㆍ뿔이 뒤틀린 소과의 포유류) 무리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늦은 저녁 표범이, 이른 새벽 사자가 먹이를 뜯는 모습이었다. 정글 같은 삶이야 도시의 그것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지만, 진짜 정글의 삶과 죽음을 눈 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괜히 숙연해진다.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인지를 타고 게임 드라이브에 나선 사람들. 수십년 경력의 레인저(Ranger)들이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한다. 분비물을 보고 동물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도 한다. 방금 포식을 끝낸 어미 사자와 아기 사자가 길거리에 누워 있다. 길을 건너는 임팔라 무리. 새벽 게임 드라이브에서 만난 코뿔소. 빅5를 모두 다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롯지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기린 무리들.

모든 광경은 10m도 채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서 볼 수 있다. 단 큰소리로 호들갑을 떨지 말아야 하고, 차 안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게임 드라이브를 포함한 올인클루시브(All-inclusive) 숙식은 하룻밤에 성인 1인당 60만원 안팎이다.  

“내게 희망을 주오,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은 깨끗하고 밝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바다를 낀 곶(Cape) 지형이라 겨울이라도 습도가 높은 지중해성 기후와 비슷하다. 한낮에는 에어콘이 필요할 정도로 따뜻하다. 

 

남아공 내에서 유일하게 백인 비율(33%)이 흑인 비율(27%)보다 높은 곳이기도 해서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프리카라기보다 유럽에 더 가깝다. 남아공을 상징하는 테이블(Tabel) 마운틴을 중심으로 여느 베이 지역처럼 부촌이 형성돼 있다. 

 

월드컵 이후 대중교통 등 관광도시로서의 도시 인프라도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롱스트리트 등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백패커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들도 많이 들어섰다. 

 

케이블카를 타고 테이블마운틴에 오르는 것이 케이프타운 투어의 시작이다. 화강암 돌산으로 된 테이블마운틴은 두 번의 융기를 거치며 빙하에 깎여 현재처럼 평평한 모습이 만들어졌다. 연인이라면 해질 무렵 시그널힐(Sidnal Hill)의 야경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조도가 낮은 타운 조명들이 옆으로 퍼지며 마치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프로포즈 장소로 이만큼 낭만적인 곳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테이블마운틴 정상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테이블마운틴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모습. 시그널힐에서 내려다본 다운타운의 야경. 저 멀리 등대가 있는 곳이 케이프포인트다. 케이프포인트까지 운행하는 퍼니큘라(Funicular). 도보로도 오갈 수 있도록 돼 있다.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반도 투어 역시 추천할 만 하다. 대서양에 인접한 빅토리아드라이브 로드를 따라 가다 유료도로인 체프만스피크(Chapman’s Peak)를 달리다 보면 케이프포인트(Cape point)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희망봉(Cape of Good Hope)에 닿는다. 

 

희망봉이라는 이름은 ‘희망’이라는 단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희망봉 앞 바다는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으로, 물살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유래에 관해서는 과거 아시아를 오가던 유럽 선원들이 이곳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서야 집으로 갈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여행객들. 해군기지가 있는 사이먼스타운 내 보울더스 펭귄 서식지(Boulders Penguin Colony).

희망봉이라고 써 있는 황토색 간판 하나 밖에 없지만, 이 곳에서의 ‘인증샷’ 한 장만으로도 왠지 모를 희망이 차오른다. 더 이상 두 발로는 나아갈 수 없는 땅 끝, 웅장한 자연과 맨 몸으로 마주하는 데서 오는 가슴 부풀음 같은 것이다. 

 

남아공 소울 뮤직의 대모 미리엄 마케바(Miriam Makeba)의 노래가 절로 흘러 나온다. 마림바(Marimba)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내게 희망을 주오, 조애나(Gimme hope Jo’anna)”, “내게 희망을 주오, 케이프타운”. 

사연 많은 땅, 그 누구의 땅도 아닌 남아공 

남아공 기초 상식 하나. 남아공의 수도는 3곳이다. 의회가 있는 입법수도 케이프타운, 대법원이 있는 사법수도 블룸폰테인, 그리고 행정수도 프리토리아다. 

 

수도가 3개인 것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네덜란드와 영국이 번갈아 식민 지배를 한 것과 관련이 깊다. 쉽게 말해 먼저 온 백인들(보어인 혹은 아프리카너로 불리는 네덜란드계 토착백인)과 나중에 온 백인들(영국계) 간의 땅 나눠먹기가 오늘날 삼권분립의 시초가 된 셈이다. 

 

남아공의 화폐 단위는 ‘란드(Rand)’다. 땅을 일컫는 랜드(Land)와도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까지 내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땅’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 땅에 얽힌 이야기들.

 

먼저 현지 랜드사(현지 일정을 담당하는 교민여행사) 직원의 땅에 대한 경험담.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현재까지 1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20대 초반에 현재 케이프타운의 부촌인 캠스베이(CampsBay) 지역에 20평 아파트를 1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대출 이자가 12~13%를 웃도는 남아공에 비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저리로 대출이 가능했다. 집을 사서 임대를 주고 여기에서 받은 임대료로 한국 은행의 대출 이자를 갚아 나갔다. 지금은 팔았는데 현재 매매가가 8억 정도 한다고. 

 

자녀 유학을 위해 온 한국 사람들도 처음에는 임대를 했다가 나중에는 집을 구매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쯤 집을 팔면 그동안 썼던 유학 비용을 충당할 만큼 차익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 

 

월드컵 이후 남아공은 도심 곳곳이 ‘공사중(Under construction)’이다. 특히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등은 글로벌 대도시로써 면모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땅값, 집값도 많이 올랐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고 말한다. 투자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겐 특히 그렇다고.

 

케이프타운 공항이 가까워지면서부터 보이는 땅의 모습도 이채롭다. 푸른 밀밭과 와이너리, 잘 정비된 타운하우스들이 내려다 보이다가 어느 순간 태풍에 휩쓸고 간 듯, 곧 쓰러질듯한 판자촌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다. ‘타운쉽(Township)’이라 불리는 빈민촌이다. 

 

백인 1인당 평균소득 5만달러, 흑인 3000달러. 못 사는 흑인들이 대다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의 오늘은 흑인의 시대다. 흑인 약 70%, 백인 10%, 컬러드(Colouredsㆍ흑인과 백인 혼혈) 9%로 흑인의 숫자가 압도적이지만 단순히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흑인 첫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 남아공은 흑인 정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BEE(Black Economy Empowermentㆍ흑인경제육성정책)’ 이후, 흑인들의 경제적인 영향력도 커졌다. 백인 부촌에도 부를 가진 지식인 계층의 흑인들이 유입되고 있고, 조벅 다운타운에서는 포르셰, 벤틀리를 타는 흑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백인 자본가들은 정부와 줄을 대기 위해 흑인과의 친분을 내세울 정도라고. 오히려 인종 간 대립보다는 줄루족과 코사족 두 종족 간 권력 대립이 더 크게 부각되는 형국이다. 현지 가이드의 말처럼 이제 이곳도 ‘돈의 장벽’만이 남았다.

 

어쩔 수 없이 결국은 란드를 가진 자가 랜드를 차지하는, 남아공의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네덜란드인에서 영국인으로, 다시 흑인으로,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영원한 권력을 허락하지 않은 이 흥미진진한 변화의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닌 땅이다. 그래서 이 곳은 한번쯤 발 디딘 모든 이들의 땅이다. 남아공 여행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ㆍ사진=ami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