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대한 발견

[컬처]by 서울문화재단

#서울예술치유허브 #갤러리맺음

#치유 #힐링 #이승현작가

#드로잉 #유화 #가족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인물풍경' 50x30cm, 캔버스에 유채, 2017, 이승현

“나는 왜 버려진 것들에 집중하는가?”

커다랗고 차가운 이미지. 뚱한 표정. 어딘가 기울어진 느낌. 2018년 4월 24일(화)부터 5월 14일(월)까지 서울예술치유허브 갤러리 맺음에서 진행되고 이승현 작가의 <체득된 풍경>展의 첫 풍경이었다. 왠지 ‘서울예술치유허브’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따뜻한 느낌과는 다르게, 씁쓸한 느낌이 들어 ‘이래도 괜찮은 걸까?’ 당황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작품을 보고, 작가와 인터뷰를 하며 생각은 바뀌었다. 오히려 버려지고 소외된 대상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사실은 더 낮은 곳으로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스며들어 치유의 손길을 건네고 있었다.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뒷풍경' 21x29cm, 종이에 연필, 2014, 이승현

퇴근길 마을버스 안의 뒤 풍경, 한때 사랑받던 애증의 대상이,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풍경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오래된 사진 속 인물의 뚱한 표정에 왜 나는 집중하는가?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석양' 30x50cm, 캔버스에 유채, 2009, 이승현

쓰임을 다해 버려진 낡은 트럭과 아름다운 석양, 이 대비되는 풍경에 집중한다. 마을버스에 실려가는 노숙자가 있는 기이한 풍경에서 나는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집중한다.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고립' 130x130cm, 캔버스에 유채, 2018, 이승현

다리 밑의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고립된 한 소녀, 한 여성에 집중한다. 나는 버려진 대상에 집중한다.

이승현 작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요즘같이 스마트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고 이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시대에, 사진의 재현을 넘어 화가의 시선을 담으려고 하다니. 그중에서도 하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버려진 대상에 주목하다니. 어떠한 상황인지 직관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굳이 한 번 더 보려고 하지 않는, 외면하고 싶은 장면을, 붓으로, 연필로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체득된 풍경’이라는 전시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

 

체득된다·체화된다는 것은 내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편인데 그러면서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었다. 이때 ‘똑같이 보이던 대상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체득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하나는, 훈련에 의해 나오지 않는, 원래 손의 제스처(gesture)를 말한다. 어렸을 때, 미술을 좋아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할 수 없었다. 늦게나마 미술을 시작했을 때, 유화를 가장 좋아했다. 유화는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야 했기에 빠르게 칠하고 다 덮어야 한다. 생각해보니, 원래 가지고 있던 제스쳐 대신 무작정 덮어 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훈련(연습)을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원래 가진 제스처로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2016년 전시부터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의 흐름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2014, 2015년 시기부터 ‘비벼대는’ 붓질이 많이 등장했다. 그 이전까지는, 찍었던 사진을 재현하는 식의 작업이었는데, 그대로 똑같이 그린다고 해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붓질을 날려도 되는 부분인데, 잘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꼼꼼히 다 그렸다. 그렇게 ‘그리고 다 (꼼꼼히) 덮어버리는’ 작업으로 몇 년을 보냈다. 그런 과정이 지나고 나니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 여기는 그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렸던 것을 (비벼대는 붓질로) 덮었다.

 

‘비벼대는’ 붓질을 ‘날린다, 덮는다, 지운다.’라고 표현했다. 사실 꼼꼼하게 하나하나 작업을 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저 '나무' 작품.

 

(크기가) 큰 작품인데, 시간 많이 걸리지 않았다. 금세, 신나게 그렸던 것 같다.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나무' 192x260cm, 캔버스에 유채, 2017, 이승현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회전목마' 130x162cm, 캔버스에 유채, 2014, 이승현

('회전목마' 작품을 가리키며) 오히려 저런 것들이 오래 걸린다. 말의 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때의 좋은 분위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그를 위해 대상과 나 사이에서 끊임 없이 방향을 찾아야 한다. 나라는 테두리 안에서 빈 공간을 그리며 찾는 것이다.

 

최근은 어떠한 작품을 그리고 있는가?

 

2015년까지는 유화만 했다. 너무 좋아해서. 또 연필로 간단하게 매력을 느껴 지금은 드로잉 작업도 많이 하고 있다.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고민' 29x21cm, 종이에 연필, 2017, 이승현

현재는 3~4개월 정도 그림을 못 그렸다. 대신 붓질이 나오게끔 ‘몸(체, 體)’을 만들고 있다. 작업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작업을 할 수 있는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붓질을 못 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많이 보고, 많이 걷고 있다. 몸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훈련해도 (제스처가) 나오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불안하지 않는가?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게 목표다. 길게 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다 쏟아낸 느낌이다. 그래서 큰 의미가 있는 전시이다.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화하지 않을까.

 

작품 중 테두리를 잘라낸 작품('인물풍경', '그림자', '여행')이 있는 것 같다. 일부러 그런 것인가?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그림자' 130x162cm, 한지에 아크릴, 2018, 이승현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여행' 130x162cm, 한지에 아크릴, 2018, 이승현

(원래 그렸던) '인물풍경'은 마음에 들지 않아 버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다시 가져와 작품 일부를 오려내셨다. 며칠 지나고 보니 괜찮게 생각되었다. 지금은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또 오래된 작품 중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 우연히 포토샵으로 잘라내서 완성된 작품도 있다. 향후 이러한 (표현)방법도 작품에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

 

전시를 보러오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품 소재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하다. (시민 분들도) 매일 보는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몸(體)으로 다시 본, 버려진 것들에

'인물풍경' 중 자신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이승현 작가

버려진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거부하고 밀어내고 싶었던 대상들로부터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의 부호를 던지고 있는 이현승 작가. 그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시는 못 그릴 것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도 불만족하기 때문에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된다니. 과연 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화가의 시선도, 주변의 일반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괜스레 친밀감이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치유 받는 것일까. 어느새 그가 그린 풍경을 보며 ‘치유’를 체득하고 있었다.

2018.06.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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