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마주볼 수 있을까… 아픈 역사 보듬은 군산, 그 아린 곳을…

[여행]by 헤럴드경제

‘군산·부안·전주·고창’ 테마여행

구한말·일제시대 흔적 보존, 과거 아픔·현재가 공존하는 곳

세관·적산가옥·부두 등 100년전 군산 모습 생생히 엿볼 수 있어

‘청자의 고장’ 부안, 청자박물관·가마터·유채꽃 장관인 수성당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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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동 철길마을

어디로 떠나볼까. 가을비 맞은 끝물의 단풍이 기가 막힐 강원도, 많은 여행객들이 사랑하는 부산, 입맛돋구는 향토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남도도 좋겠지만 색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다. 사이트를 뒤적뒤적하다 ‘시간여행 101-7권역’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전북의 군산 부안 전주 고창을 한데 묶은 테마여행 주제였다. 시간여행은 대충 짐작하겠는데 101은 뭐지? 설명을 찾아보니 ‘100가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여행자’를 의미한다고 했다. 숫자보다 ‘시간여행’이라는 글이 마음을 끌었다. 불과 70~80년전 건물조차 불도저로 밀어버린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흔적이 보존되어 있는 곳을 보고 싶었다. 풍부한 물산이 오히려 일제의 수탈대상이 되었고 통로가 되었던,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일찍 번성함을 맛봤던 도시 군산은 보통의 여행지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다크 투어리즘’에 속한다고 할까.


3시간반 가량 쉬엄쉬엄 달려 처음 들른 곳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다. 내항 옆에 자리한 박물관은 2011년 개관했다. 1층에 들어서면 1945년 미군 정찰기가 찍은 군산부(당시 지명)의 전경이 방문객을 맞는다.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으로 국제무역항 군산의 어제와 오늘을 모아놨다. 2층은 기증자전시실과 독립영웅관이 있다. 3층은 근대생활관으로 실제로 1930년대 군산에 있었던 11채의 건물을 재현해놓았다. 쌀가게, 고무신가게, 지금은 없어진 기차역 등이 추억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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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군산세관

박물관 옆에는 110년이 넘은 구 군산세관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호남관세박물관으로 쓰이는 군산세관은 순종 2년인 1908년에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었다고 전해진다.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모두 헐리고 본관만 남아 있지만 국내에서 보기힘든 양식으로 세월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한국은행 본점, 서울역사와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고풍스런 건물은 예스럽지만, 수 많은 조선백성들의 고혈을 짜냈던 곳이기도 하리라.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2,3분만 걸어가면 군산내항이고 뜬다리부두가 나온다. 군산은 지리적 특징 때문에 고려 이후 호남지역의 세곡을 저장 운반하는 창고가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해상교통로로서의 역할 때문에 1899년 개항이후 축항공사가 추진되었고 이 때 뜬다리부두(부잔교)가 만들어진다.


뜬다리부두는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배의 접안이 어려운 서해안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건조한 인공구조물이다.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상하로 움직이는 다리와 다리에 연결된 콘크리트 함선이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썰물때면 콘크리트 함선이 접안시설로 이용됐다. 인근에는 제일사료 공장 창고로 쓰였던 오랜 건물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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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의 히로쓰가옥. 영화 ‘타짜’의 평경장 집으로, ‘장군의 아들’ 하야시의 집으로 쓰였다.

군산을 찾는 사람들이 유명 빵집 만큼 많이 찾는 곳이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이다. 부협의회 의원이며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사부로가 지은 주택으로 신흥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 지역이었다. 멀지않은 곳에는 유럽양식으로 지어진 전주지법 군산지청관사도 있다.


히로쓰가옥은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구 호남제분의 이용구 사장 명의로 넘어가 오늘날까지 한국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다.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 많은 한국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돼 일반인에게도 낯이 익다.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 183호로 등록되었다. 2층의 본채 옆에 단층의 객실이 비스듬하게 붙어있으며 두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 2칸이 있고 전면에는 복도가 있다. 객실부분에는 온돌방과 일식다다미방, 화장실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데 전면과 측면에는 편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평일에는 시간을 정해 내부관람이 허용되며 안내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인근에는 내부공개는 하지 않지만 역시 일본식으로 지어진 조선운송주식회사사택도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이색적인 사찰 동국사가 있다. 대웅전부터 흔히 볼수 있는 여느 사찰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이는 일본식 사찰이기 때문이다. 동국사는 일본 불교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內田)가 1909년 8월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에 세운 금강선사에서 출발한다. 건축자재도 일본에서 가져와 지은 동국사는 에도시대 양식으로 지어졌다.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와 미야자키 등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국내에 일본양식으로 지어졌던 사찰은 몇군데 남아 있지만 동국사처럼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은 없다고 한다. 1970년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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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사 경내에 설치된 참사문

이곳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참사문비와 소녀상이다. 일본 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동종 소속 승려들이 지난 2012년 일제의 만행과 자신들의 첨병 역할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참사문(懺謝文)을 음각한 비석을 경내에 세웠다. 비문은 일본 조동종이 20년 전 발표한 참사문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일제 침략에 앞서 조선에 포교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일본 불교가 황국 신민화 교육에 앞장선 것을 참회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으며 왼쪽은 한국어 번역문, 오른쪽은 일본어 원문이 새겨있다. 범종각 옆에는 소녀상도 자리하고 있어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용서가 한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해망굴은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로서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1926년에 시작된 제 3차 축항공사를 통해 화물하차장 확대, 부잔교 추가설치, 창고건설 등이 수행되었고 해망굴도 이 과정에서 완공된 것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진주한 인민군 지휘소가 이곳에 자리하여 매일 같이 연합군과 공군기들의 기관총 폭격을 받아 총알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보행자만 통과가 가능하다


아픔의 역사지만 이를 잘 보존해 후대가 잊지않도록 만들어놓은 군산. 단순히 관광자원을 확보한 것을 넘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어렵지만 올바른 결정이었던 것 같다. 군산에서 남쪽으로 1시간 가량 달려가면 부안이 나온다. 젓갈을 사러 들렀던 곰소도 있고, 운치있는 채석강도 볼 수 있다. 부안 젊은이들의 성장기를 잘 담아냈던 영화 ‘변산’도 떠오른다.


부안에는 2011년 개관한 청자박물관이 있다. 격포에서 차로 10여분 가다보면 한적한 시골마을에 왼편에 청자박물관 전경이 드러난다. 동네 지명도 청자로다. 비취색의 찻잔 모양 건물이 멋스럽다. 부안은 전남 강진과 더불어 고려 중기 청자 생산의 중심지였다.


청자박물관은 조상들의 위대한 작품을 모아놓은 곳에 그치지 않고, 가족들이 들러 체험도 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있어 고려청자박물관의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2층 청자역사실은 한눈에 보는 부안 청자, 유천리 7구역 청자가마터 발굴 유물, 고려 상감 청자의 아름다운 무늬와 청자의 역사를 보여준다. 부안의 고려청자는 주로 12~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문양이 없는 청자부터 신비로운 유약 빛깔 아래 세련된 음각문양이 새겨진 순청자, 화려한듯 소박한 고려인의 정취가 담긴 상감청자 등 다양하다. 고려청자는 유천리와 진서리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자가마터에서 제작하였으며 현재 유천리 청자 요지는 사적 69호, 진서리 청자요지는 사적 70호로 지정 · 보호되고 있다.


청자명품실에는 고려청자와 차문화·고려청자와 불교문화·고려청자와 귀족문화를 주제로 한옥형식의 진열장에 나전칠기가구와 청자가 전시되어있다. 1층에는 청자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청자제작실, 놀이와 체험을 통해 청자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청자 체험실, 국내외 박물관과 교류전 및 각종 특별전시를 위한 기획전시실, 부안 청자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극장식 4D영상을 상영하는 특수 영상실이 있다.


청자 제작 과정을 보고나면 청자를 활용하여 다양한 체험거리를 즐길 수 있는 청자체험실이 나온다. 청자무늬 스템프찍기, 청자만져보기, 나만의 청자만들기, 청자브레인서바이벌, 청자무늬 그리기 등 다양한 놀이활동을 통해 청자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체험동에서는 도자기를 직접 빚어볼 수 있으며 완성작은 초벌과 재벌을 통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청자박물관 외부의 야외사적공원은 변산마실길 8코스로도 유명하다.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변산 마실길 코스를 따라 가족과 연인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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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와 메밀이 심어져있는 수성당 오르는 길.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성당은 부안의 숨은 명소다. 부안의 서쪽 끝 적벽에 위치한 수성당은 서해를 다스리는 바다의 여신과 그의 여덞 자매를 함께 모신 제당이라고 한다. 순조 4년(1804)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1칸짜리 조그마한 기와집으로 1864년 중수를 거친 뒤 1996년 4월에 다시 지은 것이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격포 마을에서는 3가지 색깔의 과실과 술·과일·포 등의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풍어(豊漁)와 무사고를 비는 제사를 정성껏 올린다.


특히 수성당을 오르는 길에 유채와 메밀이 심어져있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노란 유채꽃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제주도 외에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가을이면 메밀과 코스모스가 가득해 사진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군산=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

2019.11.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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