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작가, 화폭에 눌러 담은 ‘소통’의 결과물

[컬처]by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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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 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 제공

“결혼 안 하니?”


나이 서른 즈음의 여성들을 몸서리를 치게 하는 질문이다.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던 이 말은, 명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365일 여성들을 괴롭히는 흔해 빠진 질문이 됐다. 김현정 작가 역시 서른의 보통 여성과 다를 바 없었다. “올해는 우리 딸이 시집가는 게 소원”이라는 엄마의 한 마디가 이번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의 시작이었다.


김현정 작가는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한국의 결혼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화폭에 담았다”며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머릿속에 늘 자리 잡고 있는 최대의 화두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나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에 실린 그림들은 스스로가 던진 화두에 대한 답인 셈이다.


작품은 크게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결혼 전의 환상을 그리고 결혼 후의 현실을 담아냈다. 눈여겨볼만한 점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와 그 속에 담긴 해학적 정서다. 형식과 내용이 가히 파격적이다. 놀랍게도 이 파격적 내용이 그다지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 전통회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의 표현법에 있어서 한국의 전통적인 기법인 수묵과 담채 기법을 사용했어요. 이 기법의 서양화의 콜라주와 함께 사용해 대비가 되게 했어요. 그림의 내용도 마찬가지죠. 한국의 전통적인 의상인 한복을 입고 있지만 치마는 시스루이고, 구두도 꽃신의 무늬를 띄고 있지만 힐처럼 굽이 높아요. 그림 속에 작은 소품들도 동서양이 함께 녹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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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 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 제공

작가가 작품을 제작한 과정을 담아낸 그림도 전시장에 내걸었다. 사진 촬영을 하거나 밑그림을 통해 초석을 깔아놓고 채색을 한다. 이후 수묵담채 또는 한지 콜라주를 이용해 인물에 옷을 입힌다. 마치 어린 시절 즐겼던 종이인형놀이를 연상케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작품 속에서의 여인은 전통사회에서 으레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된다. 한복 저고리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치마를 입고, 과감한 자세도 서슴지 않는다. 주변에 널린 소품들도 지극히 현대적이다. 이러한 화풍은 작가의 자화상으로 불리는 ‘내숭’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었다.


“내숭시리즈의 모델은 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 타인의 인격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고 이 사람들과 마주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들의 인격을 그린 거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그린 그림을 봤는데 저와 꼭 닮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 얼굴이야 당연히 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속까지 분명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편해지더라고요. 타인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 제 자신을 고백하는 과정이 되어 버린 셈이죠.”


‘내숭’ 시리즈와 이번 ‘결혼’에 다른 지점이 있다면 주체의 확장으로 볼 수 있겠다. ‘내숭’ 시리즈에서는 작가 자신의 내면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주제가 ‘결혼’인 만큼 자신을 비롯해 타인이 함께 등장한다. 주체의 확장은 작가의 성장을 보여준다. 자신 안의 세계를 시작으로 이제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나’를 그리면서 성숙하는 과정을 내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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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 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 제공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남다른 표현력과 화풍을 지닌 김현정 작가는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 전시를 앞두고 하루 4시간 쪽잠을 자가며 작업에 몰두했다. 피곤할 법도 한데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면서 일을 즐기기까지 한다.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팬서비스’ 차원을 넘어선다. 그녀는 이들을 한 명의 ‘관객’이 아닌 ‘스승’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도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소득이 있었다. 그녀는 대중이 던진 아이디어를 작가의 역량으로 영특하게 대변했다.


“관객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주는 편이에요. 처음엔 달갑지만은 않았어요. 좋은 이야기만 하진 않으니까요. 아프더라고요. 근데 고쳐야겠단 생각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도움을 받는 부분도 많아요. 설문조사도 하고 라디오처럼 사연을 받기도 해요. 결국은 다 같이 하는 작업인 셈이죠. 관객이라기보다 스승님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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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 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 제공

또 김현정 작가는 주변인들을 상대로 결혼의 장단점 등을 묻는 설문 조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막연하기만 했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말한다.


“설문조사한 답변들 중에서 ‘결혼을 창업이라고 생각하라’는 분이 있었어요. 이전에는 결혼은 무조건 ‘마이너스’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창업 파트너를 찾는다고 생각하니까 흥미로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그 상대를 좀 찾아보려고요.”


SNS를 이용한 소통이 단순하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창구는 아니었다. 김현정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행보는 매우 희망적이다. SNS 활동뿐 아니라 작품에서도 이 같은 성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를 통해 또래 세대의 공감을 넘어 세대간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자 했다.


“감히 나의 작업이 우리의 세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제 작품이 관객들 사이에서 어떠한 대화의 화두를 던져줄 수 있다면 이 작업은 제법 성공한 게 아닐까요? 그것만으로도 이 작업이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 스키장으로 치면 초급 슬로프이고 싶어요.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분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게 편안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culture@heraldcorp.com

2019.09.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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