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컬처]by 서울문화재단

더하는 일보다 빼는 일은 늘 생각보다 어렵다. 건축 역시 ‘있는 것을 살리고 가능하면 덜 하는’ 건축이 어렵고 드물다. 꿈마루는 그 드문 건축 중 하나다. 건물도 공원도 아닌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건축가가 일부러 지우지 않은 시간의 흔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내려놓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서울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입구의 모습.

내려놓으세요, 라는 말

어느 해 여름 템플스테이에서 명상을 지도하던 스님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는 내려놓으세요. 그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는 것, 그 행위를 상상하며 무게를 느끼세요. 그 상태로 지금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만 알아차리세요. 흐르는 공기, 쌓여온 시간, 비워진 공간들. 지금 내 코와 입에 들고 나가는 ‘숨’에 집중하며 나머지 것들은 내려놓는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세요. 그래야 ‘나’의 진짜 실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며칠간 그의 말을 무작정 따라 해보았다. 그러자 내 주변을 겹겹이 싸고있던 잡념들이 조금씩 작아지는 게 느껴졌다. 몸 안팎을 통하는 ‘숨’의 실체도 느끼게 되었다. 빈 공간과 그 안에 흐르는 공기가 내 코와 입을 통해 몸속을 움직이는 느낌도. 그것은 세계와 내가 하나이며 서로 통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일체감 같은 것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넘치는 일상에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내려놓으세요, 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 값진 체험이었다.

 

명상은 이미 있던 것들을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다보면 마음의 먼지가 닦이고 실체가 보인다.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만들어내는 삶의 공간 역시 과장과 허세로 가득해졌다. 가만히 ‘내려놓는’ 사람만큼 그와 닮은 공간을 만나기란 참 힘든 일이 되었다. 하지만 명상처럼, 어떤 건축물은 공간을 통해 심리적 여백을 마련하게 하고 생각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주곤 한다.

 

언뜻 보면 건물인데 사실 건물이라기에는 뭣하고, 그렇다고 공원도 아니고 길도 아닌 조금 이상한 공간 하나를 알고 있다. 건축의 기본적 구조체를 제외한 크고 작은 장식과 표면 재료를 모두 제거하고 필요한 만큼의 내부 공간만을 운영하면서 나머지 공간은 산책로로 누구든 들락거릴 수 있는 재밌는 장소다. 능동 어린이 대공원의 ‘꿈마루’는 건축물이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불확실한 공원의 일부분으로 길과 건축 그 중간쯤 놓여 있는 모호한 공간이다.

 

본래 대공원 자리는 마지막 황제 순종의 비인 순명황후(민씨)의 능(유강원)이 있던 터로 현재의 ‘능동’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다. 순종 승하 후 황후의 능은 남양주로 합장해 이장되었는데 일제가 이때(1926년) 경성 골프장을 조성했다. 이후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골프장이 운영되다가 1970년 근처를 지나던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골프장은 치워지고 어린이 대공원으로 시설 변경되기에 이른다. 1973년 5월 5일 어린이대공원 개원 당시 ‘꿈마루’는 골프장 폐쇄 직전 완공된 클럽하우스였다. 골프장을 잃은 클럽하우스는 이후 대공원의 부속 건물로 40년 세월을 보내게 된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공간은 벽에도 시간의 얼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바깥과 유연하게 통함으로써 그 곳을 찾는 이로 하여금 ‘비움’의 미학을 깨닫게 한다.

꿈마루, 내게 묻는 공간

1968년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해 1970년 준공 당시 서울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로 완공된 건축물은 당시 열악한 기술력의 국내 상황을 돌이켜보면 기술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골프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급히 옷을 갈아입으면서 클럽하우스 역시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졸지에 공원 관리사무소라는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이후 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2010년, 서울시는 대공원 내에 흉물처럼 남아 있던 이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검토 과정에서 건물 형태와 구조가 심상치 않음을 발견한 관계자에 의해 건물은 허무하게 사라질 운명을 가까스로 피하게 된다. 이후 건축가와 관련 전문가들의 참여했고, 시의 문화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허물지 않고 구조체를 존치하며 부분적으로 개보수 작업을 진행해 현재 모습에 이르렀다.

 

공간의 이름은 ‘꿈마루’다. 해석하자면 꿈을 담는 마루쯤 되려나? 건축가는 아이들과 닮은 가식 없는 순수한 공간을 통해 아이들의 꿈이 마음껏 펼쳐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덧붙이지 않고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새롭게 조성된 공간은 오히려 아이들보다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을 위한 치유와 휴식의 공간처럼 보인다. 일상에 지쳐 자기 꿈이 뭔지, 자기 본모습이 뭔지 모른 채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공간 스스로 가식과 허울을 벗는 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겨진 공간이 여백이 되어 공간에 묻어있는 과거와 현재의 흔적을 명상하듯 체험할 수 있는 사색의 장소다. 공간 곳곳엔 빗물에 얼룩진 벽면과 여기저기 표면이 떨어져나간 삭은 콘크리트의 낡은 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새로 손을 보았지만, 결코 새것으로 보이려 하지 않았다. 낡은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내려놓음으로써, 그것이 그대로 현재에 드러나도록 했다. 숨은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번잡한 것들을 덜어내고 치우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건물 고쳐 쓰기의 개념을 넘어 장소의 역사를 회복하는 인문학적 의미까지 나아간다.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왜 지어졌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종종 어떤 건축은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하나 우리 앞에 펼쳐놓고 우리에게 묻는다. 결국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짓기 위해 쓰인 돈과 시간이 얼마일까 궁금해하는 것보다, 왜 여기에 지어졌는지 묻는 것이 더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건축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살면서 가끔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과 닮았다. 가령 ‘나는 왜 사는가’ 같은.

 

글 최준석 건축가. 건축사사무소나우 대표. 저서 <서울건축만담> <어떤건축>등

사진 제공 서울어린이대공원 꿈마루

2015.09.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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