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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감정시대'
사랑에 대한 두 시선

by헤럴드경제

감정은 흔히 이성의 제어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철학적 전통 속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은 드러내지 말아야 할 은밀한 대상이었다. 그렇게 홀대 받아온 감정이 21세기에 재조명되고 있다. 그것도 인간을 구원할 위치로까지 격상됐다. 내로라 하는 철학자들이 여기에 발벗고 나섰다. 

 

세계적인 법철학자이자 고전학자인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는 칸트에 비견되는 ‘감정 비판’ 3부작으로 불리는 역작 ‘감정의 격동’(전3권ㆍ새물결)에서 사유의 흐름을 확 바꿔놓았다. 프랑스 대표 정치철학자이자 자크 시라크 정부의 교육부장관을 지낸 뤽 페리는 ‘사랑에 관하여’(은행나무)를 통해 21세기 사회를 이끌어갈 유일한 도구로서 사랑을 선포한다.

인간 탐구의 대서사시 (누스바움 교수의 감정 3부작)

'감정시대' 사랑에 대한 두 시선

감정의 격동/마샤 누스비움 지음, 조형준 옮김/새물결

고대의 스토아학파부터 제인 구달의 침팬지에 이르기까지 2500년 인간 연구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인간의 모든 감정을 탐구한다. 저자는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이 민주주의의 법과 제도, 정치에 어떤 비전을 보이는지를 놀라운 시각으로 펼쳐보인다.

누스바움의 논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감정은 사유다’는 것이다. 전복적인 이 명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상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인간은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의 대양 위에 떠 있는 한 점의 섬일 뿐이라는 분명한 인간 인식 위에서 감정은 윤리적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논리다. 마음을 뒤흔드는 경험은 선과 정의에 대한 생각을 규정하게 마련이며 감정에 가치와 지식, 분별력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철학과 심리학의 영역에서 감정은 정치ㆍ사회학으로 넘어간다. 

감정에 제자리를 찾아줄 요량으로 전면적인 천착에 들어간 저자는 제1권 인정과 욕망, 제2권 연민, 제3권 사랑의 등정 등 3부작을 통해 인간사를 처음부터 다시 재구성한다.

제1권은 인간의 감정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수정되고 변형되는지를 살핀 역작. 그 과정에서 특히 인종 증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등 현대사회 고질병의 뿌리가 유아기의 혐오감과 수치심의 형성과정과 관련돼 있음을 밝혀내는 여정은 흥미롭다. 제2권 ‘연민’편에서는 감정의 핵심적인 구성요소인 연민과 상상력이 정치, 법, 제도에 대한 기존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뒤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제3권 ‘사랑’ 편은 저자의 탁견이 더욱 빛을 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 단테, 브론테, 말러, 휘트먼, 조이스 등 서양 주요 고전의 제대로 읽기를 통해 성과 사랑이 민주주의, 법과 제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사례별로 쫒아간다.

그렇다면 왜 감정을 아는 게 중요할까. 저자에 따르면, 인간 감정의 핵심은 행복해지는데 있다. 이는 곧 나의 행복과 세상과의 조화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고 이것이 감정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법과 제도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가’를 평가와 운영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법과 제도, 교육에 반드시 연민이 철학적 이념으로, 상상력이 방법적 이념으로 포함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법철학자인 저자가 말하는 법은 ‘엄벌’이라는 협소한 ‘법적 정의’가 아니다. ‘시적 정의’ 즉 ‘인간적 정의’가 법의 본래 취지, 즉 정의의 실현에 맞다고 본다. 법이 처벌을 위한 것이거나 범죄자를 ‘혐오감’의 대상으로 내던지기 위해 존재해선 안되며, 한 인간을 돌보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연민의 감정이 필수다. 민주주의의 형식적인 껍데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동체가 이뤄야 할 게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다.

사랑에 관한 천착

'감정시대' 사랑에 대한 두 시선

사랑에 관하여/뤽 페리 지음,이세진 옮김/은행나무

그런가하면 현대 유럽의 지성 뤽 페리는 21세기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철학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철학자 클로드 카를리에와의 대담집으로 구성된 ‘사랑에 대하여’에서 뤽 페리는 사랑을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원리로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사랑 혁명’으로까지 표현한다.

사랑이 이념적 개념인 혁명과 한 쌍을 이룬다는 것부터가 통념을 뒤집는다. 그러나 이 모순어만이 급변하는 21세기 개인과 가족, 국가를 설명하는데 유용하다고 본 것이다. 

저자는 지난 세월 동안 인류를 지배해온 종교와 우주론, 인본주의, 해체주의 등의 거대담론들은 이제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근대 가족의 변모를 이끈 사랑만이 사회전반의 변화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랑은 전에 없이 우리 자식과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내 자식, 나아가 후세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쪽으로 진화하며 유일하게 관심을 갖는 단어가 된 것이다. 

뤽 페리는 사랑이 정치, 교육, 예술 등의 공적 영역과 정치영역에서도 해법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가정에서는 올바른 생할습관을 갖추기 위한 훈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예술에 있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 따뜻한 공감을 사는 형식과 내용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화주의로부터 자유주의까지 근대 이후를 주도한 정치사상들의 패착과 한계를 지적하며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식과 타인, 후세에게 관심을 갖게 된 세대에 정치적으로도 그런 사랑에 기초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경제적 위기에 처한 유럽연합의 경우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거시적인 기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 가장 사적인 감정인 사랑이 어떻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지 새롭고 흥미로운 통찰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