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일호(구 샘터 사옥)

[컬처]by 서울문화재단

도시, 건축, 사람과 호흡하다

 

이제는 대학로로 부르는 것이 더 편한 동숭동은 서울의 중요한 문화 지역이다. 대학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다. 1970년대 말 ‘문화예술’의 장소로 시작해, 1985년 ‘문화예술의 거리’로 개방되면서 ‘대중문화’의 장소로, 그리고 1990년대를 지나면서 ‘소비와 상업’의 장소로 바뀌었다. 빠른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담쟁이넝쿨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건축물 공공일호(구 샘터 사옥)는 혜화역 2번 출구 앞을 지키고 있다. 지어진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묵묵히 도시와 건축, 그리고 사람들과 호흡한다.

대학로와 샘터 사옥

공공일호(구 샘터 사옥)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샘터 사옥이 공공일호로 재탄생했다.

도로 폭이 10m 정도인 대학로는 서울 최초의 보행자 중심 격자형 계획 지역이다.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등의 공연전시 시설과 연계되어 걷기에 적당한 보행자 거리를 만들었다. 1985년 지하철 4호선이 개통되면서 보행자 거리라는 성격이 더욱 활성화됐다. 대학로에 신축되거나 기존 주택을 개조한 복합상업건축물은 기존의 필지를 유지하거나 합필됐다. 길은 상업시설의 공간 구성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길과의 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합필되고, 건물을 관통하는 통로가 생기기도 했다. 건물이 길과 만나는 부분은 모두 얼굴의 기능을 띠게 되었다.

공공일호(구 샘터 사옥)

길과 접하는 모든 면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건물로 드나들 수 있는 입구를 조성했다.

샘터 사옥은 길과 소통하며 다양한 면의 얼굴을 한, 열린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1975년 서울대 문리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만들어진 땅으로, 1979년 샘터 사옥이 건축될 당시 주변은 넓은 벌판이었다. 1970년 월간지 <샘터>를 창간한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에게 설계를 맡겨 샘터 사옥을 지었다. 빈 장소에 온전히 건축가의 상상으로 여러 개의 문을 만들고, 건물 앞뒤의 길을 연결하면서 그 사이에 조그마한 마당을 조성하는 등 건축이 도시와 호흡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건물 내부에서도 미래와 호흡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설치 공간을 미리 확보해놓았다. 도시와 건축, 그리고 사람과의 호흡은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샘터 사옥의 화장실은 대학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나 주변 노점상인들, 버스 운전기사들에게 늦은 밤까지 열려 있었다.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실에 위치한 화장실은 관리 부담과 유동 인구가 많아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 그리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개방됐다.

 

샘터 사옥에서 살펴봐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구조에 격자보(waffle slab) 방식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이 방식은 보의 크기를 줄이고, 일반보에 비해 층고(층과 층 사이의 높이)를 낮출 수 있다. 건축 당시 법규에 의한 고도 제한으로 3층 정도밖에 지을 수 없었는데, 격자보 방식으로 층고를 2.7m 적용함으로써 4층으로 건축할 수 있었다. 2.25m의 낮은 천장고 때문에 별도의 마감 없이 천장을 노출했다.

 

샘터 사옥의 가장 큰 변화는 2012년에 있었다. 건축가 승효상은 철과 유리를 사용하여 건물을 증축했다. 건물 내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지하에 있던 직원식당을 새로 마련한 5층 공간으로 옮겼다. 그 위 옥탑처럼 생긴 공간은 직원휴게실로 조성했다. 벽돌이 아닌 유리와 철을 사용한 이유는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부분과 확실히 구분하기 위함이지만 기존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했다.

공공일호라는 새 이름

공공일호(구 샘터 사옥)

격자형의 창문을 규칙적으로 배열해 변화와 통일성을 주었다.

2018년 2월 샘터 사옥은 공공(空空)일호라는 새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외부에서 보면 변화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내부도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추어 최소한의 변화만 주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건축가 조재원(공일스튜디오 대표)이다. 도시와 호흡할 수 있도록 조성된 마당은 건물 앞과 뒤, 옆쪽으로 나 있는 길과 예전처럼 이어져 있으며, 건물 바깥에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외부 계단도 그대로다. 내부의 천장도 그대로 노출했다. 계단실에 위치한 화장실도 계속 사람들에게 열어두기로 했다. 변화된 부분은 계단실과 각 층 공간 사이에 놓인 벽돌벽을 철거하고 개방적인 유리벽으로 바꾼 것뿐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공공그라운드가 샘터 사옥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관리 회사인 공공그라운드는 가치 있는 부동산을 보존해 미래 세대를 위한 실험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적정 수준의 수익을 낸다. 공공그라운드는 건물을 매입하여 외형을 보존하는 것과 함께 건물의 목적을 살려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공공일호는 기존 샘터 사와 샘터파랑새극장의 역사를 이어받아,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과 ‘미디어 콘텐츠’를 3층과 4층 공간에서 운영한다. 1층 통로 양 옆에는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들어섰고, 매장은 2층까지 이어져 있다. 5층에는 테라스와 라운지가, 6층에는 팟캐스트 녹음실이 있다. 지하에는 스테이지와 갤러리, 파랑새극장이 자리한다.

공공일호(구 샘터 사옥)

전면에서 보면 2층 높이까지 개방된 필로티 구조로 1층에 열린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열린 공간인 마당은 건물이 접하는 모든 길과 연결된다.

공공일호가 고즈넉한 조소미의 적벽돌, 그리고 그러한 적벽돌과 잘 어울리는 담쟁이넝쿨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좋겠다. 거리와 함께 호흡하며 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그 가치를 전달하는 아름다운 모델로 남길 바란다.

 

글·사진 이훈길

2019.02.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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