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한양도성길과 성곽마을의 변화를 지켜보며

[컬처]by 서울문화재단

조선시대에 축조된 한양도성은 서울의 긴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산 중 하나다. 민초들로부터 ‘애써 성을 쌓아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원성을 들을 정도로 방어시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성곽이라고도 하지만, 도성을 낀 마을은 근대에 들어 서울로 몰려든 객지인들이 봇짐을 풀고 뿌리를 내려 서민의 팍팍한 삶이 지층처럼 쌓인 곳이기도 하다. 한때 가난의 상징이던 성곽마을이 몇 년 사이 변화를 맞고 있다. 넘어야 할 산도 많지만 생활문화유산의 가치 보존에 거는 기대도 크다.

서울 역사의 무늬를 품은 한양도성과 성곽마을

서울이 600년 역사를 지닌 도시라는 사실을 말하기란 좀 부끄러운 일이다. 기껏 남아 있는 유적이란 궁궐건축과 그 주변의 몇몇 양반가 정도로 집약될 만큼 많지 않고, ‘복원’이라는 기치로 재현된 곳들은 박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저 바라볼 뿐 체험할 수 없다. 서울을 방문한 관광객조차 동대문이나 명동에서 쇼핑을 즐기고 시간이 남으면 서울의 역사를 둘러보는듯하다. 역사가 얼어붙어 있으니 재미가 없고 이야기가 없어서란다. 오히려 옛 가옥을 고쳐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유적보다 더 각광받는다.

 

그러나 역사문화도시로서 서울의 정체성을 확인할 만한 곳은 도시 곳곳에 숨어 있다. 그중 서울의 공간과 건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서울한양도성둘레길’과 ‘성곽마을’이다. 이곳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양도성 성곽길과 그 주변이야말로 ‘조선-근대-현대’라는 시간이 중첩된 흔적이 지층의 단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 공존하는 곳이라는 데 있다. 태조 때 (1395년)에 처음 축조돼 세종, 숙종, 영조, 고종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개축과 수리를 수차례 거치는 등 조선시대의 축성 방법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성곽 주변에는 몇 십 년 동안 압축적인 성장을 한 서울의 (이제는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근대 주거 공간 형식과 마을 구조가 성곽과 함께 잔존해 있다.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역사 박물관이자 생생한 삶의 공간이다. 근래 들어 서울시 또한 ‘마을 재생과 성곽마을 조성’이라는 이슈로, 서울의 근대적 생활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성곽마을을 체계적이고 활력 있게 조성・관리할 계획을 발표했고 관련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한양도성길과 성곽마을의 변화를 지

서울성곽길과 성곽마을은 서울의 조선-근대-현대의 중첩된 흔적을 잘 드러내는 곳으로 보존의 가치가 높다. 오랫동안 열악한 주거지로 방치돼 왔던 성곽마을에 조금씩 불고 있는 마을재생 바람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켜볼 만하다.

가난의 상징에서 삶의 아름다움이 읽히는 유산으로

이곳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시민 대부분이 외면했던 곳이다. 서울성곽길을 걷다보면 보존이나 복원이 된 곳도 있지만, 일제강점기 또는 6・25전쟁 후에 멸실되거나 훼손된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 말하길 ‘서울성곽길은 아름답고도 슬픈 길’이라고 했다. 안타까움으로 시작해 쓰라림으로 끝나기 때문이란다.

 

성곽 주변의 마을 또한 비슷한 처지로 외면받아왔다. 도심 개발에 떠밀린 서민이나 생계를 위해 ‘상경’한 사람들이 ‘구릉지로 구릉지로’ 올라와 정착하다보니 성곽마을이 형성됐던 것이다. 그래서 무허가 주택이 많은 것은 물론 마을이 체계적으로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좁은 골목에 기반시설은 열악하고 점점 더 노후해가고 있다. 교통의 접근성 역시 매우 좋지 않은 편이어서 주거지로서도 점점 외면받아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래서 이곳이 보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대문에서 낙산으로 연결되는 창신동에서부터 이화마을, 삼선교의 장수마을, 성북동의 북정마을, 인왕산이 사직로와 만나는 행촌동-사직동 주변이 비슷한 상황이다.

 

이 같은 성곽마을의 특징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건축-도시적인 측면에서는 구릉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기에 대부분 구릉지의 지형을 보존한 채 의지하듯 자리 잡고 있고, 좁고 구비진 골목을 중심으로 각 가구가 형성된 전형적인 ‘한국 근대 도시마을 구조’로서 보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지역 내부의 측면에서 예측되는 갈등 상황인데, 기반시설의 노후화와 거주자의 노령화로 주거 수준이 점점 더 열악해져 재개발구역이나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성곽 주변의 특성상 문화재보존영향검토구역으로 규제를 받게 된다. 따라서 사업성이 낮아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추진이 어렵고, 개별 신축이나 개량 또한 쉽지 않아 노후주택이 그대로 방치되면서 주거환경은 열악해진 채 개발이냐 재생이냐에 대한 주민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셋째 서울시의 미래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근대 서울의 풍경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성곽과의 연계를 통해 명실상부 조선과 근대, 현대를 잇는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강한 곳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미래적 잠재 가치에 대해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저 그곳을 직접 찾아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성곽에서 조선의 역사를, 성곽마을에서 서울의 근대를,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심 풍경에서는 서울의 현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화마을, 장수마을, 북정마을 모두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데, 빌딩 숲을 동경했던 중년・노년 세대와 다르게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지금 젊은 세대는 위 세대에게 가난의 상징이던 좁은 골목길과 초라한 시멘트 기와집에서 솔직담백하고 다양한 ‘흔적’ ‘차이’의 아름다움을 읽는다. 아마도 이들에 의해서 이곳은 ‘다른’ 곳으로 변하리라.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젊은이와 노년의 할머니-할아버지가 공존하는, 가난한 자와 넉넉한 자가 함께하는 곳으로의 변화를 기대해 봄직하다.

성곽마을, 삶의 이야기가 깊어지는 곳으로 변모하길

물론 이러한 성곽마을의 잠재적 가치가 꽃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서울시의 ‘성곽마을 조성사업’에 대한 시민 자문단의 의견과 같이 각 마을의 상황과 특색에 맞게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고, 그 마을의 개발을 지지하는 주민과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소통해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보전만을 위한 문화재로서가 아니라, 마을 기존 주민의 생계와 새로 유입되는 젊은이들의 삶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 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서울 성곽길에는 ‘이야기’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앞으로 성곽마을이 활성화하면 단순히 조선시대의 성곽유적 탐방이나 자연을 벗 삼아 산책하는 둘레길이 아닌,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나누기에 그곳만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곳이 될 것이다. ‘시간의 중첩’ ‘계층의 공존’ ‘도시재생이 문화가 되는’ 다층적인 서울의 일면으로 성곽마을의 시간이 깊어지길 바라본다. 혹자의 말처럼 서울성곽 길이 ‘아름답고도 슬픈 길’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길’이 되길 기대한다.

 

글・사진 명재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주)나무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www.namuarchitects.com)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삶의 형식으로서의 이 땅의 민가와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틈틈이 기록・연구하고 있다. 

2015.11.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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