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이 판타지에 빠진 울진…438년 후 이곳은…

[여행]by 헤럴드경제

‘관동별곡’서 현실-몽환 오가며 극찬

바다 위로 135m 뻗어있는 스카이워크

생태트레킹코스 등 인프라 갖춰 힐링선사

요트·서핑·카약 등 해양레포츠 체험

이현세 만화거리·송이축제도 기대

송강 정철이 판타지에 빠진 울진…43

울진 금강송

호랑이 모양 우리 국토 중에서 팔을 위로 넘겨도, 아래로 돌려도 긁지 못하는 등(back)의 감춰진 곳이 울진이다.


손길 닿지 않아서일까. 울진은 영험한 금강송의 최대 군락지, 백암ㆍ신선ㆍ불영사계곡, 왕피천생태탐방로 등 건강성 넘치는 생태를 자랑한다. 푸른 물, 푸른 숲에서 하얀 금강 송이버섯이 자라고, 지중해빛 해파랑 동해 파도는 기암괴석과 만나면서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녹청백의 삼색 조화가 싱그럽다.


송강 정철은 관동팔경의 남단 울진(망양정, 월송정)에 당도하자 현실과 몽환 사이를 오간다.

‘망양정에 오르니,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은산(횐 물결)을 꺾어내어 온 세상에 흩뿌리는 듯, 백설(횐 포말)은 뭔 일인가.(망양정에서)’

‘소나무 뿌리 베고 누워 선잠이 얼핏 드니, 꿈 속에서(중략)…북두칠성 같은 국자를 기울여 동해 바닷물 같은 술을 붓고, 이 술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누어…잠을 깨어 바다를 굽어보니, 밝은 달이 온 세상에 아니 비추이는 곳 없다.(월송정에서)’

송강 정철이 판타지에 빠진 울진…43

바다위를 걷다

송강은 울진에서 무엇을 보고 놀랐는지, 환타지에 빠져들고 마침내 여민동락, 광명이세의 희망을 노래한다. ‘관동별곡’ 438년후인 2018년, 울진은 국내 최대 규모 해상 스카이워크, 레포츠센터, 백암온천관광특구, 세련되고 친자연적인 생태트레킹 코스 등 수간모옥의 웰빙 인프라를 다듬으며 힐링을 갈망하던 도시인들을 놀라게 한다.


송강이 환타지에 빠졌던 월송정에서 남대천을 건너면, ‘학고을’ 동쪽 해안에 없는게 없는 ‘여행 백화점’ 후포가 펼쳐진다.


거대한 대게가 육지로 기어오르는 조명물을 지나면 멀리 바다쪽으로 한참 튀어나온 다이빙대 같은 거대 구조물이 보인다. 등기산 스카이워크이다. 전국 해안 스카이워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해안절벽에서 시작한 다리가 바다 위로 무려 135m나 뻗어있다. 높이는 20m. 스카이워크에 서면 지중해빛 초가을 동해바다와 이집트 스핑크스가 옆으로 누운 듯한 모양새의 바위섬이 내려다 보인다. 에메랄드 바다색은 인어요정 세이렌의 카프리섬 맞은 편, 이탈리아 소렌토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그것과 흡사하다.


선선한 초가을 바닷 바람에 흉금을 씻는 동안, 스카이워크 맨 끝에 매달린 ‘날으는 인어상’이 여행자에게 미소를 띠운다. 여인의 이름은 선묘낭자. ’푸른 바다의 전설‘ 속 수호여신이다. 투명유리 구간이 57m나 된다.


스카이워크에서는 멀리 방파제와 등대, 예쁘게 착상한 어촌마을이 한꺼번에 보인다. 왜 이곳을 ‘빛나는 비단 해변(輝羅浦;휘라포, 훗날 석연찮게 후포로 바뀜)’이라고 불렀는지 실감한다.

해양레저 백화점

육지쪽은 해발 54m 등기산 산책로로 연결된다. 스카이워크에서 석양을 맞을 때 훌륭한 소품이 되는 남호정 정자가 호젓하게 서있고, 후포등대, 신석기전시관, 잔디공원, 팽나무가 인생샷 백댄서가 되어준다. 등기산 아래 촌락은 TV예능 ‘백년손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벽화마을(후포4리)이 조성돼 있다.


스카이워크 남서쪽 요트학교에서는 ‘카타마란 & 피코’ 요트 등 국내에서 보기 힘든 배를 운전해보거나 윈드서핑,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카약 등 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매화면 오산항에도 울진해양레포츠센터가 있다. 요트 인프라가 풍부하다 보니 부정기 대회도 열린다. 레저선박 305척이 동시 접안하는 ‘후포 마리나항만 개발사업’이 내년에 마무리되면 해양레저 중심도시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부풀어 있다.


행선지를 곧장 서쪽 산악지역으로 틀어 온정면 소태리 백암온천 관광특구에 이르면, ‘대한민국 산소통’의 진면목을 호흡한다. 백암산(1002m), 온천, 신선계곡 등 웰빙의 생태계가 조성된 곳이다. 지금은 터만 남은 백암사의 한 스님이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의 상처가 온천수 덕분에 치유된 것을 보고는 이곳에 환자들을 데려와 병을 고쳤다고 한다. 의료 관련 기록에 인색한 고려사 등 사서에 조차 이 온천의 예사롭지 않은 효험이 적혀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엔 한화리조트 백암온천 등 수많은 온천호텔ㆍ리조트들이 모여있다.

만화거리와 만세운동 ‘션샤인’

다시 해안쪽으로 차를 몰아 매화면사무소쪽에 가면 이현세의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 까치와 마동탁, 엄지를 만난다. 250m 이어지는 만화벽화거리이다. 마동탁의 질투어린 눈빛이 하도 실감 나 만화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외설 논란으로 주목받던 ‘천국의 신화’, ‘아마게돈’, ‘남벌’, ‘블루엔젤’ 캐릭터들도 거리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작가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이곳에 정착해 일가를 이뤘다는 작은 고리를 울진군이 낚아올려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만화벽화는 이현세의 문하생 20여명이 40일간 그렸다.


매화면 원남로로 접어들면 1919년 봄, 만흥학교 학생과 마을 주민 1000여명이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인 기념탑이 나온다. 당시 복색으로 간단히 차려입고 만세운동 재연을 해보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울진읍내로 진입하는 길목 해안가의 망양정은 불영계곡과 그 남쪽 왕피천 생태탐방계곡, 두 물줄기가 합쳐져 동해로 빠져나가는 곳에 있다. 망양정에서 잠시 송강으로 빙의해 본 뒤 36번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 통고산을 지나 북쪽으로 15㎞쯤 더가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가 있다. 500년 가까운 수령을 자랑하는 ‘할아버지 소나무’가 지휘하는 가운데, 200살 넘은 8만 그루의 금강송이 기운차게 하늘로 솟았다.


금강송이 보우하사, 실직국(울진,삼척,동해,태백,영덕 등)이 경주쪽 계림 세력의 북진을 버티면서 5세기까지 항전하던 곳이기도 하다. 왕피(王避)천은 실직국 안일왕이 기습공격을 피한 곳이다. 61㎞길이의 왕피천은 금강송과 백두대간 변곡점(태백-울진)의 파란만장 지질현상이 빚어낸 멋진 풍광의 호위를 받으며 청정옥수를 동해로 흘러보낸다. 굴구지 산촌체험마을로 들어가는 계곡옆 트레킹 길은 왕피천 일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채중선품, 송이축제

죽변의 ‘폭풍속으로’(김석훈-송윤아-김민준 주연)‘ 촬영지와 대나무 숲길, 북쪽 나곡해변의 ‘함부로 애틋하게’(수지-김우빈 주연) 촬영지에선 인증샷 남겨야 한다. 거대한 은어 2마리가 마주보는 243m 길이의 은어다리 위에서 상쾌한 페달링을 하면서 해파랑 해변길을 자전거하이킹하는 것은 요즘 같은 초가을이 제 맛이다.


식물 중 신선이라는 뜻의 채중선품(菜中仙品) 울진송이 채취는 오는 20일께부터 시작된다. 축제는 10월5~7일 열린다. 그 직후부터 울진대(竹)게 철이 온다.


울진은 계속 변신중이다. 염전해변 오토캠핑장, 백암 치유의숲 캠핑장, 성류굴-불영계곡-망양정을 잇는 생태체험단지와 케이블카, 금강송 치유센터가 내년에 차례로 만들어진다. 천연기념물 산양 보호센터도 들어선다. 21세기 도시인들은 16세기 송강 처럼, 울진 해송 뿌리를 베고 누울 일만 남았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2018.09.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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