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소금길

[여행]by 서울문화재단
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이화여대의 건너편에 있는 동네가 바로 염리동이다. 염리동(鹽里洞). 서울 한복판에 왜 ‘소금 동네’라는 이름이 있는지 조금은 생경했다. 살펴보니 옛날에는 마포 나루를 통해 서울에 소금을 공급하던 곳이란다. 소금배가 드나들고 소금전이 들어서면서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아서라고 한다. 강서구의 염창동(鹽倉洞) 또한 예전에는 서해안의 염전에서 소금을 서울로 운반하기 전에, 이곳에 소금 보관창고가 있었다 한다.

 

사실 이대역에 내려도 이대 방향으로만 갔지, 길을 건너갈 이유는 별로 없었다. 언젠가 자취방을 찾기 위해 들렀을 때도 그냥 그런 동네 같았다. 꽤 가파른 골목길에 재개발 얘기가 오가는 그냥 오래된, 조금은 으슥한 동네. 그런데 나름대로 교통이 나쁘지 않으니 또 막상 20대의 얇은 형편으로는 쉽게 자취방 하나 구하기도 힘들던 동네였다. 그렇게 10여 년 전부터 재개발 얘기가 나오고, 언제나 그렇듯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서서히 퇴락해 가던 동네, 밤이면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길 때문에 조금은 맘 졸이며 다녀야 했던 동네.

 

이 동네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2012년 서울시가 이 지역을 ‘범죄 예방 디자인 사업 지역’으로 선정하면서부터였다. 미화적인 효과를 기대한 벽화 마을들과는 다른 접근법이었다. 범죄 심리학자, 행동심리학자, 경찰 등 10명으로 구성된 범죄예방디자인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색채 하나까지 신경 써서 선택하여 만들어낸 골목길이 바로 소금길이다.

일상에 배어들다, 소금길

소금길은 전철역에서부터 시작되지는 않는다. 이대역 5번 출구를 나와 숭문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나오는 편의점을 끼고 우회전해 조금만 들어가다 보면(숭문16길) 46번이라는 번호판이 달린 노란색 전봇대가 눈에 들어온다. 소금길의 코스는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A코스(파란색)와 걷는 것만으로도 생활 운동이 된다 싶은 B코스(노란색)로 이어져 있고, 번호는 1~68번까지 이어져 있다. 이제부터는 바닥에 나 있는 노란색 점선만 잘 따라가면 되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노란 점선을 따라가다 보면 군데군데 가볍게 운동할 수 있는 설치물이나 그 코스에서 할만한 것들을 보여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괜히 평소에 하지도 않던 스트레칭을 하게 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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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노란색 대문의 집들은 마을 지킴이 집이다. 길을 걷다가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들로 총 6집이 있다. 또 CCTV가 있어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 골목길 곳곳에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비상벨을 구축하는 등 안전에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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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이 갤러리

이곳 또한 다양한 벽화들이 골목을 수놓는다. 대부분 A 코스 쪽에 많이 몰려 있다. 근처에 있는 서울디자인고등학교 학생 등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작업물이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하얀 캐릭터가 바로 ‘염리동 마스코트’ 캐릭터다. 각종 안내판에서도 이미 마주했지만, 꽤 발랄해서 동네 분위기를 살려주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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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미있는 건 바닥에 그려져 있는 놀이판. 땅따먹기, 미로판 등등 분필 하나만 있어도 골목길을 놀이터로 만들어 놀던 시절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른다. (사실 같이 간 친구들과 좀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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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외에도 담벼락 위의 펜스 위나, 계단 곳곳에서 다양한 아트워크들을 마주할 수 있다. 꽃을 심을 수 있는 포스트 박스에 이르기까지 골목 곳곳에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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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을 담은 동네 풍경

오래된 동네들은 그 시간만큼의 기억들이 작은 가게 하나하나에도 다 배어 있다. 한 자리에서 30여 년을 넘게 있었다는 문구점이나 이발소들. 그런 공간들에는 그냥 ‘상가’가 아닌 알게 모르게 공간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격’이라는 것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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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이곳에 머무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들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다. ‘넘치는 물건은 여기에 두고,필요하신 분은 가져가세요. 주인백’이라도 적힌 담벼락 아래 조곤조곤 자리 잡은 식기와 물건들,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깜찍하게 적어놓은 부탁 문구, 볕 바른 벽 앞으로 옹기종기 놓여 있는 화분들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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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꽃이 피었습니다.

소금길의 노란 점선을 따라가다 마주치기도 하지만, 그 길만 오롯이 따라가다 보면 놓치게 되는 공간들이 있다. ‘꽃이 피어나는 소금길’이라는 주제로 능소화길, 해당화길, 해바라기길, 쑥부쟁이길, 라일락 길, 옥잠화 길의 6개의 테마로 꾸려진 또 다른 골목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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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바닥에도 틈틈이 이렇게 꽃이 피어 있었다.

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길녘에 노랗게 물들다, 염리동(鹽里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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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길이 열리고 5개월 후인 2013년 3월에 서울시가 염리동 주민 2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의 범죄 두려움은 13.6% 감소했고 범죄 예방 효과는 78.6%, 주민의 만족도는 83.3% 증가했다고 한다. ‘범죄 예방을 위한 환경 디자인’이라는 ‘셉테드(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가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걸 입증하는 계기가 되며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재개발로 묶여 있다 보니 오히려 방치되는 공간들, 꼭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여력이 되지 않아 낙후되어 가는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공간 안에 머무르고 살아가야 한다. 낡은 것이 반드시 나쁘고 불편하고 위험한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소금길은 알려준다.

INFO

찾아가는 길 : 지하철 2호선 이대역 5번 출구

글, 사진 박정선

골목에 대한 집착 있는 남자. 패션지와 웹진에 몸담으며 공연, 음악, 연애, 섹스, 여행, 커리어 등등의 글을 써대며 8년간 밥벌이를 해왔다. 부산 촌놈이 서울을 올라와서 살다 보니, 아무리 살아도 어딘가 정이 안 가고 낯선 서울이라는 녀석의 속내가 궁금해 돌아다니다 보니 어쩌다가 『아지트 인 서울』이라는 책을 내고 말았다. 한동안 커머스 업계를 기웃거리다가 지금은 다시 모바일 매거진에 대해 고민하는 중.

2016.01.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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