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여행]by 안혜연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파리는 시테 섬에서 시작되었다. 켈트계인 파리시 부족이 정착해 살면서 파리의 역사가 막을 올렸다. 파리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온 것. 강줄기 사이에 끼어있던 섬이 자연스럽게 요새 노릇을 해 적의 침입을 막았다. 시테 섬, 아주 낯설게 느껴질 테지만 실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것들이 이 섬에 올라앉았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 네프, 마리 앙투아네트가 죽기 직전까지 갇혔던 감옥 콩시에르주리가 여기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Cathédrale Notre Dame de Paris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시테 섬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섬 한가운데 장엄하게 솟은 첨탑. 이 성당은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1163년에 착공해 수 차례 다듬고 증축하며 덩치를 키운 결과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역사적인 사건의 단골 무대였다. 1455년 잔 다르크의 명회 회복 재판이 이곳에서 열려 마녀에서 성녀로 거듭났고 1804년에는 나폴레옹 1세가 성대한 대관식을 치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창고로 쓰이는 등 폐허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매혹적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소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면서 소설 속 배경이었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재조명되었고 덕분에 복원 사업에 힘이 실렸다.

베르갈랑 공원 Square du Vert-Ga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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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분명 본 적이 있을 텐데, 여기가 어디라고 인지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 같다. 시테 섬 끝에 툭 튀어나온 삼각형의 광장, 베르갈랑 공원. 가는 길이 은근히 까다로워서 여행자보다 파리지앵이 훨씬 많다. 베르갈랑 공원을 알게 된 후 특유의 한적함이 좋아서 종종 들렀다. 끄트머리까지 저벅저벅 걸어가 축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 걸터앉았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강에 풍덩 빠지고 마는 아슬아슬한 끝자락에. 어떤 날은 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을 청했고 어떤 날은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나른한 오후를 보냈다.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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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7년을 보낸 헤밍웨이도 이 공원을 즐겨 찾았다. 맑은 날이면 포도주 한 병과 빵 한 조각, 그리고 소시지를 사가지고 강변으로 나가 햇볕을 쬐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이 곳의 달콤한 시간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평온함에 사로잡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아니 알고 싶지 않을 만큼 행복에 겹다.

콩시에르주리 Conciergerie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감옥이라기엔 너무 고상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중세 시대에는 궁전이었다. 1391년부터 감옥으로 쓰였다. 수천 명이 이곳에 갇혀 지냈고 여기 머물다 단두대로 끌려가 이슬이 된 사람만 2,600명에 이른다.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거물급 죄수들이 물밀듯 쏟아졌다. 혁명을 이끌었던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대단히 극단적이었던 혁명 지도자 마라를 죽인 샤를로트 코르데, 여색에 빠져 있던 루이 15세의 정부 뒤바리 부인 등이 줄줄이 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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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마리 앙투아네트일텐데 전혀 안 닮았다는 게 함정

콩시에르주리의 가장 유명한 죄수는 죄수번호 280번,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조그마한 독방, 작은 침대와 테이블이 놓인 공간에 머물렀다. 베르사유에서 호화롭게 생활했던 것이 문제 삼아졌고, 오스트리아로 보물을 빼돌렸다는 죄목에 아들과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억울한 누명까지 덮어쓴 뒤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1914년, 감옥은 문을 닫았고 지금은 역사적 장소로 인기를 누리는 명소가 되었다.

퐁 네프 Pont Ne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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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가 다리, 'Neuf'는 새로움을 뜻한다. 퐁 네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당시에는 나무로 다리를 놓는 게 보통이어서 돌을 쌓아 다리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거운 돌다리를 버티려면 강바닥부터 다리를 쌓아 올려야 하는데 그 시절,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비밀은 강물에 있다.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시테 섬을 둘러싼 센강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홍수와 가뭄. 강이 범람하면 파리 시내가 물길로 변했고 가뭄이 들면 강물이 바싹 말라 바닥을 드러냈다. 퐁 네프의 건설은 가뭄 때문에 가능했다. 물속에서 공사하는 최첨단 기술이 있었던 게 아니라, 강바닥이 마른 틈을 타 기초 공사를 마친 것. 다리 아래에는 마스카롱 Mascaron이라 부르는 기괴한 얼굴 조각들이 험악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다. 영화 『퐁 네프의 연인들』의 무대로 화제가 되었으나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아서 다리와 닮은 세트장을 지었다는 후문.

파리가 시작된 곳, 시테 섬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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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탈을 쓴 백수. 버스타고 제주여행(중앙북스) / 이지시티방콕(피그마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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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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